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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많이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유명한 소설들은 꽤나 읽어봤다고 생각해봤는데 그 중에서 거의 읽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한 분야가 바로 판타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가장 큰 취미인 영화감상, 그것이 취미로까지 발전한 큰 이유 중 하나가 판타지라는 장르의 매력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봤던 지브리 영화 속 세상이 내겐 너무 환상적이고 너무나 꿈처럼 느껴졌다.

 

학창시절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그런 내가 성인이 되면서 소설들을 하나둘씩 꺼내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판타지보다는 그 당시 나의 관심사였던 현실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많이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배명훈 작가의 '기병과 마법사'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뭔가 익숙하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계로 접촉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만큼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그간의 나의 그런 경험이 미묘하게 맞물려 오랜만에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신기하고 그 미묘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판타지 소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 보니까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sf와 관련하여 다양한 소설을 내신 걸출한 작가님이셨고, 이번 기회를 통해 그의 다른 책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기병과 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그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출간한 소설인데,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작품을 그의 작품으로써는 처음 접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 작품은 한반도 북부 너머의 대륙을 떠오르게 하는 상상의 공간과 전근대를 연상하게 하는 상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는데 기병과 마법사라는 키워드만 놓고 보면 어딘가 근대 이전 중세 혹은 그 이후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적으로 내가 가장 흥미로워 하는 시대이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시대적 배경은 전근대이지만, 어쨌든 이 소설 속 세계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하이 판타지 장르이다.


책의 주인공은, 스물일곱 살의 여성 영윤해인데, 그녀는 자신의 힘을 발견해 각성하고 불가항력적인 어둠의 괴물을 퇴치한다. 즉 이 책의 큰 주제는 위기의 시대와 구원, 연대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 세계에서 영윤해는 역사의 끊어진 고리를 다른 시대 예언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결해내며, 독재와 폭정을 저지르는 파괴적 군주와 맞서는 한편으로,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서양 중세 배경 판타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기사’가 여기 우리 사는 세계의 맥락에 맞추어 ‘기병’ 다르나킨이라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한국형 판타지라는 장르의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이 '기사'라는 캐릭터가 이 소설을 다른 소설과 다르게,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차별점인 것 같다. 한국형 소설에서 이런 서양적 요소를 끌어들여 적절히 융합하는 시도는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이색적인 느낌을 줄 수 있음과 동시에, 자칫하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즉 일종의 양날의 검처럼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소설은 그런 우려가 너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끄럽게 조화시키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참신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밀어붙인 세계관 속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여러 면모를 지켜보는 재미와 그리고 서사적으로 깔끔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완결성을 갖고 있다. 나와 같이 배명훈이라는 걸출한 작가를 알지 못했던 독자라도 책을 읽는 시간동안 그 매력적인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될 수 있을거라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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