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살아간다. 태어날 때 가족 혹은 타인으로부터 붙여진 이름은 죽을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며 불린다.
주민등록상의 이름과 가족 구성원으로서, 학생으로서, 어떤 직업을 가지거나 직책을 맡은 자로서 우리는 불리며 필요한 역할을 위임받아 수행한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역할의 관계망을 보다 견고하게 유지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가려 한다.
이러한 삶의 질서 속에서 모두가 그렇겠지만, 특히 무연고자들의 삶은 온갖 노력과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억울하리만치 성실하게 살아가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길로 빠져드는 등 녹록치 않은 인생을 보내기도 한다.
서울시극단 단장 고선웅이 14년 만에 내보이는 창작극 "유령"은 이러한 무연고자들의 삶을 통해 인간다운 삶과 존재의 의미를 주목한다.
연극은 배명순의 한탄어린 방백으로 시작한다.
배명순은 술에 취하면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달아나 정순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의 실종 신고로 수색당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법적 신분을 숨겨야만 했던 그녀는 사회에서 이용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결국 찜질방과 일용직을 전전하던 배명순/정순임은 암으로 인해 무연고자로서 세상을 떠난다. 이후 시신 안치소에서 다른 무연고자 유령들과 대화를 나눈다.
위와 같은 서사를 바탕으로 유령은 극중극, 메타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배우들은 관객들과 거리낌없이 소통하며, 그런 상황 속에서 코미디적인 연출이 펼쳐지기도 한다.
예컨대, 정순임으로부터 임금을 부조리하게 삭감한 사장은 관객에게 이 정도로 모질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며 토로하기도 한다. 게다가 연극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라는 식의 연출(혹은 스토리)로 삐걱거리며 진행된다.
"유령"의 매력은 이렇듯 무연고자들의 이야기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두 세계를 오가는 과정에 있다. 관객들은 배명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슬픔과 연민을 느끼다가, 배우들이 이를 연기하는 현실로 돌아와 유쾌함을 즐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메타극은 관객의 흥미를 이끄는 형식이기도 하지만, "유령"의 주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삶은 무대, 사람은 배우"라는 중요한 대사는 현실과 연극을 교차시키며 태어난 순간부터 어떤 역할을 맡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누구도 완전히 같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우리 각자의 공연은 죽음에 이르러 막을 내린다.
하지만 배명순은 그러지 못했다.
무연고자들은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안치소에서 유령으로 떠돌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과연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연극의 마지막은 배명순과 같은 유령들,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난 자들을 위한 제사였다.
의식이 행해지는 순간, 무대는 연극이 절정에 다다르는 공간이자 충분히 위로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공간이 되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배우에게도,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이 의식은 깊은 울림을 건네주었다.
연극 “유령”이 선택한 메타극의 형식은 단순히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플롯과 현실을 오가며 연극과 삶을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처절한 삶을 살았으나 누구도 살펴보지 않았던 자들을 무대 안팎에서 위로해준 “유령”은 하나의 작품이면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