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문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배명훈 소설가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판타지 소설 '기병과 마법사'를 출간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흥미로운 상상력, 깊이 있는 세계관, 뚜렷한 주제 의식, 그리고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특징이다. 유명 작가 김초엽은 이 소설의 정교한 세계관과 전투 장면 묘사를 높이 평가했다. 이 소설은 몽골이나 발해 같은 고대 동양의 모습에 서양 판타지적 요소를 절묘하게 융합한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배명훈 소설가는 '기병과 마법사'를 통해 한국적 판타지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 이는 단순한 장르 전환이 아닌, 작가의 핵심 주제들을 판타지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심화하는 시도다. SF가 과학과 사회 제도를 통해 인간을 탐구한다면, 판타지는 신화, 운명, 선악의 대립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더욱 직접적으로 조명한다.
'기병과 마법사'의 핵심은 개인과 사회의 변증법적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서, 개인의 성장이 사회 변화로 이어지고, 사회가 다시 개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특히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이 사회 전체의 변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변증법적 국가 발전 단계
변증법은 인류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발전적 논리 체계다. 이는 현재의 상태인 정(正)과 이에 대립하는 새로운 상태인 반(反)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인 합(合)으로 나아가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일회성 변화가 아닌 지속적인 순환 구조를 이루며, 각 단계에서 도출된 합은 다음 발전 단계의 새로운 정이 되어 또 다른 변증법적 과정을 시작한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을 사회 분석에 적용한 대표적 사상가가 마르크스다. 그는 변증법적 관점으로 경제적 관계와 계급 구조의 변화를 심도 있게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사회의 기본 구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긴장 관계는 필연적으로 변화의 동력이 되어 새로운 사회 질서를 형성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끊임없는 변화야말로 인류 역사 발전의 핵심적 추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전적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점진적으로 해결되면서 개인의 잠재력이 더욱 풍부하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또한 이러한 변증법적 접근은 복잡한 사회 문제들을 더 넓은 맥락에서 통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대의 다양한 문화 작품에서도 이러한 변증법적 발전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변증법적 갈등과 저항의 과정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대표작으로 '레미제라블'이 있다. 이 작품의 변증법적 발전은 세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정(正)의 단계에서는 자베르로 대표되는 엄격한 법질서와 기존 체제가 지배한다. 이에 대한 반(反)으로 장발장의 자비와 인간애, 그리고 민중들의 저항이 등장하며, 특히 1832년 파리 민중봉기는 이러한 반(反)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대립은 궁극적으로 합(合)의 단계로 발전한다. 장발장의 희생적 행위는 자베르의 내적 갈등을 통해 법질서와 인간애라는 대립을 초월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다. 마리우스와 코제트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계급 간 화해와 사회 통합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이는 더 진보된 사회 질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레미제라블'은 개인, 사회, 역사라는 세 차원에서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유기적으로 구현하며, 이를 구체적 인물과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한 '설국열차'도 좋은 예시다. 이 작품은 계급 투쟁을 변증법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열차라는 밀폐된 공간은 계급 사회의 축소판으로, 정(正)인 지배 계급의 기존 질서와 반(反)인 피지배 계급의 저항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특히 꼬리칸 거주민들의 투쟁은 단순한 폭력적 저항을 넘어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발전한다. 커티스가 이끄는 저항 세력은 윌포드로 상징되는 과학기술 지상주의와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에 도전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존 체제의 모순을 폭로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합(合)으로 승화된다.
‘사라국’의 사회 구조의 분석
변증법적 사유는 사회 문제를 단순히 고립된 개별 현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문제가 가진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특히, 이러한 분석에서는 '전체성'의 원리가 중요하다. 이는 현상의 개별적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윤해라는 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사회 구조인 사라국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사라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영윤해의 행동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의 변화가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2년간 성군이었던 왕이 이듬해 3월 폭군으로 돌변하며 피로 물든 잔혹한 시절을 맞이한 가상의 동양 국가 '사라'를 배경으로 한다. 사라국은 전통적 봉건제와 마법이라는 초자연적 요소가 공존하는 특수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 폐쇄적이고 계층화된 사회다.
사라국의 폐쇄성과 계층화는 여러 측면에서 드러난다. 정치적으로는 왕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권력 구조가 존재하며, 이는 기창대라는 군사력으로 유지된다. 특히 왕의 기병인 기창대가 수도 소라울에서 귀족과 고관대작의 저택을 위협하는 모습에서 권력의 자의적 행사와 폭력성이 드러난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도가 엄격히 작동하는데, 정략결혼 제도가 이러한 신분질서를 공고히 하는 핵심 장치다. 영윤해와 종마금의 혼인이 보여주듯 개인의 의사는 무시된 채 가문과 신분의 논리가 우선시된다. 또한 유배 제도는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서의 공간 정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 구조는 두 가지 심리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배층은 자기기만 이론을 통해 자신들의 부패와 폭력을 정당화하며, 성군에서 폭군이 된 왕을 보좌하는 신하들의 태도 변화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되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사르트르의 '자기기만' 이론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불안이 두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예를 들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고 변명하면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기만'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런 자기기만이 결국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부정하는 잘못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페스팅거가 1957년에 제시한 '인지부조화' 이론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서로 맞지 않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부정직한 행동을 했을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때로는 현실을 자신에게 맞게 해석하면서 이런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려고 한다.
사라국의 부패한 관리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기준과 부패 행위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먼저, 부패한 관리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제도에 떠넘긴다. 예를 들어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니까" 또는 "윗사람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을 속여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거짓말하는 피해자'로 만든다.
또한, 부패한 관리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마음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그들은 뇌물을 받는 행위를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거나, 같은 합법적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런 식으로 현실을 왜곡하면서 그들은 점점 더 도덕적 감각을 잃어가게 된다.
사회 변화의 촉매로서의 개인
이때, 주인공 영윤해에는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개인의 성장을 제약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요소는 왕족으로서의 신분적 제약, 정략결혼이라는 제도적 압박, 권력 구조 내 견제와 억압이다.
주인공 영윤해는 폭군이 된 숙부 영위(왕)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가던 중, 가문과 아버지를 위해 잔혹한 종마금과의 원치 않는 혼인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약혼자 종마금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윤해는 숨겨진 마법의 힘을 각성한다. 각성 후 윤해는 북방 지역 술름으로 유배와도 같은 원정 길을 떠나고, 그곳에서 다르나킨의 도움을 받아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며 변방의 전투에 함께 나선다. 윤해의 능력은 꿈속에서 만난 예언자 '마로하'와의 연결에서 비롯되며, 그녀는 역사의 끊어진 고리를 다른 시대 예언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연결해낸다.
이러한 구조는 특히, ‘성장소설’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성장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내적 성숙 과정이 시간·공간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다. 예컨대 왕족 여성 주인공의 경우, 성(城) 연대기적 시간성은 역사와 전통이 집약된 공간으로 묘사된다. 바흐친에 따르면 성은 과거의 흔적이 박물관처럼 남아있는 역사성을 지닌 장소다. 이 공간에서 주인공은 사회적 제약과 고정된 신분의 무게를 체화하며 성장 전의 껍데기적 자아로 머문다. 마찬가지로, '수도' 또한 연대기적 시간성은 정치·사교가 전개되는 닫힌 공적 공간이다. 여기서 정략결혼 협상이나 숙부의 권력 견제 등 음모와 대립이 펼쳐지며, 과거 전통과 현재 욕망이 교차하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반면 주인공이 왕궁을 떠나 먼 지역을 여행하거나 도주할 때는 길의 연대기적 시간성이 활성화되어 새로운 만남과 시련이 시작된다. 결국 주인공은 이들 다양한 시공간을 경험하면서, 점차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한다.
이때, 마법 능력의 각성은 단순한 힘의 획득을 넘어 주인공의 정서적 성숙과 정체성 변화를 상징하는 서사적 전환점이 된다. 이러한 전환점은 위기나 절정 사건이 일어나는 지점에 해당한다. 즉, 마법 각성의 의식은 과거의 소녀 시기와 성숙한 자기가 만나는 출입문이자 문턱으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각성의 순간에 묶여 있던 이야기의 매듭이 풀리듯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운명을 동시에 체득하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다.
윤해가 상상 속 동물들을 현실로 소환할 때, 과거의 억눌린 능력과 꿈의 기억이 현재로 방출된다. 이는 물리적 '문'을 연 셈으로,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는 의례적 순간이며, 주인공이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했음을 나타낸다. 신체적 시련이나 고대의식을 통과하는 장면에서는 시간성이 축적된다. 운명을 예지한 예언이 완수되는 순간에는 시간적 수렴이 일어난다. 출생부터 예정된 미래가 현재와 교차하며, 과거의 기원이 현재 사건에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예언대로 각성한 주인공은 과거·현재·미래가 얽힌 서사적 맥락 속에서 자아를 재정립한다.
윤해의 각성 이후 서사의 시간성은 이전과 달라진다. 즉, 주인공의 내적 변화가 곧 시간적 흐름의 변곡점으로 기능한다. 성장 전에는 과거에 묶여 있던 서사가 각성 시점에 새로운 미래로 뻗어나가며, 공간 역시 과거의 틀에서 벗어난다. 이때의 연대기적 시간성은 순환적이기보다는 종단적인 시간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일부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모호하게 뒤섞여 전체가 뫼비우스 띠처럼 순환 구조를 이루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성장소설에서 마법 각성은 오히려 시간의 선형적 진행을 강조한다. 즉,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깨달음, 미래의 희망이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에 서사가 최절정으로 치닫는다. 이 시점에서 주인공은 이전의 피동적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 '주체'로 재탄생한다. 더 이상 외부권력에 휘둘리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운명을 통합적으로 관장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기병과 마법사'에서 변증법적 발전 과정은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정'의 단계에서는 마법사들의 지배 체제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마법이라는 특별한 힘을 독점하며, 기병들은 이들의 통제 아래 놓여있다. 이어서 '반'의 단계에서는 주인공을 통해 이러한 체제의 모순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기존 마법 체계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갈등은 작품 후반부에서 극대화된다. 기존 마법 체계를 대표하는 세력과 변화를 추구하는 주인공 측의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사회 전반의 변혁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마법의 본질과 그것이 지닌 진정한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루어진다.
최종적으로 '합'의 단계에서는 기존 마법 체계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병과 마법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질서가 확립된다. 이는 단순한 힘의 재분배가 아닌, 마법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발전 과정은 개인의 성장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서사 구조가 된다.
이처럼 '기병과 마법사'가 보여준 변증법적 발전 과정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시사한다. 기존 체제의 모순('정')과 이에 대한 저항('반')이 단순한 대립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의 통합('합')으로 승화되듯이, 우리 사회도 기존의 갈등을 창조적으로 해결하여 모든 구성원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변화가 아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이 함께 이루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일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출범 과정에서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이란-이스라엘 전쟁 등 여러 이슈들로 인해 앞으로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러한 난관들을 잘 극복하여 사회의 모순이 해소되고, 개개인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현되어 모두가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