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ft(공예)’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다. 섬세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 단어는 남다른 인상을 준다. 책의 원제
기대에 부합하도록, 표지 한구석에 수놓아진 그녀의 집 풍경도 수공예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벽난로 앞에 앉아 무릎엔 담요를 얹고 무언가를 만드는 여인의 풍경은 편안하고 넉넉하여 흡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표지를 넘긴 뒤로 이어지는, 저자 토바 마틴의 입을 빌어 서술되는 타샤의 집은 그렇지 않다. 다만 풍족하고 아기자기하며 예쁜 것만으로는 그녀의 생활을 설명할 수 없다.
타샤의 집에는 그 이상의 느린 것들이 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사랑한다.
나무껍질로 만든 바구니, 정원에 놓을 화분으로 쓰기 좋은 토기, 커스터드 크림과 마요네즈의 재료가 되는 갈색 달걀, 누비아 종 염소, 양모를 남색으로 물들이기 좋은 인디고 염료 등 그녀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것들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집으로 오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무엇도 쉬이 얻어지는 것이 없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사들이는, 앞뒤 맥락이 단절된 삭막한 거래는 그녀의 방식이 아니다. 대신 그녀는 직접, 혹은 가족들과 이웃, 친구들의 손을 빌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의 역할은 분명하며, 그들은 각자 제구실을 톡톡히 해내곤 한다. 바구니류를 좋아하는 그녀에겐 여러 개의 나무 바구니가 있지만, 같은 바구니류라고 해도 쓰임새는 다르다. 구멍이 나 있는 바구니는 치즈를 담아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하며, 저울에 매단 바구니는 차의 무게를 재는 용도이다.
타샤는 사소한 일상품이 지닌 특징을 발견하고 그에 딱 맞는 역할을 부여하여 알뜰히 사용한다. 그 덕에 물건들은 우리네 집에서 마땅한 이유 없이 관성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잡동사니보다 쓸모를 다 해내며 살아간다.

타샤의 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든다. 그녀는 고된 길을 찾아온 방문객을 공연히 돌려보내지 않으며 그녀의 친구들은 정원에 앉아 티타임을 나누길 좋아하고 이따금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도 찾아온다.
정원 주위를 빙 두르는 욋가지 울타리를 만드는 손자 윈슬로, 비누를 만들기 위해 오하이오에서 와주는 아멜리아와 닉 부부, 베틀에 날실을 거는 작업을 하러 모이는 천 짜는 친구들. 그들은 기꺼이 찾아와 자기들의 지식과 노동력을 나누어주고, 타샤는 그들의 도움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가족과 친구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집을 드나들면서 그 집에는 타샤 특유의 아늑함과 더불어 여러 사람들과 만든 기억까지 겹쳐져 푸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므로 타샤의 집은 그녀의 역사이자, 주변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로도 타샤의 집이 지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공예라는 ‘예쁜’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소박하고 성실하며 다층적인 추억이 쌓인 집이 그녀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인위적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진 예쁨보다 깊은 감동을 준다.
요즘 사람들이 이전 세대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고는 하지만, 타샤의 지식은 공적 교육기관이나 SNS로는 배울 수 없다. 주변 어른 혹은 이웃으로부터, 혹은 자신이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로 천천히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집에는 물건들을 직접 만드는 시간뿐 아니라, 그 방법과 규칙을 체득하기 위한 시간까지 한 겹 더 쌓여 풍부한 감동을 준다.
손수 만들어낸 일상은 필연적으로 겸손과 감사를 불러온다. 페이지 한 장씩 넘기며 등장하는 타샤의 일상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가져온 편안한 삶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