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보미는 세계가 사랑하는 포스트 록 밴드, 잠비나이(Jambinai)의 멤버이자 해금 연주가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낯설기만 한 포스트 록과 해금, 예사롭지 않은 두 가지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에 거두절미하고 존경을 표한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 너무나 애정하는 것을 소개할 때 더욱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그녀의 에세이집 『음악을 한다는 것은』을 받아보았을 때, “과연 내가 글로 옮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필자는 잠비나이의 팬이자,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까마득한 후배 인디 뮤지션이다. 조금은 다른 궤적을 그려온 김보미 작가, 그런 그녀의 문장들로 보통의 위로를 받은 내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글래스톤베리에 오른 해금 연주가
음악의 홍수다.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을 전전하며 매일같이 실감하는 게 있다면,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업음악 밖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은 홍대로 모인다. 다들 어디서 오는 걸까. 호기심에 모르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찾았다 적잖이 충격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죽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홍대씬에서 들려오는 음악들은 여전히 새롭다. 독특한 음악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뮤지션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저자와 밴드의 결성 멤버 이일우(피리, 태평소, 기타), 심은용(거문고)와는 한예종 학부 시절을 함께한 동기 사이다. 이들 셋은 모두 팝송을 연주하기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국악기로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해야만 행사에서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현실에 회의를 느낀 모양이었다.
저자는 잠비나이의 시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루 위 돗자리와 방석 위에 우아하게 자리하던 악기들이 술 찌꺼기가 눌어붙은 습한 지하 바닥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음악이 알맞은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음악을 한다는 것은』 중
‘포스트 록(Post-Rock)’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음악은 기존 대중음악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포스트 록은 록의 여러 갈래들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장르다. 록 음악 그 너머를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모태인 만큼 장르로 규정하기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음악은 늘 예쁘고, 맑고 튼튼한 것이어야 할까. 세상엔 어둠과 비극, 그림자와 절망으로 조각되는 아름다움도 있다. 국악기와 밴드 사운드의 결합으로, 필요하다면 소음을 만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잠비나이는 그렇게 홍대에서 세계로 나아갔다.
책에 실린 해외 투어 에피소드 중, 핀란드에서 열린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World Village Festival)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앞팀 장비 철수가 지체되는 바람에, 잠비나이에게 주어진 리허설 시간은 단 30분이었다. 분주한 와중 스태프들이 처음 보는 악기 이름을 철자 한 자 한 자씩 읽어나갔는데, 악기 이름 하나 부르는 데도 몇십 초가 소요될 정도였다는 부분이 재밌었다. 국내에서도 낯선 국악과 록이, 해외에서는 얼마나 더 생소했을까. 그럼에도 밴드는 본 공연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이날 가져간 CD를 모두 팔았다.
이제 잠비나이는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코첼라(Coachella) 등 세계적인 음악 축제에 초청된, 설명이 필요 없는 팀이 되었다. 201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상‘을 수상했고, 모과이(Mogwai), 시규어 로스(Sigur Rós) 등 포스트 록을 이끌어 온 밴드들이 섰던 무대에 그들도 올랐다. ‘이게 무슨 국악이며, 어떻게 대중음악이냐’는 눈초리에 음악으로 증명한 잠비나의의 여정은, 이제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어 더 멀리 흘러가고 있다.
전통과 창작의 경계에서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공허함. 내겐 공연을 마친 당일 밤이 그렇다. SNS를 서핑하며 관객들의 시선의 공연 실황을 훔쳐보는 게 오랜 루틴으로 자리 잡은 지금이다.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영상 속의 내가 아직도 낯설다. 공연에서 차오르는 에너지는 홀로 악기를 잡거나, 합주를 할 때 만나볼 수 없는 귀한 손님이다. 많은 예술가가 무대 위와 아래의 간극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작가는 잠비나이 투어로 소진된 에너지를 채워내기 위해, 산조를 연주한다. 독주곡인 산조를 중학교 때부터 손이 닳도록 연주했다는 그지만, 숙련된 연주자에게조차 늘 어려운 음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롯이 혼자 만들어가는 연습 과정이기에 나의 소리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잘못된 소리가 있으면 다시 한 음 한 음 닦아내며 음악적 자존감을 회복해 나갈 수 있다.”] - 『음악을 한다는 것은』 중
새로운 소리를 만들고 연주하기 위해, 조선 말기부터 이어진 오래된 산조를 찾았다는 게 흥미롭다. 아이러니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김보미의 음악에서 국악은 떼어놓을 수 없는 모체다. 스스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에 대해, 저자는 전통과 창작을 굳이 나눈다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전통음악도 과거 어느 시절에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지금 연주되고 있는 음악도 먼 미래에는 전통이 될 것이다. 전통과 창작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예술이란 매우 특별해서 선별된 사람들만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족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선별된 무리 안에 끼고 싶어 무던히도 발버둥을 쳤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와 더 많은 음악을 만나고 각기 다른 자연에 속해보면서 예술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인 돌 틈 사이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 『음악을 한다는 것은』 중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소개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처음엔 그걸 즐기기도 했다. 기분 좋은 어느 날엔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작품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데뷔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 갈수록 음원에 담긴 내 연주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남들과 비교해서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 내려본 결론은 ’예술은 대단한 것이며, 그 대단한 것을 내가 해냈다‘는 얕은 자부심이 나를 비켜간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예술을 사소한 것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예술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스스로 만족해야지만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직업병을 타고난 우리다. 그래서 모든 예술가들에게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은 꽤나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이 일을 살아내려 하다 보면 예술이 곧 일상이 되는 시점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음악을 한다는 것‘이 ‘삶을 살아내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고, 그걸 말 대신 ’소리‘로 말하기로 한 사람들이 뮤지션이라면. 음악이라는 예술이 보통의 삶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에게도 이런 깨달음을 체감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