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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나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아직 삶에 미련이 남아 떠도는 이들이 생각났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 안에서 다뤄지는 유령의 모습은 대부분 복수를 원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거나, 차마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들, 유령들에게는 삶을 지속해야 하는 목표와 욕망이 존재했다. 유령이라는 불투명한 존재로라도 살아가고자 하는, 스스로의 선택이 그들을 유령으로 남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극 <유령>을 감상하고 난 후,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유령들은 자신이 원해서 유령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맞는가?

 

 

[세종문화회관] 유령 포스터.jpg

 

 

 

붙잡는 사람이 없는 유령


 

연극의 주인공 배명순은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에게서 도망쳐 나온 인물이다. 그녀는 다시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원래의 신분을 모두 버리고 ‘정순임’이라는 가명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확실한 신분도, 민증도 없는 그녀에게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어렵게 취업한 식당은 순임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협박을 일삼고, 몸이 아파 병원에 가려고 해도 신분증이 없어 갈 수가 없다.

 

결국 순임은 도망치고 도망치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유령’이 된다.

 

 

[세종문화회관] 연극 유령 프레스콜_02.jpg

 

 

순임이 죽어서 들어온 차가운 시체 안치실 안에는 그녀를 포함한 세 명의 유령이 있다. 우리가 아는 ‘유령’은 보통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는 존재들이지만, 이곳의 유령들은 그 반대이다. 그들을 세상에 붙잡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한마디로 모두 ‘무연고자’다. 아무도 그들의 시신을 인수하기를 원하지 않고, 장례를 치러 주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었으나 죽지 못하고 흐느적대는 유령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채 돌아다녀야만 하는 신세다.

 

연극은 우리 사회 속의 무연고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해 말한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없이 쓸쓸하게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죽음 이후에도 무연고자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때로 죽음으로 삶을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삶이 그렇듯이, 무연고자 또한 죽음으로서 탈출할 수 있는 종류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시체 안치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히는 유령이 된다.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


 

그렇다면 연극 <유령> 속의 무연고자 명순은 어떻게 될까.

 

 

[세종문화회관] 연극 유령 프레스콜_30.jpg

 

 

<유령>이 무연고자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실험적이면서도 복잡하다. 극의 중간중간, 명순은 ‘명순’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이지하’로 돌아온다. 배우의 분장을 해 주는 분장사가 튀어나오고, 명순을 학대하는 역할을 하던 남편은 ‘내가 왜 이런 폭력적인 역할만 맡아야 하냐’며 불만을 표한다. 무연고자 명순의 이야기는 배우가 짜여진 각본에 의해 연기하는 한 연극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극중극’의 연출 방식을 통해, 관객들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명순이 곧 이지하 배우이고, 이지하 배우가 곧 명순인 것처럼, 우리는 단지 ‘내 이름’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아주 커다란 무대다. 인간은 무대 속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배우다. 배우는 자신이 직접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그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연기하고 있는, 하나의 ‘연극’이다. 무연고자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원망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무연고자’라는 하나의 배역을 선택해서 연기를, 그것도 아주 메소드 연기를 펼치고 있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삶이 ‘삶’이 아니라 ‘연극’이라고 생각해 보라. 좀 더 내가 맡은 배역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세종문화회관] 연극 유령 프레스콜_09.jpg


 

연극 <유령>의 결말은 시체 안치실을 떠돌던 유령 세 명이, 시체를 화장하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현실에서의 무연고자들에게 있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연극이기 때문에, 이 연극은 작가와 연출진들과 배우의 결정에 의해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개연성을 무시하고 유령의 신세에서 벗어나 성불하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연극 <유령>이 이 극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무연고자들처럼 외롭고 어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위로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러닝타임은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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