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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가끔 난해한 작품을 보면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반응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낯선 시도와 전통의 파괴를 통해 진화해 왔다.

 

오늘 소개할 공연도 그런 대담한 도전이 담겨있다. 현대음악이라는 난해할 수 있는 장르 속에서 이루어진 앙상블블랭크의 작곡가는 살아있다 VI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공연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작곡가들의 창의적인 작품을 통해 청중들에게 새로운 소리를 통한 음악적 감각을 제시했다.

 

'낯설다' 라는 감정은 예술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가능성 가진 감정이다.

 

이 공연은 낯섦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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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앙상블블랭크(음악감독 최재혁)의 대표 시리즈 ‘작곡가는 살아있다’의 네 번째 무대로 2024년 5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진행 되었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죽은 작곡가들’의 음악이 아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클래식 음악이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준다. 앙상블블랭크는 2015년 음악감독 최재혁을 주축으로 국내외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공모하고 연주하는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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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총 6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각의 작품은 소리의 본질을 탐색하는 새로운 청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첫 곡으로 연주한 Pression은 강렬했다. 첼로를 긁고 치며 전통적인 의미의 ‘음’을 연주하기보다는 ‘소리 자체’를 들려주는 퍼포먼스였다.

 

악기의 물리적 성질과 소음, 불협까지도 음악의 일부로 수용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연주자의 집중된 태도와 무대 위의 긴장감이 몰입을 이끌었다. 흥미롭게도 연주가 끝난 직후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감정이었을 것이다.

 

세계 초연인 Doppelgänger im Nebel은 듣자마자 도플러 효과가 떠올랐던 곡으로 미묘한 음색 차이 속에서 묘한 아름다움이 피어났다. 비명 같은 소리와 유사한 음들이 겹치면서도 각 악기의 개성이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현악 삼중주를 통해 청각적 시선을 다채롭게 펼쳐낸 작품인 한국 초연인 Palette | for String Trio는 각기 다른 현악기의 소리가 불안하면서도 부드럽게 얽히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소리가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고 객석의 중간 지점에서 감상했다면 그 입체감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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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Clear Day는 맑은 날의 공기를 닮은 곡이었다. 섬세하고 투명한 음향이 귀를 스치듯 지나갔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맑음’을 들으며 관객의 기침 소리조차도 곡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몰입’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곡Straight to Heaven. 소리가 연주한다는 느낌보다 ‘뿜어낸다’는 느낌이 컸고, 규칙이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리듬이 관객을 긴장시키며 끌어당겼다. 박자를 세기 어려운 불완전한 박자를 사용한 듯했고 이 곡을 듣고 있자니 지휘자는 불완전함 속의 질서를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마지막은 바흐의 Orchestral Suite No.2, BWV 1067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연주였다. 플루티스트 조성현과 하프시코드가 함께한 무대는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에서 고전음악의 ‘현재’을 들려주었다. 악기 구성과 템포, 리듬에서 현대적 해석이 더해졌고 해체된 형식 속에서도 원곡의 정신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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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소리들, 공기의 진동과 침묵의 여운까지 포함한 ‘소리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다.

 

전통적인 클래식의 미래, 혹은 현대의 고전이 될 음악들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작곡가들의 창작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낯선 것에 매력을 느끼고, 새로운 예술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 경험이었다. 공연 이후 나는 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익숙한 음악 안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앙상블블랭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앙상블블랭크와 작곡가 주정현은 2025년 7월 19일 세종 S씨어터에서 또 다른 협업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라 하니 ‘익숙한 연주 속 낯선 청음 경험’을 다시금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현대음악이 어렵게 느껴지고 들어본 적이 없다면 공연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그 거리감을 좁혀보길 추천한다.


예술 음악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떠올랐다. 그의 음악이 시대를 초월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듯 오늘 만난 이 음악들도 동시대 예술로서 분명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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