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은 5월의 마지막 날, '앙상블 블랭크 작곡가는 살아있다 네 번째 시리즈'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을 찾았다. 공연은 총 6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바흐의 곡을 제외하고는) 연주되는 곡들 자체가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첫 곡은 헬무트 라헨만(H. Lachenmann) 작곡가의 'Pression'이라는 곡이었다. 듣자마자 느껴지는 감각은 '충격적이고 소름돋음'의 감각이었다. 프로그램 북을 든 채로 별 생각 없이 연주를 들을 준비를 하다가 첫 곡이 시작된 순간 귀에 긴장감을 한껏 불어넣는 낯선 소리가 연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오늘 공연에서는 젊은 작곡가들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현대적인 곡들이 연주될 것이라는 점을 대략 인지하고 가긴 했으나, 첫 곡부터 음습하는 이 낯선 느낌에,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로는 계속 이 곡의 의미 혹은 흐름(flow)를 떠올려보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이 느낌은, 마치 현대 미술을 접했을 때 그 작품의 의미를 부단히 찾고자 애쓰지만 무력하게도 '무의미함'이라는 감정으로 이내 압도되어 그것 자체에만 집중하여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 것과 같이, 지금 듣고 있는 그들의 음악 역시도 연주되고 있는 바로 그 소리 혹은 음향 자체에 귀를 기울이고 마냥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첫 곡이 끝나고 최재혁 음악감독이 무대에 등장하여 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곡들이 주는 낯선 감각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주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선, 나머지 5곡을 듣는 내내 '내가 좋다 혹은 쾌적하다'라고 느끼는 이 좋음의 감각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면서 감상하기 시작했다. 6곡 모두를 듣고 나서 결론적으로 든 생각은, 그것은 바로 최재혁 음악감독이 설명하면서 계속 강조하곤 했던 '익숙함'에 있다는 것이다.
좋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한 요건이 익숙함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날 공연에서 가장 듣기 좋았던 곡이 6번째로 연주되었던 바흐의 곡(Orchestral Suite No.2 BWV 1067)에서 기인한다. 대학교에 다녔을 적 수강했던 <서양음악사> 수업에서 접한 (피아노의 이전 버전에 해당하는) '하프시코드'의 선율을 오랜만에 감상하게 된 것도 반가웠고, 이 곡의 여러 악장이 시작되는 동시에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가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어떨 때는 이전에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충격적이고 새로운 것이 주는 신선함도 즐거움을 줄 때가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 듣고 접해본 과거의 것에 대해 현재적인 변주가 더해질 때(이 공연의 경우 바흐의 기존 곡에 하프시코드를 포함한 편대적 편성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의 것 간의 차이를 접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되어 구축된 것은 취향(taste)이 되어 그것과 관련된 문화예술을 접할 때에 안정된 '좋음'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구축된 확고한 취향에만 집중하여 다른 즐거움을 경험해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확고한 취향은 양날의 검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낯선 즐거움'이라는, 이 공연을 접한 자라면 느꼈을 법한 '모순된 경험'이 삶에 주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연의 프로그램북에서 최재혁 음악감독이 든 비유처럼,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들어간 식당에서 먹게 된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을 때 그것이 주는 특별함처럼, 익숙함을 깨는 경계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일상을 더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또한 인상깊게 남았던 최재혁 음악감독의 말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작곡가는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일 수 있다."라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클래식을 듣는 사람들에게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은 현재 너무나 당연히도 '좋은 음악'이다. 그런데, 그 곡이 작곡되던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그 곡이 얼마나 낯설으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을까. 그렇기에 나는 어쩌면 이 '앙상블블랭크 작곡가는 살아 있다' 시리즈를 통해, 현재는 전설로 자리한 작곡가 모차르트, 바흐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그들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겪었을 당혹감과 신선함이라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경험을 해본 셈이었다.
더불어, 검은 정장에 구두를 신는 연주회가 아닌, 하얀 운동화에 캐주얼한 옷을 입고 연주하는 공연도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아주 정통적인 클래식을 들으러 갔을 때 모든 연주자가 일률적으로 검은 정장과 검은 구두를 신고 격식을 갖춘 것에 대한 반감을 느꼈을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격식있는 연주회도 필요하고, 이 프로그램처럼 캐주얼한 분위기의 연주회도 모두 필요하다는 다소 중견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하나의 분위기로 환원되기보다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공연들이 다채롭게 저마다 연주될 때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