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의 주말, 서울미술관과 럭셔리 브랜드 R.LUX의 공동 기획전 [Art of Luxury(아트 오브 럭셔리)]에 다녀왔다. 평소에 럭셔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지라 궁금하기도 했고, 세월이 흘러도 본질이나 의미가 변하지 않는 작품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그런데 [Art of Luxury] 전시는 "동서양의 다양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예술품을 통해 가변하는 의미를 지닌 럭셔리 고유의 미학을 살펴보고자 한다."라는 설명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언제나 럭셔리는 불변하는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하는 럭셔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당대에 A라는 의미를 지닌 작품이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B라는 의미로 변모했음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처음 서울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눈길을 사로잡는 고급스러운 포스터로부터 럭셔리 브랜드의 전시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미술관은 통합 전시회로 진행되다 보니 [Art of Luxury] 외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와 [사란란] 전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제26호이자 왕이 사랑한 비밀 정원 '석파정'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그중 전시장의 초입에 있는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를 통해 이우환, 김환기 작가님의 깊고 내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기존에 교과서로만 접했던 이중섭 작가의 <황소>를 실제로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중섭, 황소, 1953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품 1위에 오를 정도로 사랑받는 작품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중압감을 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황소>는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려는 이중섭의 자화상이자 우리 민족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거친 질감과 굵은 선으로 표현된 황소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한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이중섭이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역시 감동적이었는데, 글과 그림이 섞인 편지에는 두 아들 태현과 태성, 아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함께 느껴졌다. <황소>만 봤을 때는 그가 굉장히 강하지만 투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편지를 읽고 나서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나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임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덧붙여 김환기가 아내 김향안에게 보낸 절절한 사랑이 담긴 편지 또한 작가의 내면을 비추며 심리적 거리감을 좁혔다.
본 전시 [Art of Luxury]에서는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쿠사마 야요이, 김환기, 이우환 등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예술가 18인의 작품 28점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시는 럭셔리의 물질적인 특성을 탐색하는 'Material Luxury', 정신적인 특성을 탐색하는 'Spiritual Luxury'&'Timeless Luxury', 알럭스가 기획한 'Inspiring Luxury'와 같은 다양한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섹션은 정신적인 특성을 다룬 'Spiritual Luxury'였다. 여기서는 작가의 내적 세계 표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럭셔리로 인식되는 현상을 소개한다. 가시적인 것들과 비가시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작품들에 깃든 시간, 경험, 지식, 자유 등 비물질적인 속성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적인 인물 김환기 작가의 <아침의 메아리>는 네모난 색점들로 끝없는 공간감을 재현했고, 동서양의 철학이 공존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는 점점 사라지는 붓의 흔적을 통해 마음을 비우기 위해 작품을 그리는 예술의 본질을 짚어냈다. 이는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세로 연결되며 예술 활동에 대한 고찰을 이끌었다.
이우환, 선으로부터, 1978
더불어 한국 극사실주의 대표 작가인 고영훈의 <달항아리>, <용이 놀다>는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배경에 대상과 그림자를 그려 넣으며 도자기를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처음에는 도자기를 사진 찍어서 스크린에 옮겼다고 생각할 정도로 흡사했다. 따라서 설명을 보기 전까지는 빈 바탕에 상상으로 도자기를 창조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처럼 고영훈은 도자기가 지닌 아름다움의 본질을 성찰하도록 이끌며, 예술의 재현이란 무엇인지 곱씹도록 만들었다.
아울러 회화 위에 입체적인 요소를 도입한 손석은 <기다림>으로 시각과 촉각,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관객이 보는 위치에 따라 화면이 변하는 시각적 환영을 선사했다. 마치 홀로그램 같은 그의 작품은 동선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면서 한 작품 안에 수만 가지의 도자기가 존재하는 듯한 착시를 가져왔다.
손석, 기다림, 2010
R.LUX의 'Inspiring Luxury'는 영상과 향의 접목을 통해 오감을 활성화했고, 다양한 스크린에 초 단위로 엇갈려서 재생되는 영상들은 광고가 아닌 일종의 작품처럼 표현되었다. 어쩌면 광고 구간으로 지나칠지 모를 공간을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궁금증을 자극한 후, 실제로 향을 맡아보게 하는 전략으로 이탈률을 낮췄다고 본다.
이처럼 [Art of Luxury] 전시는 국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 사례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더한 만족감을 주었다. 오늘날 명품을 의미하는 '럭셔리' 테마 속 정품 럭셔리를 쇼핑할 수 있는 'R.LUX'라는 브랜드의 협업은 이질감 없는 전시 경험을 이끌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도출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전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시도가 이어지길, 본 전시를 통해 시공간을 넘어 소통하는 럭셔리의 매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