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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쾌적하고 건조한

무난한 일상들

by 서지원 에디터
2025.06.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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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았을 때 유난히 척척한 손바닥이 있다. 난 그 손을 잡길 불편히 여겼는데, 두 손바닥의 굴곡과 가느다란 손금까지 끼워 맞춘 듯 딱 달라붙는 감각 때문이었다. 땀을 흘려 등줄기에 착 달라붙은 옷자락, 이마를 적시는 머리카락도 싫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경해진 땀과 눈물의 습한 느낌.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촉각의 추억이다. 어쩌면 그 축축함은 열정, 혹은 사랑 같은 이름이 아니었을까?

 

*    *    *

 

무성한 더위라기에 아직 미약한 5월의 끝. 지하철의 냉방이 춥고 이불 밑에 전기장판을 깔아둔 나로서는 아직 봄에 머물러있다. 뜨거운 햇빛에 완연한 봄이 되었다 느끼면 써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나의 봄은 그 따사롭고 귀여운 이름에 걸맞지 않도록 건조하다. 남들만큼 바빴다고 설명하긴 부담스럽고, 그저 내면의 혼란을 견디는데 그야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벌여 놓은 일,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일, 의무로서 주어진 일, 살아가려면 해야 하는 일, 조금 나아져보겠다고 애써 부딪혀본 일. 타고나기를 체력과 정신적 힘 모두 소진이 빠른 편인 데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살아있으니 사는 계절을 보냈다.

 

당신을 만나 습관처럼 내뱉는 “배고파, 졸려, 피곤해, 집에 가고 싶어, 힘들어.”와 같은 지겨운 어리광 뒤로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는걸, 당신은 알지 못했을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겠지. 언젠가 알았더라도 아무렇지 않았겠지.

 

덕분에 견딜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하루를 살고, 남들에게 좋지 않은 사람으로도 보이고, 끔찍한 글을 쓰고, 나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자신을 견디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일상을 꾸역꾸역 연장하는 것. 남들도 이렇게 살아가나보다 생각하고 참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를 향해 그렇지 않아, 라고 얘기해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나의 봄은 참으로 쾌적했다.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눅눅하지도 않은. 옷자락이 달라붙지 않는 등과 목뒤는 상쾌했다. 땀과 눈물도 배어나오지 않고 빗줄기도 스며들지 않는 무미건조한 피부. 바깥과 안, 그 어느 쪽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는 살가죽.

 

그 밋밋한 피부만큼이나 추억도 새겨지지 못한 계절이었다. 건조한 피부와 메마른 마음, 모두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불이행에 이유를 말할 수 없다고 하면 모두 핑계가 되어버리니까. 비행과 일탈은 그저 그 이름으로 기록되고 마니까.

 

*    *    *

 

그러다 5월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병원에 갔다. 그들이 칼로 곪은 부위를 찔러 찢고 갈라내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치솟았다.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참아왔던 것이 드디어 터지는구나. 감긴 눈꺼풀 위로 덮인 천 조각에 흡수되길 바라면서 조용히 울었다. 눈물을 설명하고 싶지 않아. 이해받지 못할 슬픔을 선언하고 싶지 않아. 몇 개월을 견뎌온, 사실은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오래도록 쌓인 슬픔의 발현이었다.

 

왜 눈물이 이렇게도 어려웠을까. 우는 게 그렇게 힘들어서 이제야 겨우, 도둑질 눈물이나 흘리는 걸까. 그 건조하고 무난한 일상을 살아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껍데기만 걸어 다니는 일상이 뭐 그리 가치 있다고. 실상 거기에 나는 없었는데. 견디며 찾아오는 또 다른 아침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는데, 사실 그냥 울어버리고 싶었는데.

 

그리고 그건 처음 솟아나는 눈물이, 그동안 잊으려 노력하다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복잡한 감정을 이끌고 터져 나올까 봐. 그 폭발로 내가 무너져서 일상을 살아내지 못할까, 그래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또 다른 비난을 견뎌야 할까봐. 그들의 이성적인, 냉정한 판단에 더 보잘것 없는, 불성실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그래서 더 큰 웅덩이에 빠져서,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까 봐. 그렇게 그냥 주저앉고 말 것 같아서. 그래서 어떻게든 거짓된 걸음이라도, 내키지 않는 일으킴을 참았던 거야. 꾹꾹 삼켜내리는 눈물이 더 쉽고 간편하니까.

 

하지만 마음을 쏟아내는 건 사람의 일. 울어내는 건 삶에 대한 열정, 무엇에 대한 사랑, 괴로움을 견디고자 하는 의지. 불완전한 자신을 견디고 살아가고 싶다는 호소. 그러므로 건조한 땅에도 비는 내려야 하고 댐은 언젠가 열려야 하며 슬픔은 피부 바깥으로 흘러야 한다.

 

무난하게 살고 싶다고, 일상을 지키고 싶다는 이유로 건조한 삶을 살면 그것은 없는 것보다 못난 삶이다. 마음 하나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이고. 그러므로 삶에는 축축함이 있어야 한다. 눅눅하고 습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한 것도 있어야 한다. 그 눈물이 상기하는 결함이 삶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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