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목적지가 있었다. 정확하게 계산되어 벌목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곳 가문비나무 숲을 지나, 더 야생이 살아 있고 훨씬 더 오래된 장소로 가고 있었다. 빽빽한 전나무 숲을 빠져나오자, 비탈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천 그루의 은빛 자작나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길게 숨을 내쉬자, 숲이 나의 숨을 머금었다. 저 멀리 바다를 품은 바람이 잔잔하게 내게 불어와 내 봄에, 눈에,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 입맞춤을 나는 기억한다. 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다."] - 136p
처음 이 책을 펼치고 나서 든 생각은 '굉장히 판타지 소설 같다.' 였고, 책의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끔찍하리만큼 현실적이다.'였다. 숲의 소실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주축이 되어 스토리가 전개되는 만큼 그들의 세계는 치열했고, 처절했다.
샬롯 맥커너히의 소설 <늑대가 있었다>는 황폐해진 숲을 되살리기 위해 14마리의 늑대들을 이끌고 스코틀랜드로 향한 주인공이 늑대들을 이용하여 숲의 생태계를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고,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낯선 마을에 머무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이 환경 소설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만큼 나는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늑대가 숲을 어떻게 조성하고, 생태계가 어떻게 복원되는지 초점을 맞춘 소설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책을 펼쳐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숲의 주인은 누구일까?
지브리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숲의 주인은 뿔이 달린 사슴 형태를 한 굉장히 신비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어릴 때 영화를 보며 느꼈던 충격이 컸는지 숲과 관련한 콘텐츠들을 접하게 될 때면 자연스레 숲의 주인이었던 '시시가미'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곤 하는데, 이 책에서 그려지는 인간의 모습이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를 띠고 있어서 신기했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에서 인간은 자연의 적이며, 자연은 인간보다 더 상위의 존재이며, 인간이 자연을 해친다고 해도 안식을 선물하고 인간이 지켜야 할 불사의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인간과 숲,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약간 달랐다. 숲을 살려내기 위해 온 늑대들은 마을 주민들에게 두려움의 존재가 된다. 늑대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고, 강력한 적대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사태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은 늑대들의 편에 서서 인간들에게 강한 분노를 느끼며 인간세계와의 단절을 택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주인공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에는 과거에 겪었던 어떠한 사건 때문이었는데, 그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을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다시금 겪게 된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명확한 구별이 있었던 <모노노케 히메>와는 달리, 이 소설에서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보고, 또 인간을 통해 자연을 느끼게 되는 동일성이 존재했다. 늑대는 인간과는 다른 괴물이었고, 그런 괴물을 물리치기 위한 인간들은 똑같은 괴물이 되길 자처했다. 또한 주인공 역시 괴물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었다.
늑대가 있는 숲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인티와 그의 동생인 애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밑에서 성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장한 그들은 어른이 되었지만,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애기는 폭력적인 남편 곁에서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주인공은 마을에서 아내를 폭행하는 '스튜어트'라는 인물에게 강력한 적대감과 분노를 느낀다. 스튜어트의 악행을 참을 수 없게 된 주인공은 결국 스튜어트를 처단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길 자처하게 된다.
주인공은 괴물이었으나 사람이었고, 사람이었으나 자연이었다. 주인공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인간과 늑대에게 저지른 악행은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숲에 남아있다. 갈등을 통해 마주한 우리의 모습은 곧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며, 완벽한 선과 완벽한 악의 구분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었다.
책 <늑대가 있었다>는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을 비로소 마주 보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특히나 자연과 우리의 모습을 엮어내는 작가의 기술은 굉장하게 느껴진 만큼, 저마다의 숲을 이루고 사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