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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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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죽음은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일 뿐’이라고 말하던 한 배우의 수상 소감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세상에 남게 된다고 굳게 믿는다. 한 물리학자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말도 나의 믿음에 힘을 보탰다. 원자는 영원불멸하기에, 인간이 죽으면 몸을 이루고 있었던 원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시 나무가 되거나 지구를 떠나 다른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여전히 위안을 준다. 소중한 이의 죽음은 두렵고 상실은 고통스럽지만, 죽음이 인간의 완전한 소멸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꽤 자주 나를 지탱한다.

 

<고스트 스토리>는 인간은 죽은 후에도 다른 형태로 세상을 떠돈다는 믿음을 형상화한 영화다. 다만 살아있는 다른 존재로의 환생이 아닌, 유령이 된 한 인간의 여정을 상상해 그린다. 두 눈에 구멍이 뚫린 흰 천을 덮어쓴 채 시공간을 유영하는 유령의 존재를 통해 영혼의 형상을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이야기 전면에 내세운 선택이다. 스크린 속 다른 인물들은 유령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나, 관객은 유령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며 그의 시선과 정서를 체험하게 된다.

 

 

 

이승을 떠난 유령의 끝없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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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골자는 간단하다. 작곡가인 C(케이시 애플렉)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되고 그의 연인 M(루니 마라)은 깊은 슬픔에 잠긴다. 병원 영안실에 누워있던 C는 유령이 되어 깨어난다. 유령이 된 C는 이내 M과의 추억이 가득한 집으로 향하고 슬픔을 겪는 M의 곁을 지킨다. 시간이 흐르며 M은 상실로 인한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고 결국 집을 떠난다. C는 M이 떠난 뒤에도 한없이 그를 기다린다.

 

보다시피 영화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 뒤에 홀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C의 죽음 이후,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상상으로 견디는 M의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죽은 이가 유령이 된 채 세상에 돌아와 추억이 깃든 장소에 갇혀 살아있는 이를 기다린다는 독창적인 관점이 인상적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물건이 떨어지고, 큰 소리가 나고, 불빛이 깜빡이는, 즉 살아있는 이에게 일어나는 몇몇 불가사의한 일들이, 그 장소에 남겨진 유령의 움직임과 감정적 동요로 인한 것이었다는 시선이 새롭다.

 

유령이 된 C가 내내 흰 천을 덮어쓴 모습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감정에 이입하기는 어렵지 않다. 표정 연기 없이도 그의 정서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한 공간에 오래 정지하는 카메라를 통해 감정의 여백을 충분히 남겨둔 덕분이다. 카메라는 C와 M이 사랑을 아로새겼던 집의 거실, 침실, 부엌, 작업실까지 모든 공간들을 찬찬히 훑는다. 그리고 C가 떠난 후, 무거운 슬픔과 외로움을 홀로 견디는 M을 지켜보게 한다. 우리의 시선이 C의 시선과 겹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 때, M의 상실이 아닌 C의 고독이 강하게 밀려온다. 더 이상 M을 직접 어루만지며 위로해 줄 수 없다는 슬픔과, 그가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괴로움이 선명하다.

 

M이 집을 떠난 뒤에도 C는 복잡한 감정과 생전의 추억을 껴안은 채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혹시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집에 메모를 남겨놓고 간 M의 말 때문에 C는 결코 떠나지 못한다. 돌아올 M을 기다리면서 그가 벽 틈에 넣어놓고 간 메모를 읽기 위해 그곳에 머물지만, 유령의 몸으로 벽 속을 헤집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C는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조차 잊게 된다. 기다림의 대상과 목적마저 잊고 공간을 한없이 맴돌기만 하다 결국 소멸하게 되는 C의 짙은 공허감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사라지는 것들과 사라지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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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장소에는 추억이 깃든다. 특히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에는 더욱 많은 추억이 깃들게 된다. 혼자 혹은 가족, 친구, 연인, 소중한 이들과 함께 보냈던 순간들이 남는다. C와 M이 살던 집에도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소소한 기억들이 남아 있다. 이사 오기 전 집을 둘러보던 순간, 소파에 누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오븐에 구운 파이를 나눠 먹던 순간, C가 작곡한 노래를 M에게 처음으로 들려주던 순간까지. C는 모든 순간을 떠올린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추억은 영원하지 않다. C와 M이 함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 이는 세상에 오직 둘뿐이다. 집을 떠난 M은 C를 서서히, 그러다 거의 완전히 잊게 되었을 것이다. C 역시 오랜 기다림 끝에, 기다림의 대상이자 이유였던 M의 존재를 잊는다. 그렇게 이 세상에 두 사람이 나눈 추억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소중한 추억이 깃들었던 집은 허물어지고, 그들이 함께 존재했던 거실, 침실, 부엌, 작업실과 집의 모든 공간들이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게 되면 C와 M, C의 영혼과 M의 영혼 모두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기억하는 이가 없다면 함께 보냈던 순간들도 전부 없던 일이 되는 것일까.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이자 물음이다. 후반부, 영화는 시간의 순환을 비추며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C는 집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경험하며 장소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응시하게 된다. 태곳적 그 장소에 존재했던 가족의 삶을 기억하는 이는 현재 아무도 없다. 그러나 가족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곳에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장소의 역사를 훑는 카메라는 그곳이 거쳐 온 모든 순간들을 주시하며, 기억과 전승의 여부와는 별개로 존재했다는 사실 그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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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후반부, 유령이 된 C는 한 예언자를 마주하게 된다. 예언자의 대사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 극작가가 희곡을 쓰는 이유, 교향곡 작곡가가 교향곡을 쓰는 이유는 후대의 사람들이 글이나 노래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가, 그리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고 또 전해져 영원히 남길 바라는 창작자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언은 이어진다. 언젠가 바다가 솟아오르고, 산이 무너지고, 세상이 변해 소수의 이들만이 살아남게 될 때가 와도, 그 소수 중 한 사람이 자연스레 전에 알던 글의 한 구절이나 짧은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했어도 이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공포, 증오, 기근 이외의 무엇, 즉 누군가 우연히 내뱉은 글이나 노래가 사람들의 고막에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글과 노래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기에 우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나 문명을 일굴 것이고 세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이러한 일마저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이지만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지구는 죽어가고 있고 수십억 년 내에 태양이 팽창하며 지구를 삼킬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든다. 우주는 인간의 전부를, 인간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모든 것들을,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서 느끼게 하는 글, 그림, 노래, 노동, 학문 모두를 집어삼키고 말 것임을 강조한다. 언젠가는 모두 소멸되고 우주는 미세한 점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에, 삶과 우리의 모든 것은 부질없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예언을 끝맺는다.

 

먼 미래에 우주가 미세한 점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며 모든 것은 부질없다는 말에 온전한 지지를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던 지구라는 행성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탄생하고, 고통을 견뎌내고, 문명을 일궜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C와, M과,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사랑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니까, 아무개가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했던 일이니까, 모든 것은 부질없다는 말로 인류의 역사와 개개인의 삶을 결코 일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그 사실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진다. 삶은 유한하나 부질없지는 않다. 소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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