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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본 글에는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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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아이스’는 얼어붙은 국경 도시 옌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세 인물이 만나는 이야기다.

 

상하이에서 온 하오펑은 친구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옌지에 오지만, 우울과 무력감에 휩싸인 상태다. 우연히 합류한 지역 투어에서 투어 가이드 나나, 그리고 그녀의 친구이자 요리사인 샤오를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점차 엉켜드는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특히 하오펑이 휴대폰을 잃어버리면서 셋은 저녁식사, 드라이브, 춤과 술을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사정으로부터 도망치듯, 그들은 장백산과 천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 도중, 하오펑은 극심한 공허감 속에서 절벽 끝에 서지만, 곰이라는 상징적인 존재 앞에서 잠시 멈춰선다.

 

나나는 잊고 살았던 피겨 스케이터 시절의 흔적과 재회하며, 죽은 코치와 단절된 과거를 불현듯 떠올린다. 샤오는 나나와 하오펑 사이의 거리감을 목격하고, 어떤 감정인지 말로 표현하지 못한 채 떠날 준비를 한다. 하오펑은 결국 시계를 남기고 상하이로 돌아가지만, 그의 표정은 애초의 무표정보다는 훨씬 부드럽다.

 

샤오는 차를 몰고 트럭을 향해 달리다 마지막에 피하며 웃고, 나나는 스케이트를 꺼내며 가족에게 귀향을 알린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조용하고, 우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뜨거운 무언가로 얼어붙어 있다.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던 세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얼음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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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미학적으로는 눈 내린 국경 도시의 정서가 잘 살아 있다. 하지만 클리셰적인 구조나 다소 납작한 서사 밀도는 아쉽다. ‘우울한 도시 청춘 3인방의 감정 추돌기’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감독 특유의 시선과 공기를 잡아내는 감각은 여전히 인상 깊고, 한겨울의 무기력한 온도가 오래 남는다.


영화는 예상 관람객을 한국인으로 미리 설정한 것처럼 한국의 전통, 현대적 요소가 등장한다. 그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 중국의 동북지역인 옌지시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조선족 자치주 중 하나이며 백두산 북쪽의 산간 분지인 연길 분지에 위치해 있다. 영화의 초반 부분에서 하오펑이 조선족과 한족의 결혼식이 한국의 전통혼례처럼 진행되는 모습과 '나나'가 조선족 전통가옥촌을 가이드하는 장면, 나이트에서 소맥을 먹고 해장으로 한국라면을 먹는 등 여러 곳에서 한국인에게 익숙한 문화가 주인공인 한족배우들에게 이질적으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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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으로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백두산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아리랑과 단군신화의 웅녀이야기에서 나온 갑작스러운 곰모티프는 평소에 알고 있는 한국의 문화가 다른 공간에서 전유되는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방황하는 아시아 청춘과 한국의 신화 사이에 서사적인 공백이 다소 크게 느껴진 것은, 남자 2명, 여자 1명의 청춘 영화 클리셰인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의 플롯을 닮은 장면이 문득문득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레이킹 아이스’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내면의 감정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국경이라는 물리적 경계 위에, 민족·문화·세대·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을 포개는 듯 하다. 하오펑, 나나, 샤오, 이 세 인물은 각자의 위치에서 무기력과 상실을 안고 있지만, 백두산과 같은 경계의 장소에서 잠시나마 서로를 반사경 삼아 자기 자신을 응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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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상징은 모두 완결되지 않은 채 흩어진다. 곰, 스케이트, 시계, 아리랑… 이 모든 요소들은 잠재적인 은유의 가능성을 품지만 끝내 하나의 서사로 수렴되지 못한 채 남겨진다. 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구조적 느슨함을 유지한 탓도 있겠지만, 그 모호함이 어떤 감정적 응집력을 만들기보다는, 다소 해체된 인상만을 남긴다.


결국 ‘브레이킹 아이스’는 삶의 방향을 잃은 세 사람이 잠시 얼어붙은 시간을 공유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전의 따뜻한 일탈이다. 완전히 얼어붙지도, 완전히 녹지도 않은 그 감정의 상태는 오히려 오늘날 많은 청춘의 상태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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