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셰프 대신, 할머니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식당이 있다면 어떨까? 진짜 ‘할머니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 <논나>는 음식으로 함께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해 나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계 중년 남성 조는 어머니를 잃고 크나큰 슬픔에 빠져있다. 그가 어머니의 빈자리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더 이상 그녀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이다. 정성 가득 담긴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하던 그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담아, 그녀의 이름을 따 ‘에노테카 마리아’라는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결심한다.
이 레스토랑이 다른 음식점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논나, 즉 이탈리아계 할머니’들이 각자 소중히 간직해 온 집안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손님에게 가족의 따뜻한 정을 선사하고 싶었던 조는 자신만의 요리법을 가진 이탈리아계 할머니 네 분을 섭외해 셰프로 모신다.
양머리 구이인 ‘카푸젤레’를 특기로 내세우는 거침없는 시칠리아 여성 로베르타, 해묵은 지역감정을 드러내며 그녀와 티격태격 말다툼을 주고받는 안톤넬라, 과감히 수녀원을 나온 테레사와 언제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미용사 출신 지아까지. 이 네 여성은 각자 고향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로 자주 충돌하고 부딪힌다.
영원히 섞이지 않을 물과 기름처럼 보였던 이들은 언제나 화려하고 당당하게 보였던 지아가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부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조심스레 혼자 삭혀 온 고통과 슬픔을 털어놓은 이들은 점점 더 서로 가까워지면서 끈끈한 연대감을 느낀다. 손님이 없어 레스토랑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해도 이들은 누구 하나 서로를 탓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버틴 날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의 최선에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낸다.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던 이들이 진짜 가족으로 뭉치게 되는 순간이다.
이들이 보여준 ‘내가 선택한 가족’은 혼인과 혈연관계로만 국한되어 있던 가족의 개념을 더 넓게 확장해 주며,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누구보다 서로를 위해주고 아껴주는 마음과 식탁에 둘러앉아 갓 만든 따끈따끈한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가족일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소비되던 수동적이고 연약한 노년 여성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이다. 인생의 후반부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방향을 튼 논나들의 모습은, 두려움으로 인해 도전을 망설이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는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에 실제로 존재하는 레스토랑인 ‘에노테카 마리아’는 어릴 적 먹었던 추억의 음식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자 조 스카라벨라가 만든 식당이다. 처음엔 이탈리아계 할머니들만 셰프로 일했지만, 지금은 아르헨티나, 일본, 그리스, 알제리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할머니들이 각자의 삶과 한 나라의 문화를 담아낸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음식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편안함과 익숙함을 선사한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의 힘과 상처 입은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연대를 강조한 이 영화는 다소 정석적인 뻔한 흐름으로 흘러가지만, 과하지 않는 연출과 불필요한 갈등 없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밥 친구로 삼을만한 자극적이지 않은 넷플릭스 작품을 찾고 있다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논나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면 정성이 가득 담긴 집밥을 먹고 일어설 때처럼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뭐든 아는 맛이 더 맛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