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젊다. 정말로. 내가 옷을 고를 때면 ‘이 로퍼를 신으면 고전적일 것 같은데?’라거나 ‘부츠컷 청바지 있지 않나?’ 하며 더 맵시 있는 스타일을 추천해준다. 최근엔 헬스장도 다니면서 퇴근 후 헬스장에 다녀오는 루틴을 지킨다. 엄마가 젊어서 좋겠다, 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대답을 했다. 엄마가 노력해서 그런 거야.
되찾아주고 싶었던 것
엄마는 10년 동안 홀로 나와 언니를 키웠다. 언니는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 이전까지의 엄마는 평범한 주부로서 살았다. 아침이 되면 가족들을 배웅하고, 끼니마다 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해주는 존재. 아빠는 애 있는 아줌마인 만큼 머리 스타일도 단정하게 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에 맞게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펌을 했던 엄마. 그러다 안방에 있는 엄마 화장대에서 20대 시절 엄마의 대학교 MT 사진을 봤다. 아줌마다운 건 뭘까. 그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주어진 ‘틀’을 의심하게 됐다. 뽀글머리와 펑퍼짐한 옷차림. 그로부터 십몇 년 전 MT에서의 청청 패션. 차에 기대 멋진 포즈를 취하는 사진도 있었는데 현실의 엄마와 너무 큰 거리감이 느껴졌다. 엄마의 자유는 20대에 끝난 걸까 하는 이상한 감정과 함께.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생계를 위해 삼일장이 끝나자마자 백화점에 취업하셨다. 아침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삶. 심지어 백화점은 2주에 하루만 쉬는 탓에 엄마에게 주말은 휴일의 개념이 되지 못했다. 취직하고 나서도 엄마는 내 학창시절 내내 아침밥을 챙겨주었고, 또 밤마다 ‘감사합니다’ 같은 잠꼬대를 했다. 고3 시절의 나는 당시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집안의 큰 변화를 겪고 불안정한 시기였기에, 굳이 불을 지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에게 엄마의 삶을 살아, 라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연애 안 해? 같은 말들. 딸로서 그런 주제를 꺼낸다는 건 조심스러웠지만, 엄마가 엄마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계속 일을 갔다 오고, 힘들어하며 잠에 드는 나날들은 점점 길어질 것이고, 엄마도 언젠간 할머니가 된다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나중에 언니가 분가하고, 내가 결혼한 뒤 집에 혼자 남는 엄마의 삶. 겨우 생긴 휴일엔 거실에 누워 드라마를 보는 엄마의 뒷모습에 우울이 서려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엄마가 짊어진 그림자가 너무 짙다는 것. 그것을 타파하고 싶었다. 엄마의 청춘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어른들도 디저트를 좋아한다
조금씩 엄마와 산책을 나가고, 주기적으로 엄마를 네일샵에 데려가기도 했다. ‘엄마, 손톱까지 꾸며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손톱 답답하게 무슨 네일아트야, 하던 엄마는 이제 기분이 좋아지셨다. 백화점에서 손님을 맞을 때 더 우아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가속을 더했다.
‘엄마, 이런 블라우스는 어때?’
‘케이크 들고 할머니 뵈러 갈까?’
늘 몸이 아프다던 칠순 넘은 외할머니는 알고 보니 디저트 러버셨다. 그렇게 성수의 한 카페에서 케이크를 들고 할머니 댁에 갔고, 할머니는 케이크를 드시자마자 엄청나게 맛있다며 식사 전인데도 반 판을 다 드셨다. ‘이게 무슨 케이크야?’ 물으셨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거 무화과 피스타치오 케이크!’ 어르신이 무슨 그런 걸 알아들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제 나는 안다. 어르신들은 붕어빵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다른 새로운 음식을 드신 적 없기 때문이라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식사 후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께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손녀가 무화과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다고, 덕분에 맛있는 거 먹고 젊어졌다며. 이후로 나는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할 법한 디저트를 사 가기로 다짐했다.
누구든, 나를 위한 푸르른 여행하기
지금의 엄마는 나보다 훨씬 청춘 같다. 여전히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퇴근 후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또 주기적으로 헬스장에 다녀온다. 현재의 나는 이십 대 후반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인 ‘나이’를 체감하고 있지만,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어린, 혹은 훨씬 어른인 여러분께 전한다. 우리가 원한다면 청춘은 언제든 몇 번이고 찾아온다고. 혹시 억압된 게 있지는 않은지, 하고 싶은 취미를 억누른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 진정한 '나' 되찾기. 나를 찾는 여행이 푸르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