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자살 소동>. 제목 때문에 이 영화가 가진 고유의 개성이 많이 퇴색된다고 느낄 정도로 아쉽게 느껴지는 한국어 제목이다.
이런 제목이 주는 느낌을 차치하고 보았을 때, 즉 영화의 원제인 'The Virgin Suicides'를 놓고 봤을 때 영화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푸르스름하고 어딘가 냉소적인 영화. 정말 사랑하는 분위기이지만 결코 흔하게 찾아볼 수 없기에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와 에다 유카 감독의 <소녀가 소녀에게>가 많이 떠올랐다. 뭔가 어린시절 소년들이 겪었던 추억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그런 나레이션, 액자식 구성 같은 것은 <스탠 바이 미>를 떠올리게 했고, 어린 소녀들이 모종의 이유로 자살을 택하게 되는 점과 화면은 굉장히 아름다운데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점과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그 모호한 느낌은 <소녀가 소녀>에게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 영화를 볼때도 굉장히 영화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눈빛, 그 공간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그들의 서사를 구축해주고 있다고 느꼈고, 이 영화에서 다시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제목 자체가 어찌보면 영화 속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보니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소녀들의 죽음이라기보단, 그들의 죽음이 너무도 평온하고 갑작스럽게 벌어진 그 상황 자체가 주는 일종의 괴이함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초반부부터 막내딸이 욕조에서 자살기도를 하는 장면이 바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 떨어져 숨을 거둔 모습 총 두 번의 자살시도와 죽음이 연신 나오는데 이런 것들이 보통 영화에선 굉장히 큰 사건으로 다뤄지지만 이 영화에선 굉장히 평온하고 자연스럽게 나옴으로써 자살이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라 일상 속 평범한 사건처럼 만든다. 그러다 문득 그 사건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데에서 느껴지는 묘한 공포감 같은 것이 있다.
그 뒤 럭스와 관련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파트는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더 큰 암울함을 위한 일종의 발판같은 장면처럼 보여진다. 결국 럭스와 나눴던 그 사랑 때문에 그 자매들은 감금을 당하고 소녀가 그토록 아끼던 lp는 태워지거나 버려진다.
이 영화가 기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녀들이 자살하는 그 사건 외적으로, 소녀들의 부모는 왜 그들을 그토록 폐쇄적으로 가두려고 하고, 왜 그 주변의 이웃들은 그들에 대해 그토록 궁금해 하는가이다. 물론 이건 처음 도입부에서 어느정도 설명을 해주긴 한다. 딸들밖에 없는 집, 그들을 집에 감금하다시피 하는 그들의 부모. 이런 요소들로 인해 그들에 대한 신비감,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던 것이다.
이 영화가 마냥 암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어린 소년들이다. 소년들은 마치 관객의 입장과 동일시되듯, 그 소녀들을 궁금해하고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 닫힌 창문을 계속해서 건드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소녀들이 다같이 자살하게 되는 것 또한 너무도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우리가 그들의 자살의 원인을 대강 유추할 수는 있어도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에 그렇다고 결론 지어 말하기는 힘들다. 처음 자살을 했던 그 막내딸의 경우처럼.
그들의 부모 또한 그들을 그토록 폐쇄적으로 키운 이유를 끝내 밝히지 않고 퇴장한다. 여전히 소년들은 그 소녀들이 영화 속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채 그들을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채 집 건너편에서 바라만 볼 뿐이다. 죽음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 속 소년들이 자리한 곳은 도대체 어디였을까. 25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소년들이 그 사건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소녀들, 그리고 그들의 자살.
영화 속에서는 이런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소재들이 합쳐질 때 되려 큰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소재 자체의 성향은 반대지만, 결과적으로 이 둘을 합치했을 때 영화적으로는 잘 어울리는 소재의 합이라고 볼 수 있다.
럭스가 차속에 있는 소년에게 키스를 퍼붓던 순간, 그리고 그 경기장에서 사랑을 나눈 뒤, 푸르스름한 새벽에서 혼자 깨어난 순간. 두 순간은 내게 각각 생을 온몸으로 느낀 순간, 그리고 죽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순간으로 보인다.
아름다움이 슬픔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목도하는 건 언제나 큰 여운을 남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