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

자해와 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으므로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크기변환]2.jpg


 

Curfew

1. 통행금지령; 통행금지 시간

2. (부모가 자녀에게 부과하는) 귀가 시간

 

<커퓨>는 전화벨 소리로 시작한다. 욕조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리차드에게 걸려온 전화다. 리차드는 동생인 메기에게서 조카 소피아를 몇 시간만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조카를 만나게 된다.

 

조카와 삼촌의 만남은 독특하다. 만나자마자 똑 부러지게 만남의 '규칙'을 설명하는 소피아의 모습도 그렇고, 소피아가 내민 '갈 수 있는 곳 목록'에 볼링장이 있었던 것도 그렇다.

 

둘의 만남은 당연하게도 순탄치 않다. 소피아의 태도는 10대 다운데, 조카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삼촌의 질문을 무시하는가 하면 삼촌이 위험한 분위기의 건물에 들리자 집에 보내달라 소리치기도 한다. 동시에, 삼촌의 플립북(죽어도 계속 살아나는 '소피아'의 이야기)과 게임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이것저것 질문하며 잔소리를 하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자 기뻐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소피아의 활달함에 힘입어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5시간의 짧은 만남 끝에 리차드는 소피아를 메기에게 데려다준다. 남매간의 짧은 대화 끝나고 리차드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크기변환]3.jpg


 

영화의 시작에서, 리차드는 손목을 그은 채 욕조 물에 잠겨 간신히 전화를 받는다. 메기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 안 좋고 부탁할 사람이 정말로 없다며, 소피아를 잠시만 맡아달라고 말한다. 그런 메기의 전화 통화를 듣고 있는 소피아의 표정은 방금까지 죽으려던 삼촌의 표정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짧은 만남 끝에 리차드가 바로 삶을 희망하는 것도 아니고, 메기가 오빠를 바로 다시 자신의 삶으로 들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영화의 끝에서 사소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소피아는 아침과는 다른 표정으로 집에 도착한다. 메기는 리차드가 다시는 소피아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도 결국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도움을 요청한다. 리차드는 여전히 손목을 그은 채 욕조에 잠겨있지만 결국 가끔 메기를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크기변환]34.jpg

 

 

아무리 리차드와 메기 사이의 대사나 상황을 통해 둘의 궤적을 어림짐작하더라도 여전히 인물의 배경 정보는 제한적이다. 어떤 것이 리차드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모르고, 죽기 위해 스스로 손목을 그은 남자가 왜 욕조 옆에 집 전화기를 가져다 두었는지 모른다. 리차드와 메기 사이에 정확히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모르고, 메기가 폭력적인 남편을 어떻게 떠나게 됐는지 모른다. 그 과정이 소피아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짧은 만남이 앞으로 셋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소피아'를 알고 있지 않은가? 죽어도 계속 되살아나는 작은 영웅 말이다. '소피아'를 만들어낸 사람과, 그 이름을 딸에게 붙인 사람과, '소피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다른 방향을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아주 이상해서 작은 상처에 죽을 것처럼 아파하다가도 사소한 것에 세상이 떠나가라 웃기도 하니까.

 

비록 상처가 바로 낫지는 않더라도 인물들이 회복의 시작에 도착했길 바란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