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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심청전의 원작자를 아는가?

 

효녀孝女 심청. 맹인인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기꺼이 몸을 던진 딸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홍길동전이 당연히 그렇듯 심청전도 작자 미상이다. 원작이 소설이었는지 아니면 설화의 형태였는지에 관해서 아직도 말이 갈리고 있다. 후자의 경우 897년에 신라에서 비롯했다고 여긴다.

 

신라부터 조선까지 오며 '심청'이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을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판소리꾼이 소녀가 인당수에 빠졌다가 용궁으로 가는 대목을 부르면 모두가 좋아하며 박수 쳤을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돌아가며 '그 여자애 정말 훌륭해, 그래'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쯤은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딸이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행위가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조선의 딸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혹은, 집에 돌아와서 잠든 자식의 얼굴을 보며 기대보다는 미안함이 몰려오는 부모가?

 

다행히 2025년에는 그런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한때는 금기였던 질문이 열린다.

 

 

 

몸을 던지는 순간, 온전히 효심(孝心)이었나?


 

 

심청이 이 말을 듣고, ··· 분향사배(焚香四拜) 우는 말이, 아이고 아버지, 이제는 하릴없이 죽사오니, 아버지는 어서 눈을 떠, 대명천지(大明天地) 다시 보고, 칠십생남(七十生男) 하옵소서. 여보시오 선인(船人)님네, 억십만금(億十萬金) 퇴를 내어, 본국(本國)으로 가시거든, 우리 부친(父親)을 위로(慰勞)하여 주옵소서.

 

출처: 한국판소리보존회

 

 

기존의 심청전에서 인당수에 뛰어드는 부분을 보면 아버지를 향한 지긋한 효심만이 드러난다. 심청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눈먼 아버지 걱정뿐이다. 부친이 사방이 환하게 밝은 세상(대명천지)를 보기를 원하더니, 나이 칠십에 새로운 아들을 낳기를(칠십생남) 바라기까지 한다.

 

무척이나 동화 같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국립정동극장에서는 선명한 사랑愛 위에 증오憎를 얹어서 심청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검은 심청'을 등장시켜 복잡한 심리愛憎를 나타낸 것이다.

 

 

심청 페어사진2.jpg

 

 

심봉사는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홀아비였다. 심청의 유년기 환경이 열악했을 것이 뻔히 보이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녀는 이제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됐다. 원했을 리 없는 고난과 시련은 탓할 방향을 찾아야 했을 것이고, 심봉사를 조롱하는 듯한 몸짓을 통해 그녀는 내면의 분노를 나타낸다. '검은 심청'은 심청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억눌린 감정과 원망을 의미한다.

 

반면에 '하얀 심청'은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심청에게 증오만 남았다면 바다에 몸을 던졌을 리 없으니, 백색의 심청 역시 필수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다. 그녀는 처연하지만 강단 있는 몸짓을 보이며 순백의 마음을 표현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들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검은 심청과 흰색 심청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그들의 대비가 부각된다. 새카만 어둠과 사랑이 충만한 백색. 시각적으로도 전혀 다른데, 흘러가는 선의 흐름까지 눈에 띄게 차이 났기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대립 끝에 승기를 쥔 것은 하얀 심청이다. 결국 그녀는 인당수로 뛰어들었고, 검은 신청은 놀랍게도 분노하는 대신 오열한다. 두 심청이 근본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용왕은 무조건 남자여야만 하는가?


 

기존의 심청전에서 용궁으로 간 그녀가 만난 절대자는 남성이었다. 기존의 용왕龍王은 위엄 있고 권위 있지만 연민을 가진 존재로, 심청을 불쌍히 여겨 다시 인간 세상으로 보내주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신선하게도 용왕을 여성으로 설정했다. 바다의 신이 가진 '연민'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여기에는 정구호 연출가의 따뜻한 의도가 깃들어 있기도 한데, 어릴 적에 어머니를 잃은 심청이 엄마의 온기를 느껴보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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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국민 배우 '채시라'의 도전이다. 그녀는 40년 차 프로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무용을 사랑하는 무용수이기도 하다. 「단심」의 창·제작진 상견례 자리에서 채시라는 "배우가 되기 전 무용수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며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를 꾸밀 생각에 설렌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만들어갈 새로운 용왕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갔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자 특유의 자애롭고 온화한 이미지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합쳐지며 굉장한 시너지를 냈다. 강인하고 따뜻한 모습의 '채시라 표' 여성 용왕은 심청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롤 모델이 되어준다. 덕분에 심청은 단단한 여성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누구도 보지 못한 심청의 마음을 마주하다


 

「단심」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을 재해석하며 신선함을 안겨준다. 또한, 국립정동극장 공연의 작품성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고품격의 작품이다. 그들의 새로운 시도는 심청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울고 웃게 만든다. 국내를 넘어 해외의 관객까지 매혹시킨 해당 작품을 남은 기간 동안 꼭 관람하기를 바란다.

 

전통연희극 「단심」은 국립정동극장에서 25년 5월 8일부터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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