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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난 4월 말, 친구들과 함께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근 몇 주 동안 시험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이 짧은 여행은 마치 지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미니 휴가 같았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하면서 강릉의 골목골목을 장식한 아기자기한 소품샵을 들르기로 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으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경제적 여유란 늘 조심스럽다. 하나의 소비를 할 때도 고민이 깊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수고한 나에게 꼭 선물을 해주자!"는, 다소 전투적인 마음가짐으로 소품샵을 돌았다.

 

강릉에서 네 곳 정도의 소품샵을 들렀다. 소품샵의 매력은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또렷한 취향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밀도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햇빛을 머금은 연하늘색 소품들로 가득 찬 공간도 있었고, 힙스터의 영혼이 깃든 레트로풍 소품들로 넘쳐나는 곳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취향과 가장 잘 맞았던 곳은 두 번째로 들른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가장 아기자기했던 곳’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게에 들어서서 여러 소품들을 구경하다, 내 시선은 가지각색의 원석이 콕콕 박힌 팔찌들이 놓인 고딕풍의 탁자에 머물렀다. 마치 누가 자신을 골라주길 기다리는 듯, 원석들은 각자의 빛깔과 모양으로 조용히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팔찌끈의 색깔부터 원석의 결까지 모두 달라, 어떤 게 예쁜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예쁜 것을 고르기보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오래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은 연녹색 끈에 어두운 붉은빛 원석이 중심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투명한 장식과 연두빛 포인트가 달린 팔찌였다. 그 팔찌에는 ‘무화과 원석’이라는 작은 설명 태그가 붙어 있었다. 어쩐지 그 이름이 마음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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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전까지, 무화과는 나에게 낯선 과일이었다. 사실 무화과는 ‘동의보감’에도 등장하는 과실로, 한반도에서도 오래전부터 약재나 식재료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무화과는 늘 어딘가 서양의 정물화 속에서, 하얀 식탁보 위에 조용히 굴러가는 소품처럼 느껴졌다. (아주 멀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더욱이 우리 집에서 무화과는 익숙하게 먹는 과일이 아니었기에 무화과는 애초에 마트에 가도 선택지에서 제외된 과일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혼자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다양한 식재료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무화과였다. SNS에서 무화과를 그릭 요거트 위에 얹어 먹는 사진을 보고 무작정 사들였지만, 막상 손질법조차 몰랐다. 네이버 블로그를 뒤지며 무화과를 씻을 때는 꼭지를 잡고 세워서 닦아야 하고, 밑둥의 별 모양이 그것의 익은 정도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보관할 때는 서로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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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은 ‘꽃이 없이 열매가 맺힌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과실은 꽃을 피우고 나서 열매가 맺히지만, 무화과는 겉으로 보기에 꽃이 없다. 하지만 무화과를 반으로 잘라보면 붉고 촘촘한 속살이 가득한데, 사실 그 안에 자리한 수많은 작은 꽃들이 바로 무화과의 진짜 얼굴이다. 겉껍질은 그 꽃들을 감싸는 꽃받침인 셈이다.


꽃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화과의 꽃들은 스스로 수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무화과 말벌이 미세한 구멍을 통해 열매 속으로 들어가야만, 그 안의 꽃들이 수분되어 무화과는 비로소 완성된다 이 과정 속에서 말벌은 무화과 열매 속에서 알을 낳게 되면서 무화과는 비로소 열매로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생태 속에서, 무화과는 알고 보면 사실 꽃이 가득한 과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숨겨진 과실 덕분에 무화과는 ‘은화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은밀하게 피어나는 꽃.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꽃이라니, 왠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보이는 은밀한 사랑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은화과가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면, 아마도 수줍어 양 볼이 쉽게 붉어지는 소녀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무화과의 꽃말은 풍성한 결실이다. 그 이름과는 꽤나 역설적이다. 이 신비롭고도 조용한 과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너무 당연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유독 SNS 속에는 반짝이는 순간만이 쉽게 기록되고, 웃고 있는 얼굴만이 공유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크고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나는 종종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했다. 타인의 각양각색의 꽃들이 가득한 세상의 정원에서 왠지 내 결실은 애틋하면서도 자그마해 보이는 순간이 많았다.

 

 

#울산가배 #무화과 #fig.jpg

 

 

커다란 꽃을 피우는 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고, 그 향기가 누군가에게로 다시 흘러들어가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꽃이 커다랗게 피어나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무화과를 가르며 깨닫는다. 또한 때로는 아무것도 피우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이미 무수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무화과처럼,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서서히 붉은 결실을 맺고 있는 것. 사실 누구보다 내 안을 그득히 채우는 붉은 꽃을 피우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결국, 누군가에 의해 무화과라고 불리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은화과’라고 정의내리면 된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언어로 나를 명명하는 것. 아주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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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눈에 띄는 꽃이 될 수는 없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피어나도 괜찮다는 것을 무화과의 은은한 단맛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그리고 남들 눈엔 낯설거나 덜 익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누구보다 속이 꽉 찬 은화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겉으로는 쉽게 알 수 없는 타인의 결실에도 조용히 다가가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려보며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박유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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