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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여름, 2007』 “비밀로 할 수 있어?”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 ‘석영’은 물갈퀴를 가진 특별한 소년 ‘우주’를 만난다. ‘우주’의 물갈퀴는 ‘석영’과 ‘우주’ 둘만의 비밀이 되고, 평생 같이 수영을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우주’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으로 수영에 두각을 나타내며 헤어지게 되는데...

 

『여름, 2013』 “너만 내 얘길 들어줄 수 있어”

 

특별했던 ‘우주’의 세계는 희미해지는 물갈퀴처럼 점점 평범해지고,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석영’을 찾아가게 되는데...

 

예민한 감정 사이를 헤엄치는 소녀와 소년의 비밀과 성장을 담은 청춘 연대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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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이 인 더 풀>의 시놉시스다.

 

여름, 수영, 비밀, 소녀와 소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열리는, 파랗고 찬란한 유년의 젊음을 형용하기에 더없는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일견 이 영화는 청춘, 꿈, 성장, 우정, 용서, 이해에 대한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소년 우주와 소녀 석영의 감정과 대화 그리고 따로 또 같이 하는 행동들을 차근히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에워싸고 있는 주제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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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수 감독의 첫 장편 입봉작인 영화는 수영을 좋아하지만 빼어날 정도로 잘하진 못하는 13살 소녀 석영과 수영을 좋아하는지조차 분명히 드러내지도 않지만 빼어나게 잘하는 12살 소년 우주의 이야기다.

 

나이와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지닌 저마다의 수영을 향한 애정이나 수영 실력은 우주가 가진 ‘물갈퀴’란 특별한 능력 혹은 (비)장애적 요소에 의해 각자에게 재해석되고 재조명된다.

 

감독은 GV에서 기존 써둔 단편의 완성도가 높게 느껴져 장편으로 디벨롭해 이 영화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투입한 장치가 바로 물갈퀴라고 밝혔다.

 

석영은 우주가 물갈퀴를 갖고 있어 수영을 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선천적 장점을 스스로 떳떳하게 누리지도 못한 채 숨기 급급했던 우주에게 연민을 느껴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동시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부러움을 억누르며 어느 순간 수영에 대한 꿈을 놓아 버리게 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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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 만난 2007년에서 6년의 시간이 흘러 2013년이 되었을 때, 석영은 학업과 연애 같은 여느 평범한 고등학생이 경험하게 되는 일상들을 보내는 한편 우주는 촉망받는 수영선수로서의 초석을 닦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들을 지낸다.

 

석영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우주가 본인의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을 접하지만, 우주는 석영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하다 점점 희미해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해내지 못하는 물갈퀴로 부진이 이어지던 어느 날 여전히 석영이 살고 있는 고향을 찾는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둘은 오랜만에 마주한다. 짧지만은 않은 6년 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로를 궁금해 하고 생각했던 석영과 우주는 말로, 헤엄으로 대화하며 여름이란 바깥에서 다시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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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과의 짧은 여름 끝에 우주는 수영대회 직전 옅어진 물갈퀴를 스스로 자르며 경기에 나선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물갈퀴는 “재능의 저주”다. 재능은 흔히 노력 그 자체 혹은 노력의 총량과 비견되며 때론 높이 때론 낮게 평가된다. 재능이란 단어가 수반하는 운명이자 무게인 셈이다.

 

나는 우주의 물갈퀴뿐 아니라 석영의 수영을 향한 열망과 욕심도 재능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드물고 귀한 재능 또한 없기 때문이다.

 

석영이 지나온 6년 속에 어떠한 순간들이 석영의 재능을 잃게 한 것인지 극중에선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짐작하건대 석영은 스스로 재능인지도 몰랐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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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해져 버린 재능을 놓아 버렸지만 여전히 꿈에 가닿고자 하는 우주와 굳건했지만 재능인지 인지조차 못해 꿈을 포기하고 말았던 여린 석영이 주고받은 어린 여름날의 기억은 두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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