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한 번쯤 ‘그로테스크하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술에서 '그로테스크'(Grotesque)는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것,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혹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부조화를 이룬 것을 의미한다.
낭만주의 문호가 빅토르 위고는 그의 희곡 『크롬웰』 서문에서 그로테스크 미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위고는 현실 세계는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등 여러 상반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술은 이 모든 것을 담아낼 때 비로소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조화와 균형,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아름다움과 추함, 숭고함과 비속함, 선과 악 등 상반된 모든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중 '추함'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그로테스크’를 제시하였다. 즉, 그로테스크는 바로 현실의 추함, 기괴함, 비정상성을 포착하거나 이를 아름다움이나 숭고함과 부조화스럽게 결합함으로써 인간과 사회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내는 강력한 예술적 도구인 것이다.
그로테스크 미학은 뮤지컬 작품 속에서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특히 기형적이고 흉측한 외모를 가졌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작품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이나 사회 비판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 난 괴물 추한 구경거리, 뮤지컬 <웃는 남자>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은 어린시절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찢어져 '웃는 얼굴'이 되었다. 이 흉측한 외모는 그의 비극적인 삶과 고통스러운 내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다. 그의 '웃음'은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와 즐거움이지만, 그윈플렌 자신에게는 끔찍한 상처이자 슬픔이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희극성)과 내면의 '비극'(비극성) 사이의 분명한 부조화는 그로테스크함을 극대화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그의 그로테스크한 외모는 화려하지만 위선적인 귀족 사회와 대비되어, 겉치레에 불과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상류층의 추악함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보다 보면, 사회를 향한 냉소와 더불어 동화적인 분위기나 가족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윈플렌, 우르수스, 데아, 그리고 유랑극단 사람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보살피고 보듬는다. 이들의 관계는 차갑고 각박한 세상 속에 피어난 작은 희망이자 안식처로 그려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조명, 아늑한 공간을 통해 표현되는 이러한 가족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한 외모나 세상의 잔인함과 대비된다. 가장 따뜻했던 보금자리가 가장 비참한 현실과 닿아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겪는 고통과 비극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도록 한다. 행복하고 동화 같은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로테스크함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역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 콰지모도 역시 꼽추라는 선천적 기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의 외모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며,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주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콰지모도는 흉측한 겉모습과 달리 순수하고 충직하며 헌신적인 내면을 가졌다. 반면, 대주교인 프롤로는 자애롭고 숭고한 겉모습 뒤에 에스메랄다를 향한 추악하고 폭력적인 욕망을 품고 있다.
여기서 그로테스크 미학의 핵심인 상반된 요소의 충돌과 결합을 발견할 수 있다. 콰지모도의 겉모습은 '추함'일지라도 내면은 '숭고함'을 상징한다. 반면, 프롤로는 겉모습은 '숭고함'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추함' 그 자체이다. 이렇게 상반된 두 인물의 대비는 관객들로 하여금 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피상적인지를 강력하게 시사한다. 진정한 추함과 아름다움은 외모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행위에 있음을 그로테스크한 인물 설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장엄하고 신성한 공간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괴물 형상을 한 가고일을 배치한 것 역시 숭고함과 추함의 결합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댈 위한 밤의 노래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본명 에릭)은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진 인물로, 그의 존재 자체가 그로테스크 그 자체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외모를 숨기기 위해 항상 가면을 쓰고 오페라 하우스 지하 미궁에 숨어 지낸다. 여기서 ‘가면’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도구를 넘어, 그의 실체에 대한 미스터리와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장치이다.
팬텀은 앞서 등장했던 그윈플렌이나 콰지모도와는 다르게 흉측한 얼굴과 그의 내면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팬텀의 내면적 고통은 흉측한 외모로 인해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고독과 소외감에 기인한다. 그는 인간적인 교류와 사랑을 갈망하지만, 자신의 모습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팬텀은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외모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없음에 좌절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묘사는 팬텀을 단지 괴물이 아니라 두려움과 동정심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로 인식하게 만든다.
자정. 모든게 정상,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그로테스크함은 바로 지킬과 하이드라는 두 개의 인격체가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설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한 인물 안에 극단적인 선과 악이 공존하며 충돌하는 모습은 그로테스크 미학의 핵심인 상반된 것의 조화롭지 않은 결합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선량한 지킬 박사가 실험을 통해 자신의 악한 본성을 분리해 내면서 탄생하는 하이드는 흉측하고 폭력적인 괴물이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인물(지킬)의 내면에서 가장 비도덕적인 존재(하이드)가 나온다는 아이러니는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그로테스크하게 풍자한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는 장면에서 그로테스크함이 시각적, 청각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고통스럽게 뒤틀리고 변형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조명, 음향 등의 효과가 이 기괴한 과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 뮤지컬 <스위니 토드>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이발사 벤자민 바커와 그에게 협력하는 파이 가게 주인 러빗 부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로테스크 미학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앞선 작품들과는 다르게 <스위니 토드>에는 흉측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스위니 토드>는 끔찍한 살인과 복수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블랙 코미디 요소와 결합해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발사가 살인을 하고, 그 시체를 이용해 파이를 만드는 잔혹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까지 그려내는 방식 자체가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작곡가 손드하임의 불협화음 가득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불편하고 기괴하게 들리는 음악은 작품의 배경인 19세기 런던의 뒷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복수와 살인사건과 잘 어울리며 작품 전반의 어둡고 섬뜩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때때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불협화음의 의도적인 병치는 그로테스크 미학에서 숭고함과 추함을 함께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다. 분명 끔찍한 장면인데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된다거나, 서정적인 장면인데 갑자기 불협화음이 끼어드는 등의 예상치 못한 조합이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불안감, 긴장감, 심지어 거부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스위니 토드>의 불협화음은 단순히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라 계산된 예술적 장치로서 그로테스크를 청각적으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