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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청춘의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 영화 '보이 인 더 풀'의 개봉도 곧이다.

   

원래가 대강의 내용도 파악하지 않고 암막 앞에 앉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도 포스터 속 "시합해. 정정당당하게. 자유형 25M, 물갈퀴 없이!"라는 한 줄을 보고 판타지려나 하며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런칭 포스터03_여름, 2007 꿈.jpg

 

 

곧 밝아진 스크린에서 2007년의 우주와 석영을 연기하는 아역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기분이 맑아졌다. 축축한 우울함을 말려주는 여름이라는 계절, 그렇다고 푹푹쪄서 찝찝하지 않도록하는 푸른 물 덕분이기도 하다. 또 석영의 얼굴이 화면 전체에 들어차거나, 우주가 틱틱대며 집 대문을 닫고, 불꺼진 수영장에 빠져드는 신을 아낌없이 할당한 것에서 독립영화의 매력이 잘 느껴졌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결핍이 있는 아이의 상태에서 만난 둘은 금방 친구가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르게 우주는 자신의 비밀인 '물갈퀴'를 선뜻 석영에게 보여준다.

 

수영장에서 양말도 벗지 않던 우주가 석영으로 인해 수영을 시작하고 평생 함께 수영할 것을 약속하지만, 이런 시작이 둘 사이에 6년이라는 간극을 만들어 버렸다.

 

2013년의 둘은, 그러니까 둘의 외로움은 너무 잘 아는 것이라 조금은 착잡했다. 우주도 촉망받는 수영선수로서 말할 수 없는 부담을 느꼈겠고, 재능의 징표인 물갈퀴가 옅어지면서 혼란스러웠겠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자각해나가는 석영의 시점에 더욱 이입이 잘 되었다. 석영은 수영을 안 시켜줘서 울거나, 당장이라도 수영장에 들어가고 싶어 '엄마 없는데요'라고 할만큼 애정했던 대상을 잃었다. 그 사이 우주는 메달리스트가 되고 피아노를 치던 동생은 엄마에게 작곡을 해줄만큼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우주가 찾아와 물갈퀴가 옅어져간다고 이야기 했을때 석영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완전히 현실적인 상황은 아니니 뚜렷한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비참했을 것이다. (나는 넘볼 수 없는 재능을 가진) 네가 어떻게 나한테 신세한탄을 할 수 있냐고 원망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둘 수 없는 사랑때문에 원망을 다 써버리지도 못한다.

 

한편 우주는 석영보다는 한발 늦게 '별것 아닌 나'의 기분에 잠식된다. 그리고 이번엔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물갈퀴는 우주의 콤플렉스이기도 하지만 재능의 징표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서 이 물갈퀴가 옅어진다는 것은 변성기가 와서 사랑 받는 목소리를 잃게된 가수거나 체형이 변해 예전 보다 둔한 회전을 하게 된 피겨스케이팅 선수일 수 있다. 재능이 저주가 되고 마는 경우다.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우주는 석영의 환상이었을지, 나름의 해피엔딩이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름, 2007』 “비밀로 할 수 있어?”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 ‘석영’은 물갈퀴를 가진 특별한 소년 ‘우주’를 만난다. ‘우주’의 물갈퀴는 ‘석영’과 ‘우주’ 둘만의 비밀이 되고, 평생 같이 수영을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우주’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으로 수영에 두각을 나타내며 헤어지게 되는데…

 

『여름, 2013』 “너만 내 얘길 들어줄 수 있어”

특별했던 ‘우주’의 세계는 희미해지는 물갈퀴처럼 점점 평범해지고, ‘우주’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석영’을 찾아가게 되는데…

 

예민한 감정 사이를 헤엄치는 소녀와 소년의 비밀과 성장을 담은 청춘 연대기가 시작된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는 장단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탄생시킨 감독님과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해석이 여러면에서 엇갈려서, 영화예술의 복합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나의 감상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여운이 살짝 지워졌던 것 같다.

 

배우들이 연기하던 물과 여름의 계절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은 좋았다. 나는 미처 모든 계절이 여름이라는 것에 주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신선한 마스크를 캐스팅한 비화에 대해서, 감독님이 언급한 '연극에서의 발산성'과 '영상 연기의 일상성'도 기억에 남는다. 어떤 대단한 감정의 전이를 노력하지 않더라도 꾸며내지 않은 연기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뚜렷한 접점이 있는건 아니지만 샬롯 웰스의 애프터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이 연상되기도 했다. 두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보이 인 더 풀'도 즐거이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함과 후회가, 아쉬움이 결정이 되어 시린 빛을 내는 것이 청춘이라면 우주도 석영도 나도 청춘의 한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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