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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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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좋아한다. 시를 읽는 것도, 시집에 수록된 시 중 단 하나만을 마음에 담는 것도 좋아한다.

 

시를 읽는다고 해서 시인이 의도한 것을 그대로 간파하는 실력은 없다. 그래도 그 시에 담긴 언어가 주는 분위기와 이미지는 고된 하루를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스낵으로 간편하게 보기 좋은 ‘느좋 시’를 준비했다.

 

시를 언제 읽으면 좋은가? 하면 나는 ‘읽고 싶을 때’라고 답한다. 시를 읽으며 무언가 배우는 것도 좋고, 혹은 시가 주는 느낌으로 하루의 공백을 채워도 충분하다. 깊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각 작품들로 구성해 보았다.

 

이번 주를 담담하게 마무리하고 평안한 앞날을 기원한다.

 

 

동료와의 관계는 원만한가?

아직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내게는 결말을 알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난입해서

장르를 바꿔버리길

기대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수동적 공격성이 강한 것 같다고

 

기도에 가까웠던 것을

자기계발식으로 다시 작성했다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부르면

긍정적으로 날아오는 새를 상상하다가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수명이 다해버린 새를

저절로 떨어지는 새를 떠올렸다

 

술과 담배와 커피를 끊고

자신이 둥근달이 된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밝고 완전한 구형의

흙덩어리

 

명랑한 사람은 어느새 사라지고

 

왼발 오른발의 순서를 잃고

길 한중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처럼

숨 쉬는 법을 배웠다

 

긴장을 풀고 숫자를 세면서

천천히

 

새로운 동료가 웃으면서 팔을 이끌었다

우리 이제 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 남현지, 「워크숍」

 

 

이 시를 보며 사회적 태도와 실제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이중성, 그 간격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느껴졌다. 당장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혹은 나아가고 싶은 삶의 길을 모르더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지만, 삶을 살아가려면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눈앞에 호수가 있고

나는 시민과 조경이 익숙한 듯이

벤치에 앉아서

 

방금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다가

묶여 있는 개를 바라보는 회사원처럼

호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배가 부르다는 게

큰 개가 묶여 있다는 게

 

누가 길을 물어서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호수만 보이는데

 

꿈에서는 나도 찰랑거리다가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물질처럼 쏟아져서 깨어났다

잉어 몇마리와 엉겨 붙은 물풀을

떼어내면서

 

호수는 잘 묶여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처럼

고요하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생각하면서

호수를 따라 걸었다

삼십분 전에 본 사람이

다시 옆을 달리고 있다

 

- 남현지, 「호수공원」

 

 

호수는 내가 봐야 호수라는 것, 내가 호수로 보았기 때문에 호수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호수나 강, 바다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잘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지만 화자는 ‘호수는 잘 묶여 있었다’고 묶인 물들을, 묶인 물풀과 잉어를, 화자가 ‘살고 있는 건물’에 빗댄다. 오히려 화자는 이러한 호수에 대해, 묶여 있는 큰 개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든다며 안온한 심정을 내비친다. 가끔은 화자처럼, 일상을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며, 우리가 쉽사리 세상에 내비칠 수 없던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슬픈 감정을 굳이 숨길 필요 없다. 시집의 제목대로 우리의 세상은 우리를 분명히 응원하고 있다. 

 

 

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얼마만큼 그런가 하면 네가 좋게 들은 곡을 모아서 계절마다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앨범 커버도 손수 만들어서.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줘서가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인데. 야자 빼먹고 지하 클럽에 공짜로 벽화 그려주고. 포르투갈에 다녀온 다음부턴 어떤 가수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분명히 믿고. 밴드 하고 음반 내고 음악가가 되었고. 무엇보다 너는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 전주가 나올 때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벌써 다 알지. 술을 홀짝이며 기뻐하는 속삭거림에 너의 얼굴엔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또 짐짓 당연하다는 표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냐 조금 기다려봐,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할 거야 ……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끝난 후에 다른 곡을 들려주다가. 한참 그러다가. 한참 멀리까지 강 건너 바다 건너 잘 가다가. 결국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틀어놓고. 깊이 취해 고개를 기울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을 바라본다. 거기에 무엇 중요한…… 어떤…… 저절로…… 고여 있다는 듯이. 새로운 물질을 발명해버린 사람처럼. 나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네가 무언가 슬픈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섭다. 그것이 영영 슬픈 생각일까 두렵다. 두려움. 창백한 형광등이 어둠을 박살낼 때 우리가 집에 가져가는 것. 이제 허겁지겁 우리끼리의 농담 같은 음악들로 각자를 도로 채워놓고, 제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 임유영,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편안하게 읽기 좋은 산문시다.

 

우리는 화자가 말해주는 너의 특징으로만 너를 알 수 있다. 너가 사랑하는 것,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것에 관해 화자는 ‘그 이유는 그것이 아니고’라며 새로운, 정설의 이유를 알려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 시에 들어간 말줄임표가 신경 쓰인다. 마치 시의 중간을 끊어 두고, 화자와 너, 혹은 너의 이야기를 몰래 숨겨둔 것 같다.

 

기억은 무분별하게 머리에 입력되지만, 회상은 내가 원하는 기억을 추출해 인과관계를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라는 말이 떠오른다. 시 초반부의 너는 행복해 보이는데, 보이는 것만큼 행복을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이 시는 마치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처럼, 지금처럼 살아온 것이 과연 우리의 행복일까?

 

이 시집은 제목과 표지 이미지처럼, 오믈렛 같이 포근하고 따듯한 언어의 식감 속 이야기들을 잔뜩 담고 있다. 따뜻하게 목욕한 후 먹는 저녁밥처럼,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너에게서는 멸종된 과일 향기가 난다

 

투룸 신축 빌라 보증금 이천에 월세 구십, 어떻게 해야 너를 웃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두 시간 동안의 폭우, 일주일 동안의 아침, 유리병 속 무한히 터지는 기포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닮았어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청보리밭에 가고 싶다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릴 때 나는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아침의 어둠이 이젠 익숙해

그래도 같이 씻을까

산책을 갈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네 손의 아이스크림과 내 손의 소다수는 맛이 다르다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무한히 터지는 기포

나는 너의 숨을 만져보고 싶다

 

너는 머나먼 생각처럼 슬프거나 황홀한 곳까지 나를 데려갈 수 있다 이렇게 차가운 빛의 입자는 처음이야 아이스크림 속에도 휴양지가 있는 것 같아 매일 집에서 너를 보는데도

 

놀랍지

세상에 없는 농담 같아

 

마른 손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녹는

이상한 열매가 사랑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느린 목욕 시간

투명해지는 몸들이 자국을 가르치지

 

사라지지 않는 생각이 나를 쓰다듬고 있어

생활이라는 건 감각일까 노력일까

 

너와는 어디에서도 쉴 수 없어 미리 장소를 지워두었지 날씨를 오려두었지 향기만 남겨두었지 욕실용 슬리퍼가 바닥을 끄는 소리 어둠 속에 잠겨가고 우리는 우리의 미끄러운 윤곽을 읽는 데 몰두한다

 

시간이 잼처럼 졸고 나는 불붙은 기억이 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숨

뼈와 살이 좁혀진다

 

-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이 시에서 좋았던 부분은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와 ‘너의 마음은 무성하고 청보리밭의 청보리가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처럼 쉬워’, ‘무한히 터지는 기포/나는 너의 숨을 만져보고 싶다’, ‘놀랍지/세상에 없는 농담 같아//마른 손 위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녹는/이상한 열매가 사랑이라면’이었다.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상쾌한, 또 탄산이 가득한 느낌을 준다. 사랑하는 연인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면 이 시집을 함께 읽는 것은 어떨까.

 

편안하게 보기 좋은 시들을 몇 편 소개해 보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언제 지쳤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함부로 묻지 않는다. 우리의 지친 몸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 중력과 같고, 괜찮아지기 위해서 괜찮기 위한 행동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꼭 괜찮다고 할 필요도 없다. 오늘 내가 왜 지쳤을까 생각하는 것보다 오늘 내가 지쳤다는 걸 스스로 알아주고 이 시들과 함께 몸과 마음을 이완해주는 건 어떨까.

 

세상을 먼저 사랑하기 어려워도 괜찮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세상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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