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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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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를 쓰는 일보다 타인의 연애편지를 읽는 편이 훨씬 즐겁다. 설령 편지가 다른 누군가에게 이미 공개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노출된 것이라 하더라도 나로서는 편지를 쓴 사람의 손가락들을, 펜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읽는다. 사귀는 사이라 하더라도 연애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마치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 들거나 심지어 여전히 서로의 관계를 연애라는 단어로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는 듯하여 다시금 고백을 해야 할 것만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썼던 연애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일도 즐겁다. 편지의 발신인은 내가 아니기에.


 

아가씨,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무렵이면 - 이 편지를 읽는다면 말입니다-, 내 운명은 당신 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사랑받기를 소망하는 것, 그것은 내게 생명과도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 상태를 당신께 표현하기 위해 쓴 이 단어들을 그들도 사랑을 말하기 위해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말의 진실성을 믿어주세요. 이 말들은 나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진지하답니다.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내 마음의 목소리는 내게 충고합니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침묵 속에서 나의 정열이 당신에게까지 이르게 하라고, 그리고 만일 이 침묵의 증언이 당신을 불쾌하게 한다면 그 정열을 포기하라고.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만약 당신 눈에서 호의의 표시를 읽을 수 있다면, 말보다 더 순결한 방법으로 그 정열을 표현하라고 말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 <루이 랑베르>, p.118

 

 

말보다 더 순결한 방법은 침묵이고, 오직 침묵 속에서 나의 정열을 당신에게까지 이르게 하는 방법에 가장 가까운 형식은 편지다. 그것은 글자 사이마다 숨겨진 침묵을 교환하는 일이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들키는 일이니까. 왜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만으로는 불충분한 고백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이미 충분히 진전된 관계(썸을 충분히 타지 않았다?)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고, 사랑한다는 말을 제외하고 오직 나만이 전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지금껏 하지 않았던 사랑의 말, 예컨대 당신을 사랑하게 된 이유나 왜 꼭 당신이어야만 하는지, 당신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할 때 동원할 수 있는 그 무수한 말 중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이 있을까? 그런 말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연인과의 관계가 특별한 것이라고 믿거나 특별하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이유를 생각해낸다. 그러나 사랑은 다른 사랑들과 함께 놓여질 때 특별하고, 개인적인 것이 될수록 평범하다. 내 말의 진실성을 믿어주기를 바라지만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내 앞에 있다. 진실하지 않으면 진실하다고 믿으면 된다.

 

나는 누군가 나의 침묵을 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게 될 테니까.


 

그러니 많은 것에 대해 침묵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 대해 너무도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사랑의 본성에 위배되는 생각으로 그 사랑을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과 어울릴 만하다면, 내 삶이 순수하다면,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날 이해해주겠지요! 남자의 운명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여인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 <루이 랑베르>, p.120

 

 

사랑에 대해 너무도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여자를 통해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사고가 깊고 무거울수록 그 스스로가 말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너무도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의 편지가 궁금하다.

 

 

오늘은 그 모든 것에 관심조차 갖고 싶지 않아요. 게으름을 피우며 피곤하고, 오직 추억만이 마음에 들어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확신을 갖고 싶었고, 쉽고 공허한 말을 하기 싫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느낀 기쁨은 사랑이었어요. 이제 고통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지닌 모든 얼굴과 마주해야 해요. 재회의 기쁨,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테고, 그것을 원하고, 그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질 거예요. 절 기다려줘요. 저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연애편지>, p.20

 

 

프랑스의 작가이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페미니즘의 선구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넬슨 올그런에게 보낸 연애편지. 사랑이 지닌 모든 얼굴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움과 추악함 속에서 끝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보게끔 한다. 쉽고 공허한 말의 예시가 무엇인지를 함께 알고, 당신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듣고 싶다. 나의 귀는 당신의 쉽고 공허한 말을 듣기 좋아한다. 나의 귀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제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아마도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늘 편지를 쓰겠어요. 당신도 그렇게 해 줘요. 저는 영원히 당신의 아내랍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연애편지>, p.32

 

 

'당신이 아는 것'보다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더 흔하다. 어느 정도 확인된 상상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추지만 당신이 내 상상의 범주 바깥에 있음을 선언하는 순간 당신은 내가 앞으로 주게 될 사랑보다도 멀리 가있는 듯하다. 그보다는 내가 먼저 도착하여 이런저런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며 당신을 기다리는 편이 좋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도 나를 기다려줬으면 한다. 당신이 기다릴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주길.


 

우리는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새로운 출발점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헌신에 대한 검토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즉 헌신한다는 주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고, 헌신이 내세우는 목적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타인을 위하여 우리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하여 행동할 수도 없고, 아니 그 어떤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에게 베풀 수 있는, 그 어떤 부동(不動)의 행복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안내할 낙원도 없다. 그의 참다운 행복, 그것은 그를 모든 여건 너머로 데려가는, 오로지 그에게만 속해 있는 자유이다. 이 자유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 시몬 드 보부아르, <모든 사람은 혼자다>, p.108

 

 

나는 보부아르가 어째서 확신을 갖고 싶어 했는지, 자신의 연인에게 기다림을 기대하고 자신 스스로를 영원히 아내로서 규정하고자 했는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온전히 보부아르 한 사람을 위하여 새롭게 사랑을 규정할 동기가 없으며, 어쩌면 그것을 가능케 할 자유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기에 사랑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사랑 속에서 자유롭다.

 

여전히 나는 당신의 연애편지를 훔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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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호팬케익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 <루이 랑베트>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면서 이 남자의 집착이 글에서 보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셔워.. 근데 저런 집착도 괜찮을 것 같기도?
‘말보다 더 순결한 방법은 침묵이다.’
전 진심이 말로 나와버리는 순간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에서 멀어진 말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이 글에 몰입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의 침묵을 알아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게 될 테니까.’
이 부분에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ㅠ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사로 잡혀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 이것도 읽어봐야겠네요!!

글을 너무 잘 써서 마음에 더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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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3 18:51:4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