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전시회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대학교에 오기 전 살고 있던 지역은 서울과 거리가 멀었고, 유수한 전시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열리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림을 조용히 감상하는 것은 내 흥미와는 조금 동떨어진 일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이야기로 엮인 것들을 좋아했기에 그림 한 점 한 점을 감상하는 것이 지루하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건 내 편협한 사고에서 나온 편견이었다는 것을, 이번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전시회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전시회 포스터에 그려진 무하의 그림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그림들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웠고, 나는 자연스럽게 무하가 어떤 화가일지, 이 그림들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전시는 총 네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챕터 별로 무하의 그림들이 흐름에 따라 분류되어 있었고, 그에 맞게 전시회의 공간도 나누어져 있었다. 이 지면에서는 그중 보다 인상에 남았던 두 챕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두 번째 챕터인 <아르누보의 꽃>은 무하 예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는지를 잘 보여주는 챕터다. 무하는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계약을 맺으며 포스터 등을 그리며 이름을 알렸던 상업적인 분야의 화가였고, 그는 사라 베르나르와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에도 상업적인 곳에서 자신의 예술을 알렸다. 자신이 만든 제품들을 홍보할 방법을 찾던 기업들무하를 선택했다. 일명 “무하 스타일”은 브랜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제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법이 되었고, 무하는 그렇게 ‘브랜딩’의 시초를 마련해갔다.
술을 담는 통의 케이스 디자인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소장욕을 자극하는 디자인이다. 무하는 브랜드와 제품의 이미지를 이런 식으로 고귀하고 환상적으로 표현해 나가며, 대중들에게 예술을 더 가까이, 일상 속에서도 즐길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기까지 했다. 전시회에서 상업 제품에 사용된 다양한 무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담뱃감이나 와인 케이스 외에도 그릇, 엽서, 월별의 장면을 담은 달력까지 그 범위가 다양하고 그림이 다채로웠다. 당시의 서민들에게 무하의 그림은 일상 속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챕터를 관람하다 보면 그렇다면 무하는 상업적 성공만을 추구한 예술가였는지 의문이 들게 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챕터에서 그러한 의문이 해소된다. 관람을 도와주는 안내 문구 중 무하가 한 편지에 작성했던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삶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짓눌려, 꿈과는 다른 일들에 휩쓸리는 고통을 당신은 모를 겁니다.” (1904)
알폰스 무하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꿈꾸던 이상은 따로 있었다. 무하는 자신의 조국이자 뿌리인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 누구보다 힘썼던 예술가였다. 그는 <슬라브 서사시>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민족의 역사와 서사를 지키고 표현하는데 힘썼고, 슬라브 민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그림을 이용해 후원과 기부 활동을 전개했다.
<안젤리카 토닉>은 더 이상 기업의 광고 의뢰를 받지 않던 무하가 의례적으로 제작했던 광고 포스터 중 하나다. 기업을 운영하던 이는 무하의 동포였고, 무하는 그를 돕기 위해 특별히 포스터를 제작해 준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시회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상업적 작품 중에는 우표 또한 있었는데, 이 우표는 독립된 조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새 정부를 위해서 무하가 직접 디자인한 우표였다. 그만큼 무하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아냈다.
전시회를 모두 감상하고 나오는 길에 한 문장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알폰스 무하가 남긴 말 중 하나로,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화합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과 함께,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와 그가 남긴 작품들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무하는 상업적이고 일상적인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기도 했고, 슬라브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작품으로 표현하며 민족을 하나로 연결하고 화합하게 해 주기도 했다. 무하는 자신이 가진 이상이 확고했고 이를 펼치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알폰스 무하의 원화전은 단순히 그가 남긴 그림을 한 점 한 점 떨어져서 감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하라는 한 사람이 추구했던 것을 작품으로서 발견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작품 속에는 알폰스 무하의 인생과 가치관이 오롯이 담겨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눈을 이끄는 화려한 기법과 색감, 사계절과 시간 등을 표현한 연작 작품 등은 추상적인 단어를 이렇게도 형상화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측면의 생각까지 더해 주었다.
알폰스 무하의 원화전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7월 1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