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눈보라도 스노우볼의 포근한 눈 세례처럼 느껴지는 크리스마스였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내게 성탄절이란, 위대한 분이 그 탄생만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에게 휴일을 선사하는 날 정도의 의미다. 신앙 없이 혜택을 받아온 나는 이번만큼은 나름대로 은혜를 갚고 싶었고 고민 끝에 모텔을 예약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분이 가장 강조한 말씀을 충실히 따르기 위함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와 애인은 새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섹스를 즐기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애인과 함께하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처음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무던한 이이지만, 심장만큼은 꽤 호들갑을 떠는 편이다. 낯선 것이 올 때면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다고 난리를 친다. 덩달아 나도 울렁거린다. 이 기분 나쁜 멀미에 취하면 괜히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오직 낭만을 재료 삼아 상상해 보기 같은 것.
애인과 딱 달라붙어 시린 겨울바람을 뚫고 모텔에 도착한다. 문을 닫자마자 꽉 찬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서로의 옷을 벗겨준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푼다. 가벼운 와인으로 몸에 열을 더하고 싱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시선은 상대의 눈에 고정. 유일한 예외는 몸 곳곳을 주물러 줄 때다. 이따금 키스도 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온다. 녹는 듯한 나른함과 야릇한 긴장을 동시에 유지한다. 점차 생각은 지우고 감각에 집중한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사실 정신 못 차렸다. 머릿속 풍경으로만 남겨두기엔 너무 선명하게 그렸다. 이미 뇌는 이 드라마를 또렷한 과거 내지 반드시 올 미래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별 수 있나. 파트너에게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우리 거품목욕 하자....
러쉬에서 우주를 닮은 배쓰밤을 구매했다. 배쓰밤엔 거품을 내는 기능이 없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우리는 버블바도 구매했다. 예상 못 한 지출이 있었지만 올리브영에서 질 좋은 놈으로다가 콘돔을 골랐다. 어떤 로망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을 때 로망으로 성립할 수 있는 거다. 방으로 가는 길, 우리는 러쉬에선 과장되게 연인 행색을 하고 올리브영에선 과장되게 남남 행색을 한 웃픔에 대해 소회를 나눴다.
신성한 섹스가 끝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허기가 져서 눈이 돌아갔다. 밤이니까 하나만 먹어야 건강하겠지. 초코송이와 나쵸 중에 뭘 살까. 아까 라면 먹었으니까 초코송이 어때. 근데 나쵸의 짭짤함은 라면과는 달라. ....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나는 길어지는 대화에서 빠져나와 우리가 30분 전까지 벌였던 짓거리를 복기했다. 문득 웃겼다. 서로를 탐미하던 그때의 우리와 과자를 탐미하는 지금의 우리가 도무지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다. 짧지만 넓은 이 낙차. 허물을 벗고 새로운 우리로 탄생한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점원이 보는 우리는 벗은 껍질일까 뽀얀 속살일까. 그건 얼마나 다를까.
점원께서 엄청난 통찰력을 가진 걸까. 과자가 달고 짠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으름장을 놓는다. 너희가 한 섹스는 불온하다. 그래서 너희는 불온하다. 간파당한 거다. 동시에 선언 당한 거다. 네깟게 아무리 달라진다 한들 그 요상한 껍질 속에 박제될 운명이라고.
잠시 당황한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 답한다. 무언가 맞긴 한데 무언가 틀렸습니다. 그러니까 좀 단순 무식한 면이 없지 않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확고한 태도만큼은 부럽습니다. 깔끔하게 선악과 존망을 결정하고 선언할 수 있다니, 그 현명함이 얼마나 편할지 가늠도 할 수 없군요. 아득한 통찰의 소유자여 선망합니다. 일단 물을 흐리고 찝찝한 칭찬을 날리고 도망간다. 애인과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품은 채 눈보라 속을 헤쳐 돌아왔다.
어느새 연말이 연초로 바뀌었다. 날 것의 분노와 슬픔은 모름지기 사건의 비하인드, 가장 뜬금없고 그래서 취약할 때 찾아오는 법. 초보적인 혐오에 대응할 말을 왜 미리 만들어두지 않았을까. 우둔한 나는 뒤늦게야 스스로를 수호할 언어를 만들어 보려 한다. 우선 사건을 되돌아보려 하는데 그제야 빡이 치고 호흡이 가빠온다. 그리곤 정작 당사자는 들을 의지가 없는 말을 짓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어 그만둔다. 처리되지 않은 감정에게 방 한 켠을 내어주고 다시 외진 세상으로 돌아간다.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온다. 점원은 계산대에서 권태롭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과자 앞엔 애인과 나뿐이다. 안심한다. 그래, 이 사람은 인사성 밝은 내가 30분 전까지 '불온한' 섹스를 즐겼단 걸 꿈에도 모를 거다. 지금 여기 우리 사이에 불온함은 없다. 지금 여기 우리 사이에 있던 친절도 곧 사라질 거다. 불온함이든 탁월함이든 빠르게 표백될 거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으로 도망갈 거고, 우리 사이엔 항상 시차가 있을 거다.
곱씹어 보니 상상 속 나는 꽤 훌륭한 멘트를 날렸다. 점원의 말은 단순 무식한 게 맞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잘게 나눠진 단편들을 이어 붙인 덩어리다. 각각의 조각은 분명 우리의 일부지만 충분한 우리가 되기엔 부족하다. 어떤 조각에 대한 증언은 완전한 사실일 순 있어도 온전한 사실이 될 순 없다. 조각과 조각은 합쳐지며 갈라진 틈을 메꾸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틈이 생긴다. 새로 생긴 균열은 쉽사리 보이지 않고 동일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의 벌어짐이 우리 사이의 거리인 거다. 그만큼 오해되고 이해되는 거다.
지금 마주한 당신이 어느 시간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남겨진 여러 잔상 속에서 무엇이 당신에 가까운지 추측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야 알아차릴 만할 때 당신은 또다시 변태할 거다. 한 찰나가 보여주는 건 얼마나 연약하고 미미한 걸까. 우리는 얼만큼이나 실시간으로 맞닿지 못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까지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 항상성이야말로 인간성의 반대에 존재하는 거다.
복잡해졌다. 오늘도 확고함과는 점점 멀어진다. 몸 안팎으로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애인이 손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어느새 초코송이가 쥐어져 있다. 아깐 참 좋았는데 지금은 약간 쓸쓸해졌다. 언제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너와 내가 오래도록 포개어지는 게 가능한 걸까. 괜히 애인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잡고 싶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질러버린 불순한 상상의 무게만큼 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