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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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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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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입니까, 명령입니까." "부탁이야, 친구."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앙리는 의사다. 그는 사체 재활용 이론을 주장해 생명과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문제아, 즉 순리를 거스르는 반골이다. 시신조차 새 생명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도발적인 화두를 제시한 것이다. 앙리는 적을 죽여야 살아남는 전쟁터에서도 군인이기 전 의사로서 행동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상관 않고 치료하는 그의 고귀한 신념은 아집이 되고, 반역이 된다. 앙리가 살리려던 적군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다.


군기문란죄와 간첩죄로 체포되기 직전, 빅터가 나타나 앙리를 구한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에 집착하는 과학자 빅터는 앙리와 성격도, 가정 환경도, 살아갈 미래조차 정반대다. 극단적으로 다른 둘이지만 단 하나 닮은 점이 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신념 때문에 지독하게 외로운 삶을 살아온 것. '친구'라는 빅터의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인 앙리는, 생명을 창조하겠단 꿈을 꾸는 그와 같은 길을 걷는 동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설령 비극으로 끌려 들어가는 길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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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혹은 동지애(同志愛 : 목적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의 사랑)는 고단한 삶을 비추는 빛이다.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도 한다. 뮤지컬에도 여러 형태의 우정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함께 꿨던 꿈이 서로를 겨누는 총구가 되기도 하고(<프랑켄슈타인> 빅터와 앙리, 빅터와 괴물), 떠난 친구를 그리며 슬픔을 홀로 짊어지고(<위키드> 엘파바와 글린다, <그날들> 정학과 무영), 자신의 못난 부분까지 다 보여주고 나서야 진짜 친구가 되기도 한다(<킹키부츠> 찰리와 롤라).

 

성격, 성장 환경, 나이, 외모와 옷차림까지 다른 두 친구들은 작품 속에서 서로 갈등하거나, 함께 갈등을 이겨내거나, 갈등을 해결 못 하고 비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그들의 우정은 여러 모양을 하고 있지만 함께한 순간만큼은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우정만큼이나 여러 색깔의 감정을 느끼며 그들의 마음에 동화된다. 혼자에서 '함께'가 되는 것처럼.

 

 

 

강렬하게 사로잡는 너의 생각, 너의 신념, 너의 의지 -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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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쓴 앙리는 그 대신 단두대에 오른다. 자신을 친구라 해준 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앙리의 목으로 빅터는 새 생명을 창조한다. 그는 이름조차 없는 괴물이다. 연구를 오래 했어도, 괴물이 창조되자마자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거라곤 예상 못 했나 보다. 괴물은 친구 앙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빅터와 괴물은 그 순간부터 서로에게 복수하고, 복수 당한다. 영문도 모르고 세상에 버려진 괴물은 인간에게 학대와 배신을 당하며 씻기지 않는 상처를 입는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소중한 이들을 잃는 빅터는 앙갚음하려 몸부림친다. 복수와 악의 고리는 괴물에 의해 끊긴다. 복수 대상인 괴물조차 세상에서 사라진 걸 깨달은 빅터는 혼자가 된다. 자신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며 떠난 친구 앙리를 외치며 울부짖는 빅터의 목소린 허공에 덧없이 흩어진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원작이다. 하지만 무대극, 특히 대극장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맞게 원작과는 별개의 새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앙리와 괴물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빅터와 자크(괴물을 학대하는 격투장 실세) 등 극과 극의 두 캐릭터를 한 배우가 소화하는 1인 2역 설정은 대극장 뮤지컬이기에 장점이 극대화됐다. 앙리의 목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는지도 배우마다 미묘하게 달라, 매니아층은 자발적으로 반복 관람을 하며 극과 캐릭터들에 숨겨진 이면을 상상한다. 매력적인 작품은 관객이 알아서 뒷이야기를 상상하고, 서브컬처까지 활발히 만들어내며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걸 증명한 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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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력 있는 웅장한 넘버, 매력적인 캐릭터성과 서사를 가진 인물들, 빠르게 휘몰아치는 자극적인 스토리 등으로 극은 2014년 초연부터 매니아층을 양산하며 뮤지컬 어워즈에서 상을 휩쓸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걸 넘어 외국 뮤지컬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으로 수출된 극은 2017년 도쿄에서 초연된 후, 현재까지도 꾸준히 공연되며 사랑받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친구들인 앙리와 빅터, 혹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괴물과 빅터는 사소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는 비극의 특성으로 인해 완전한 새드 엔딩을 맞는다. 빅터는 셰익스피어 비극 주인공들처럼, 성격 때문에 대립이 생기고 파국에 이르는 '성격비극' 주인공의 특성에 맞는 인물이다. 하지만 친구 앙리를 포함한 소중한 이들을 살려내겠단 의도만큼은 절실했다. 주인공으로서 할 일을 한 빅터가 만든 비극을 비난만 할 수는 없기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양가감정마저 깊은 여운이 되는 대작이다.

 

 

 

너로 인하여 달라졌어, 내가 - <위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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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파바와 글린다는 외모, 성격 모두 극과 극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초록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아웃사이더다. 금발에 흰 피부, 스타일링도 화려한 글린다는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인이다. 다른 세계에 살아야 마땅한 그들은 쉬즈 대학교 기숙사에서 룸메이트가 된다. 'What Is This Feeling?', 한국어론 일명 '밥맛송'에서 그들은 서로를 이렇게 칭한다. 온몸에 닭살이 돋게 하는 밥맛, 진상이라고.

 

글린다는 엘파바를 놀리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주며 무도회에 초대한다. 하지만 엘파바는 동생 네사를 챙겨준 글린다를 위해 마법 수업을 듣게 해줬다. 그 사실을 안 글린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사로잡힌다. 웃긴 모자를 쓰고 더 웃긴 몸짓을 하며 비웃음당하는 엘파바를 위해, 글린다는 함께 이상한 춤을 추며 같이 우스워진다. 인기와 외모, 남들 시선에 목숨 걸고 살아온 글린다는 망가지는 걸로 사과를 대신하며 엘파바와 친구가 된다.


부모의 죄로 생긴 초록 피부를 견디며 살아온 엘파바는 세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꿈이다. 파퓰러한 인생을 원하는 글린다는 성공하는 게 꿈이다. 글린다의 꿈은 이뤄지지만, 엘파바의 꿈은 좌절된다. 눈에 띄는 초록 피부와 천재적인 마법 재능, 자신처럼 핍박받는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고결한 성품, 권력과 진실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강인함과 용기까지. 엘파바는 주인공의 특성을 다 가졌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 악인들에게 미움받는다. 뮤지컬 <위키드>는 선하고 정의롭지만 주류에서 벗어난 엘파바가, 어떻게 사악한 서쪽 마녀로 거짓 프레임이 씌워지며 마녀사냥을 당하는지 묘사한 풍자극이기도 하다.


소설 원작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 및 영화로도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악한 서쪽 마녀(엘파바)와 선한 마녀(글린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위키드>는 뮤지컬 전체를 통틀어도 압도적으로 화려한 무대 장치와 의상, 여배우들의 역량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넘버들로 꾸준히 사랑받는 대작이다. 두 친구들 엘파바, 글린다를 비롯 남자 주인공 피예로 또한 겉으로 보이는 모습 뒤에 존재하는 또 다른 면, 초반 모습과는 다른 극단적인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며 관객의 편견까지 보란 듯이 깨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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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넘버 'No One Mourns the Wicked'에서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의 죽음을 축하하며 '더없이 기쁘다'고 하는 선한 마녀 글린다는 떠나간 친구 '엘피'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삼키는 거였고, 엘파바는 사악하지도, 죽지도 않았다. 쉬즈 대학교 시절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며 화려한 인생을 즐겼던 글린다는 소원대로 파퓰러해졌지만, 대중들 앞에선 친구 편도 못 드는 고독한 지도자가 됐다. 반면 가족에게조차 미움받았던 아웃사이더 엘파바는 이젠 혼자가 아니다. 지난한 여정이겠지만, 연인 피예로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쉬즈 대학교 때 잘생긴 외모와 우월한 피지컬, 텅텅 빈 머리까지 자랑하며 존재감을 뽐냈던 피예로 또한 성장 캐릭터다. 엘파바를 사랑하게 된 그는,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의 부조리함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는 엘파바를 구하다 붙잡혀 죽을 뻔했지만, 엘파바의 마법으로 허수아비가 되며 겨우 목숨만은 건진다. 잘생긴 외모는 사라졌지만, 텅 비어 있던 마음과 머리는 엘파바를 향한 사랑과 용기로 충만하게 채워졌기에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부조리와 비극을 헤쳐나가며 성장하고, 진정한 어른이 된다. 다신 만날 수 없겠지만 '너로 인하여' 달라진 그들은 서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노래로도 그리움이 씻겨지지 않으면 -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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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들인 정학과 무영은 동료이자 라이벌, 친구이다.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성격에 능력, 유머 감각까지 갖춘 무영은 정학의 경쟁심과 열등감을 건드리는 뜨거운 태양 같다. 무영에게 밀려 뭐든지 2등,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고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온 모범생 정학은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는 달 같다. 이렇게 다른 그들이지만 이성을 보는 기준은 같았는지 그들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 두 남자의 마음을 빼앗아 간 '그녀'는 한중 수교 통역사다. 한국과 중국의 국가 기밀이 오가는 회담에서 통역을 맡아, 그저 일을 열심히 했단 이유로 제거 대상이 된다. 너무 많은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정학과 무영은 누군가를 지키는 게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진실, 비밀리에 내려진 명령을 알고 나서부턴 누구를 지켜야 하는지 의견이 갈린다. 정학은 한때 마음에 품었던 그녀가 위험해질 상황에서 망설인다. 그녀가 단지 무영에게 마음을 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소속이기에 지켜야 할 대상, 명령을 따를 대상이 정학에겐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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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밝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외롭게 살아온 무영은 그녀 또한 자신처럼 가정사가 있단 걸 알고 강하게 이끌린다. 서로에게 마음을 연 무영과 그녀는 연인 비슷한 사이가 된다. 무영이 상부의 명령에 반기를 든 건 그녀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정의로운 무영에게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명령이었기 때문에, 그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지켜야 할 피경호인을 그녀로 바꾼다. 그녀를 두고 다른 결정을 내리며 정학과 무영은 대립한다. 무영은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는 정학에게 이성, 원칙 따위가 너한텐 뭐냐고 불같이 화를 낸다. 그들은 그 말다툼을 끝으로 평생을 못 보게 된다. 그녀를 탈출시킨 무영은 정학에게 둘만 아는 암호 편지를 남긴 후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 사고로 무영은 간첩이 되고 정학은 고문을 받는다. 그것도 모자라 가장 친한 동료, 친구였던 무영을 간첩이라 낙인찍는 서류에 강제로 지장까지 찍힌다. 무영과 그녀의 실종을 계기로 정학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뀐다. 무영과 함께일 때 밝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표정과 차가운 말투에 슬픔을 가둔 채 20년의 세월을 흘려보낸다. 가정을 이루고, 경호부장 자리까지 오르며 겉으론 성공한 삶을 살지만 마음은 텅 빈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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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통령 딸 하나와 경호원 대식의 실종을 계기로 20년 전 그날과 마주하는 정학은 20년 만에 무영이 숨겨둔 암호 편지를 발견한다. '정학에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란 말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으며 정학은 무영의 영혼과 재회한다. 널 많이 미워했단 정학의 말에 무영은 20년 전처럼 밝게 웃으며 '괜찮아, 다 지나갔어.'라 한다. 넌 그대로란 말에 '그래, 너만 늙었다.'라며 웃어 보이는 무영의 밝은 모습은 가슴이 아릴 정도로 서럽다. 정학이 보고 싶은 환상을 보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는 관객들의 마음도 함께 어루만져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故 김광석의 노래들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창작뮤지컬 <그날들>은 매 공연마다 그를 위한 자리를 비워둔다. 젊은 무영의 영혼이 중년이 된 정학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故 김광석 또한 객석에서 <그날들>을 보며 위로받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행위일 것이다. 사람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영혼이 돼 산 사람 곁에 다시 찾아온다는 건, 산 사람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만들어낸 판타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리 원칙과 이성을 따르던 정학도 결국 가슴에 묻어둔 친구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과학이나 논리만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일 또한 늘 벌어지는 게 세상사다. <그날들>의 정학과 무영이 보여주는 책임감, 헌신, 인내, 그리움, 20년이란 세월과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은 깊은 우정처럼.

 

 

 

가끔 넘어질 땐 내 손을 꼭 잡아 - <킹키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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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찰리는 여자 친구 니콜라와 함께 부동산 마케팅 일을 하기 위해 떠나려다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다. 아버지가 평생을 운영한 구두 공장에 돌아오는 찰리는 재고가 넘쳐나는 공장과 마주한다. 그때, 기적처럼 누군가가 찰리 앞에 나타난다. 드랙퀸, 즉 여장 남자 롤라다. 여장을 하고 엔젤들과 함께 공연을 하는 롤라는 여성용 구두를 신고 춤을 춰야 하는 게 퍽 난감하다. 찰리와 롤라는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여장 남자들을 위한 부츠, 즉 킹키부츠를 만들겠다고 결심하는 찰리는 롤라에게 프라이스 앤 선 구두 공장 디자이너 자리를 제안한다. 새로운 도전과 관심받길 좋아하는 롤라는 두려워하면서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킹키부츠> 찰리와 롤라는 나이, 겉모습, 성격, 미적 감각까지 정반대다. 찰리가 샘플로 만든 버건디 색깔 부츠를 본 롤라는 질색팔색한다. 그건 버건디가 아니라 '벌건색', 육포일 뿐이라며. 롤라가 원하는 건 섹시하고 도발적인 레드, 즉 찰리가 고른 우중충한 버건디와는 다른 눈이 부시게 쨍하고 화려한 빨간색이다. 'Step One'과 'Sex Is in the Heel' 넘버까지 이어지는 이 장면들은 찰리와 롤라의 성격, 상황,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른 그들이지만 킹키부츠에 대한 열정은 같다. 또한 아버지의 그늘에 짓눌리기도 했었단 강력한 공통점으로 인해 찰리와 롤라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동료를 넘어 진짜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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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인 찰리가 직원들을 다루며 경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킹키부츠를 출품할 밀라노 패션쇼 준비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니콜라마저 찰리를 떠난다.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데 이래도 안 떨어지냐고 흔들어대는 것과 다름없다. 예민함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찰리는 폭발한다. 롤라 본명 사이먼을 부르며 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찰리. 늘 밝고 유쾌했던 롤라는 다 끝났다며 차갑게 공장을 나간다.

 

찰리는 그렇게 일, 꿈, 동료들, 친구까지 한꺼번에 잃을 뻔했지만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롤라의 원칙하에 공장 직원들은 돌아온다. 찰리의 진심 어린 사과로 마음을 연 롤라는 밀라노 패션쇼장에서 드라마틱하게 재등장한다. 너 때문이 아니라 이 무대를 놓칠 수 없어서 온 거란 쿨한 말까지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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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못났고, 찌질하며, 밉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가 가고 불쌍하기도 하며, 외면할 수 없는 '나' 같은 현실적인 캐릭터다. 반면 친구 판타지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롤라는 약점이 있어도 이상적인 캐릭터다. 겉으론 밝게 많은 부분을 드러내지만, 정작 결정적인 건 감춘 '드러나 있지만 신비로운' 캐릭터라 더 매력적이다. 롤라는 여장을 즐기는 드랙퀸일 뿐, LGBT(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하여 부르는 단어)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공장 직원 중 빨간 머리 여성인 '팻'과 묘한 기류를 형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이성애자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연애사는 물론 정확한 나이조차 모른다.

 

롤라는 아버지의 강요로 복싱을 배웠지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여장을 시작한 용감한 남자, 세상의 편견에 상처받아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험가, 겨우 마음을 연 친구가 말로 가슴에 칼을 꽂아도 쿨하게 털어내고 용서할 줄 아는 강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롤라를 발견하고, 인연이 끊길 뻔한 순간에도 자존심 다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손을 내미는 찰리도 보통은 아니다. 그래서 두 괴짜는 친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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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작품 모두 두 친구들이 춤추는 장면이 있다. (<그날들>의 정학과 무영이 피경호인이 머무는 공간을 지키다 장난치며 율동하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도 춤이라 하면 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한잔의 술에 인생을 담아(일명 '한잔술')', <위키드>는 'Dancing Through Life', <그날들>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킹키부츠>에선 'Raise You Up/Just Be'가 그렇다. 성장물 및 학원물 요소도 있는 <위키드>, 드라마도 강하지만 쇼뮤지컬인 <킹키부츠>는 자연스럽게 춤이 나올 수 있다고 쳐도, <프랑켄슈타인>과 <그날들>까지 춤이 포함된 건 신기한 우연이다.

 

슬프거나 무거운 작품이어도 2~3시간 내내 그럴 수만은 없기에 분위기 환기용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부끄러움이나 체면 같은 건 내던지고 한바탕 춤을 춰야 진정한 친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친구 앞에선 못난 것도, 창피하고 우스운 모습도, 가족에게도 드러내기 어려운 속마음도, 나약함까지도 믿고 보여줄 수 있으니 뮤지컬에선 그 점을 춤으로 승화시킨 게 아닐까 싶다.


꽉 닫힌 해피엔딩부터 비극이 끝나지 않은 파멸 엔딩까지, 이들의 결말은 다양하다. 그렇지만 한땐 서로의 영혼까지 이해하는 친구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있다.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이기도 하지만, 큰 기쁨과 행복 또한 함께 짊어질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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