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죄인의 죄를 그 가족들에게도 함께 묻는 제도. 과거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여러 방식으로 시행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폐지된 제도. 과거에는 귀족 간의 알력 다툼이나 파벌 싸움처럼 공동체 중심 사회였기에 연좌제가 의미가 있었지만, 개인 중심의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실제적 의미가 희미해졌고, 낡고 불합리한 제도는 사라졌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연좌제가 완전히 사회 속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가? 흉악한 범죄자들의 가족이 함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여전히 ‘가족’이라는 혈연 앞에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잘못된 삶으로 낙인찍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주변 사람에게 전염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제 3자 역시 그러한 사고에 일부 전염되곤 한다.
수빈이 자신의 학교 친구를 달려오는 지하철 선로에 밀어 버리고, 자신도 그 철길 아래로 투신한 이후. 수빈의 쌍둥이인 수민을 비롯한 수민의 가족 모두는 연좌 속에 갇혔다. 스타 강사였던 엄마는 큰 비난을 받고 사회에서 퇴출당하였으며, 아버지는 어딜 가도 남극인 삶을 살게 되었으며, 수민은 자신의 얼굴이 살인자의 얼굴이라며 인터넷에 돌아다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수민의 가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도 연좌제가 전염되었고, 수민의 가족 역시 연좌의 무게에 전염되었다. 내 죄가 아님에도 일부 책임감을 느끼고, 내 죄가 아님에도 일부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내 죄가 아닌 것을 내 죄로 이고 지며 살아가는 삶. 하지만 정작 잘못의 주체가 없어서 용서의 가능성도 없기에 평생 죄인으로 남아야 하는 삶. 남은 자들의 삶이었다.
죄책감으로 남은 자들의 삶을 또 다른 아이들도 등장한다. 바로 수빈이 밀어 목숨을 잃은 아이 지은의 신체를 이식받은 이들. 시력이 나빴던 아이는 각막을 기증받고, 심장이 약했던 아이는 새로운 심장을 기증받았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새로운 기회를 얻은 아이들. 그러나, 그 새로운 기회에 늘 부채감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지은의 각막을 이식받은 미나는 다시금 시력이 악화하는 것을 느낀다. 이제 이 세상에서 지은의 마지막 조각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각막밖에 없는데, 그마저 의미 없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의 눈, 어쩌면 지은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니 좋은 것만 보고 건강한 시선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자신 때문에 그 눈의 쓸모를 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다.
지은의 심장을 이식받은 현지는 처음으로 오래 걸어도, 뛰어도 숨 가쁘지 않고 개운하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오래 아파왔던 터라 사회가 정해놓은 공부라는 가이드 라인을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였고, 현재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속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은에게 이렇게 쉼 없이 뛸 수 있는 심장을 받았는데, 고작 이런 나로 살아가는 것이 심장의 쓸모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수민을 걱정하여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수민을 찾아낸 미나도, 자신의 밥벌이를 하며 성실히 일하고 있는 현지도, 자신의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데.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살아내는 것만으로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삶. 그럼에도 보잘것없는 나를 견디며 또 살아내야 하는 삶. 인생 앞에서 나이와 관계없이 초라해지는 삶이라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어릴 때부터 항상 함께 자라던 수빈의 갑작스러운 선택으로 홀로 남게 된 수민. 수빈과 얼굴이 똑같기에 인터넷에서 살인자의 얼굴이라며 비난받았고, 수빈과 얼굴이 똑같기에 본인의 얼굴을 보면 슬퍼하는 부모님을 느끼는 수민은 까만 칠에 스스로를 가뒀다. 까만 스모키 화장과 웃음기 없는 얼굴과 시꺼먼 옷들에 둘러싸여서. 수빈의 부재로 수빈과 함께한 그 시간도 함께 송두리째 빼앗긴 채, 혼자서.
["나 웃어도 되나? 지금이 웃을 때인가?"]
미나를 만나고 얼마 안 되어 얼핏 웃음이 나오자 곧바로 수민은 자기를 검열하곤 했다. 내가 웃을 자격이 있는지, 웃어도 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러나 마지막에 수민은 웃으며 끝난다. 길고 깊은 죄책감의 늪 끝에서, 미나 없이 혼자 걸어가야 하는 두려운 길 앞에서. 그렇게 홀로 용기를 낸 수민에게 미나는 이렇게 소리친다.
["넌 웃는 게 예뻐!"]
‘웃음은 기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수민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나는 기스 같은 것. 그런 기분 좋은 생활 기스들을 통해서 인생은 더 건강해지는 게 아닐까. 세상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매뉴얼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매뉴얼도 가이드도 없는 세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미지의 상황에 부딪혀가며 사는 것이 인생이니까. 설령, 마지막 수민의 선택이 행복하게만은 끝나지 않았더라도 그것 역시 인생이니 앞으로의 나날을 잘 가꿀 수 있기를. 하고 싶은 쌍꺼풀 수술도 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그렇게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