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31.jpg

 

 

그야말로 완전한 교착상태다. 세상이 선사하는 관성으로 움직일 수 있던 시간은 끝났다. 우수수 폭포처럼 쏟아지다 한순간에 웅덩이 속 고인 물이 된 듯한 느낌. 당혹스럽다. 원래 이렇게 잔잔한 건가. 자연히 흐를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건가.

 

그렇다. 아니었던 거다. 흐르는 데에도 방법이 있었던 거다. 의식하지 않아도 됐었을 뿐. 세계의 규칙에 쉽사리 탑승하지 않으려는(혹은 못 하는) 자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제힘으로 어찌어찌 쫄쫄쫄 흐르거나, 고인 채로 서서히 썩거나, 세상을 뒤엎을만한 파도가 되거나. 다른 선택지는 글쎄, 아직 모르겠다.

 

인간은 여타 동물과 다른 차원의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원초적인 본능을 넘어선 풍경을 상상하고 그리는 능력, 주체성 같은 것. 확실히 인간은 희귀한 힘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꽤나 자랑스러운지 그 힘을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의 경계선을 건설하는데 쏟아 붓는다. 과해서 안쓰러울 정도로. 이 역시 생존전략이라면, 힘의 과시는 역시 연약함의 반증이다.

 

빛나는 명성과 달리 인간의 상당한 말과 행동은 주체성과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외려 부지런한 숙려가 뒤로 쫓겨날 때가 많을 거다. 관성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고와 행동을 관성에 의탁한다. 프로그램의 설계에 따라 ‘오토 파일럿’ 모드로 작동되는 기계처럼. 기민하게 살피면 알 수 있다. 내뱉는 발화와 움직임이 얼마나 자판기 버튼 누르듯 건조하게 튀어나오는지. 생각하지 않고 반응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내 안의 것들이 얼마나 내 것이 아닌지.

 

자동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분명 유용한 도구다. 문제는 우리가 몸 담은 세계가 아득하게 복잡하다는 거다. 예상하지 못한 인과에 의해 수많은 존재와 사건이 얽히고 설킨다. 그것들은 결코 지난 관성에 따라 일괄적으로 처리될 수 없다. 새로이 발명된 눈과 언어로 다뤄져야 한다. 다채로움 속에서 편리함은 게으름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말이 된다. 편리해질수록 오류가 늘어난다. 이 시대에선 너무 많은 오류와 탈락을 목격해야 한다.

 

우리를 지켜왔던 질서가 어느 새 은밀하고 포악한 구속처럼 느껴졌다. 살려면, 두텁게 쌓인 역사를 하나씩 벗겨내야 했다. 지금까지의 세계를 한 번은 송두리째 잃어버려야 했다.

 

무시할 수도 있었다. 일직선의 눈으로 더 높고 많은 삶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몸에 무언가 자꾸 걸렸다. 멈칫거리고 틀어졌다. 본능적으로 이끌려 결국 뒤를 보게 됐다. 모른 척하기엔 너무 많았다.

 

멈춰 서기를 반복하다 어느새 낯선 공간에 도착해 있다. 주위를 둘러본다. 분노와 슬픔이 가득해 보이는 사람이 많다. 묻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얼굴이다. 우리는 이 덩어리들을 갖고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어디를 갈 수는 있는 걸까. 불순분자 같은 당신들과 나는 얼마나 닮았을까. 문득 나의 애매한 불온함을 깨닫는다. 화끈하게 앞으로 가고 싶으면서도 끝끝내 싫은, 화끈하게 뒤로 가고 싶으면서도 끝끝내 무서운. 어느 곳의 주민도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애석한 듯 기쁘고, 기쁜 듯 애석하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정성껏 쌓아온 세계가 무너졌으니까. 질서가 사라졌으니까. 모든 동작마다 이유와 목적과 쓸모를 물어야만 했다. 그렇게 느려졌다. 자주 멈췄다. 퀴퀴한 늪의 악취가 났다. 무서워서 비슷한 냄새를 품은 이야기를 찾고 게걸스럽게 탐욕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야. 오도 가지도 못 하고 제자리에서 방랑하는. 산다는 것에 축복보단 저주라는 이름을 짓는 게 익숙한. 그렇게 비관을 똘똘 뭉쳐내면서도 한 편엔 생존하고 싶다는 희미한 불빛을 숨겨 놓은 이들이.

 

있었다. 구석진 그늘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쓰고 무언갈 만들면서. 제각기로 분장한 불행들과 그 위에 쌀알처럼 박혀있는 기쁨을 보며 느릿느릿 걸을 수 있었다. 혹자는 그것들의 합을 취향이라고 부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생존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누군가의 빛바랜 시간 속에서 나는 숨 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스스로 찾아야 했다. 결정해야 했다. 나라는 세계를 조직하고 유지할 새로운 규칙들을. 한 세계를 관장하는 힘을 창조하는 이 거대한 물음이 아득해서 잘게 분해했다. 삶이란 커다란 덩어리를 하루로 조각냈다. 하루 동안 하는 것들. 먹기. 자기. 읽기. 쓰기. 생각하기. 곱씹기. 친절하기. 욕망하기. 찌질하기. 무시하기. 자연히 이루어진다고 착각해 왔던 것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나는 무엇에 응답하고 응답하지 않는가. 무엇에 응답하고 싶고 응답하고 싶지 않은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덜 의심하고 더 기록하기로 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굳이’다. 굳이 먹고, 굳이 자고, 굳이 읽고, 굳이 쓰고, 굳이 생각하고, 굳이 곱씹고, 굳이 친절하고, 굳이 욕망하고, 굳이 찌질하고, 굳이 무시한다. 굳이 해야만 어떤 역사는 기록될 수 있는 거다. 창세란 굳이 수고스러워지는 일이다.

 

여기서 나는 굳이 말을 뱉는다. 이런저런 상념과 푸념을 늘어놓다가 모르는 새에 진실을 흘릴 거다. 어떤 건 내가 되고, 어떤 건 나 아닌 게 되고, 또 어떤 건 어쩌다 우리가 될 거다. 뭔지도 모르면서 그리는 그것이 우리의 초상이 되면 좋겠다. 종국엔 낙서가 될 것들이 좋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