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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조명, 불안감을 자아내는 음악, 사유리라고 불리는 인물의 괴이한 몸짓.


지난 16일에 개봉한 영화 <사유리>(2025)의 오프닝은 영락없는 호러 영화의 도입부다.

 

사유리는 작은 방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히키코모리의 삶을 사는 걸로 보인다. 사유리의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익숙한 듯 사유리의 방문 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과거로 되돌아가기를 염원하는 클리셰적인 대사도 빠질 수 없다.


이내 사유리는 날카로운 흉기를 손에 든 채 방문을 연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다음에 일어난 일을 생략한다. 하지만 그날 이 집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사유리'가 또다시 이 집에 끔찍한 일을 불러올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전개다.


그날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이 집의 주인은 카미키 가족으로 바뀐다. 너무나 화목해 보이는 카미키 가족의 비극을, 우리는 필연적으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카미키 가족은 그 집에서 미세한 불안과 시선을 느낀다. 이사 온 뒤로 이상하리만큼 느껴지는 피곤함 역시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들이 파편처럼 목격하는, 각기 다른 이질감은 급속도로 카미키 가족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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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는 포스터부터 일본의 전형적인 하우스 호러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포스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이 영화의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접하게 된다면,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는 마음가짐은 사뭇 달라진다. <사유리>는 그냥 호러가 아니라 '괴랄 호러'라는 이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크게 2부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호러 영화의 문법을 다소 과하게 수행하던 1부가 지나면, 플롯의 급격한 방향 전환이 시작된다. 1부의 비극에서 생존한 인물들은 비극의 근원인 '사유리'에게 복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철저하지도, 관객들에게 통쾌감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질 정도의 허무맹랑한 맞대응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밥을 많이 먹고, 태극권을 배우고,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을 하며 사유리에게 복수하기를 꿈꾼다.


<사유리>는 우리가 어떤 예상을 해버리기 전, 발 빠르게 먼저 선을 넘어버리며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공포 영화보다 우리를 소름 돋게 하는 현실이며, 과함과 정당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슴없는 응징이다.

 

<사유리>는 맑은 정신과 웃음, 건강한 육체로 귀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라고 조언하는 것만 같은 귀여운 매력을 가진 영화다.

 

이 정도면 초심자를 위한 호러 영화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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