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좇을 것인가? 성장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것인가?
<2025 안전 연극제> 참여작 ‘걸작들’의 <휘이-청>(연출 윤예은)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휘이-청>은 움직임이 중심이 되는 ‘피지컬씨어터’ 공연이다. 등장인물은 단 두 명. 예은과 혁재. 둘은 땅을 구르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벽 위를 걷는다. 서로를 밟거나 어깨에 올라타는 등 끊임없이 고난도의 동작을 펼쳐 마치 한 편의 서커스를 보는 듯하다.
놀라운 점은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는 동시에 대사를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다. 대화의 주제는 ‘안전’과 ‘위험’. 너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교통사고가 나고 싶다거나 밤 귀갓길이 무서워 이어폰을 빼고 걸었던 경험부터 시작해 이야기는 점차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안전을 갈망할까?
안전? 안안전?
안전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같은 듯 다르다. 예은은 위험을 즐기지만 본능적으로 안전을 찾는 사람, 혁재는 안전을 선호하지만 위험을 갈망하는 사람. 공연은 안전을 추구하는 예은과 위험을 갈망하는 혁재의 대화로 채워진다.
둘의 상반된 목소리는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의 머리에서도 울린다. “안전!” “안안전!” “안전!” “안안전!”
<휘이-청>은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진 않는다. 안전과 모험 중 무엇을 택해야 한다고 귀띔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할까?’, ‘우리는 왜 안전에 대해 얘기할까?’, ‘위험한 곳에 들어가서 왜 안전을 찾을까?’ 등 쏟아지는 물음표 속에 관객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공연을 보며 떠올린 문장이 있다. 배가 항구에 있다면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게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몇 년 전 만난 이 문장은 내 삶의 지표가 되었다. 삶의 이유가 정박이 아닌 항해라면 태풍과 성난 파도는 필연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안주와 모험 중에 나는 늘 모험의 편을 들겠어! 라며 잘난 체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늘 모험을 택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안전하고 싶다. 웬만하면 태풍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모험으로 성장하는 환경과 진짜 위험한 환경은 다르다”는 예은의 대사를 그대로 읊으며 안주의 손을 든 적도 많다. 인간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질문에서 시작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머릿속이 시끄러워져도, 공연은 잔인할 만큼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대신 <휘이-청>은 안전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힌트를 알려 준다.
위험을 모험으로 바꾸는 방향키
20여 분간의 공연 중 가장 큰 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요히 찾아왔다.
혁재가 무릎을 구부리고 손을 뒤로 짚은 채 자세를 낮춘다. 그 위로 예은이 혁재의 무릎을 밟고 선다. 이윽고 혁재는 바닥을 짚고 있던 두 손을 천천히 떼어, 예은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의지해 균형을 유지한 채 누구도 땅에 손을 짚지 않고 버티는 자세에 도달한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에서 손과 손을 통해 균형을 이룬 두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몸짓에서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의 유명 작품 'Rest Energy'가 떠올랐다. 이 작품에서 여자는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겨눠진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그 반대편에서 남자가 화살이 나가지 않도록 잡고 있다. 둘이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정확히 균형을 유지해야만 여자가 살 수 있는, 인간관계의 신뢰를 표현한 퍼포먼스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활과 화살을 쥐고 있는 아브라모비치의 작품과는 달리 예은과 혁재가 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서로의 손.
바로 이 손에 비밀이 숨어 있다. 살아있는 한 원하든 원치 않든 만나게 될 위험을 모험으로 바꿀 방향키. 그 비밀은 의지(依支)다. 인간은 글자부터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 사람과 사람이 기대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바로 사람 인(人)이지 않나.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가장 쉬운 길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함께하는 것이라고 <휘이-청>은 일러준다.
공연 내내 두 사람은 휘청거리는 서로를 잡아준다. 벽 위를 걷게 해주고, 높은 곳에 올려주며 땅으로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잡아준다. 급기야 천장에 매달려 있던 예은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손을 놓는다. 그리곤 자신을 받아낸 혁재에게 말한다. ‘너가 날 잡아줄 거란 확신이 있기에 안전한 것’이라고.
<휘이-청>은 안전에 대해 말하면서 위험한 기술에 도전한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안전을 좇다가도 모험을 탐하는 삶. 질문에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삶. 그러나 이토록 명랑한 모순에 휘청거리다가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것 또한, 삶.
사진 ⓒ이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