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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성수동의 골목을 지나 도착한 갤러리, 조용히 좁은 계단을 따라 들어서면 전시의 시작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하 공간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고, 먼저 발걸음을 옮긴 오른편 메인 전시 공간에는 세 명의 작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감정을 틔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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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주한 건 유사사 작가의 펜 드로잉 작업이었다. 펜의 얇은 선과 반투명한 트레팔지 종이가 잘 어우러져 입체감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그의 작품은 한눈에 감정을 움켜쥐기보다, 오래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숨죽여 빛나는 나의 우울에게』라는 시리즈 제목처럼, 그림 속 선들은 조용하고 단단했다. 우울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것의 결을 따라 조용히 그려낸 듯한 선들. 그 앞에서 나 역시 잠시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감정을 직면하는 일이 생각보다 평온할 수 있다는 걸, 그의 작업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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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벽면에는 MIA 작가의 리소프린트 그림책 원화, 『나는, 이제 Ça va』가 걸려 있었다.

 

파스텔톤의 차분한 이미지 속에는 회복의 시간을 살아낸 이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이제 괜찮다”는 말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라난 문장이라는 걸 이 작품이 알려준다.

 

함께 마련된 큐브 협탁에는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시되어있다. 『나는, 이제 Ça va』의 좌측 벽면에는 『The blue: bench 벤치, 슬픔에 관하여』가 전시되어 있다.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에서 발견한 슬픔의 감정을 독특한 구조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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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공간은 정주희(대성) 작가의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의 회초리’와 ‘대성’ 시리즈는 일견 익살스럽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와 개인, 관계의 균열을 직시하는 힘이 있었다.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보며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 웃음 너머 남겨진 감정은 불편함과 숙고였다. 대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구조와 말의 폭력들. 정주희 작가는 그것을 웃음으로 틔워내고 있었다.


메인 공간을 모두 돌아보고, 이어 왼쪽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조금 더 아늑하고 조용한 감상의 시간이 펼쳐졌다. 이 방에서는 나른 작가와 은유 작가의 작업이 나란히, 그러나 각각의 감정 온도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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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마주한 나른의 『몸의 언어』 시리즈는 한 장면 안에 수많은 관계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 피부에 닿는 듯한 섬세한 감정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그의 작업은 사랑이란 감정이 품고 있는 복합성을 상기시켰다. 따뜻하고 서글픈, 말랑하지만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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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난 은유의 디지털 드로잉은 이 전시의 가장 잔잔한 숨결처럼 느껴졌다. 별, 식물, 빛과 같은 상징들이 포개져 감정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업은 마치 작은 기도처럼 다가왔다.

 

은유의 그림은 말보다 앞선 위로였고,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마음속의 어두운 부분이 조금씩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회복이란 반드시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천천히 피어나는 감정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틔움》은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조용히 바라보게 하는 전시였다.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언어로 틔워낸 감정의 씨앗들은, 전시장을 도는 내내 나의 내면에도 잔잔한 흔들림을 주었다. 공간마다 감정의 결이 달랐고, 작품마다 감정의 온도가 달랐다.

 

이 전시는 내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용하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감정을 틔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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