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개의 카페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大) 카페 시대'
그 중 오직 단 하나의 카페만이 선사할 수 있는 순간은 분명 있다고 믿는 청년의
진솔한 카페 관찰 일지
01. 성수동, 모던 카페 '뉴앳던'
서울숲 끝자락, 넓은 대로변에서 한 발자국만 안쪽으로 들어간 길목 안에서 나는 'NEW AT DAWN'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푸른 간판을 발견했다. 그날은 하늘이 무척이나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보이는 직사각형의 깔끔한 간판은 그 하늘의 색을 닮아있는 채도 높은 파랑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계산된 디자인처럼 어우지는 모습에 나는 큰 고민 없이 계단을 타고 네 번째 층까지 올랐다.
4층까지 올라가는 길, 계단 옆면으로는 깔끔한 파란색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디저트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디저트 사진이라고 하면 '무조건 감성적으로'만 떠올랐는데, 디저트 사진까지 미적인 감각을 최대한 이끌어내어 카페의 정체성을 확고히 전달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체력이 좋지 않아 숨을 몰아쉬며 마침내 4층에 올라간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창문 틈으로 떨어지는 햇살 아래 블루와 화이트, 실버와 블랙이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조화를 목격했다. 이 모던한 공간은 ‘카페’라고 말하기엔 어쩐지 부족하고, ‘카페’라고 불리지 않으면 아쉬운 곳, 성수동의 카페 [뉴앳던]이 이었다.
02. 하루의 모든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
처음 카페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마치 소품샵 같기도 하고, 셀렉티브 편집숍 같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날 서 있는 감각으로 채도 높은 파란색과 깔끔한 하얀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꾸며진 내부는 카페는 요즘의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우드톤의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도 느껴졌다. 통일된 색채와 질감은 물론이고, 파란색의 다이어리를 셀렉하여 방명록으로 나란히 전시해둔 것까지, 사소한 오브제 하나까지도 마치 큐레이터가 직접 하나 하나 공들여 골라놓은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벽 한 켠에 전시되어 있었던 카페의 티셔츠와 굿즈들은 이곳의 분위기와 미감을 옷과 물건의 형태로 옮겨온 듯한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더욱 카페 그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선사했다.
카페 내부는 양분되어 있었다. 한쪽은 탁 트인 창으로 햇살이 넘쳐흘러 거침 없이 밝았고, 다른 한쪽은 의도적으로 계산된 어둠 속에서 아늑한 조명이 공간을 따뜻하게 매우고 있었다. 푸른빛 블라인드 아래, 밝음과 어둠 사이의 경계에서 나는 마치 하루의 처음과 끝이 이 카페 안에서 교차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의 공간에 갔을 때, 나는 창가 쪽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는 자연광을 온전히 느끼며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커피잔 옆으로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희고 푸른 카페 속에서 또 다른 인테리어처럼 꾸며졌다. 따로 장식하지 않아도 되는 섬세한 연출. 시간이 흘러 해가 이동함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도, 길이도, 명암도 조금씩 달라졌고, 그것이 마치 계산된 인테리어이자 동시에 포스터의 순간들을 순간 순간 마주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어둠이 감도는 쪽은 묘하게 집중력을 요구하는 분위기였다. 창이 없는 대신 조도 낮은 조명이 벽과 바닥을 부드럽게 스치고 있었으나, 낯설거나 무거운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향해 천천히 침잠하게 만드는 평온한 감정, 말없이 머무르고 싶어지는 고요함이 있었다. 특히 한 쪽 벽면은 탁 트여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마음 속 차분함이 떠올랐다. 작품은 강하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있어온 것처럼, 조용히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공간은 반대편의 햇빛이 충만한, 생명력 넘치는 공간과는 또다른 힘을 품고 있었다.
두 공간 사이에 앉아 있으니, 마치 아침과 저녁이 동시에 내 안에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라는 시간의 양 끝단을, 단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겹쳐보는 체험이었다.
03. 선망의 대상을 향한 애정을 표현할 때,
문득 떠오른 것은, 내가 예전에 몇 번 가보았던 이벤트 카페들이었다. 한 배우, 혹은 가수를 위한 팬들의 마음이 충만히 쌓여 그들의 생일, 혹은 공연을 축하하는 카페들이 말이다. 음료 한 잔, 플레이리스트 한 곡까지도 누군가의 애정이 촘촘히 설계되어 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그 안에서 단지 손님이 아니라, 같은 마음을 공유하며 특정 대상을 응원하는 진심 어린 지지자가 되고 있었다. 비록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짧은 경험은 내게 이벤트 카페에서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또렷한 기억을 남겼다.구조와 조도, 음악과 동선, 작은 물성 하나까지도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 입체적으로 전해질 수 있음을 나는 몇 번의 이벤트 카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카페는 ‘푸름’이라는 감각이 어울리는 연예인을 위한 이벤트 공간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앳던]은 평소에도 다른 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항상 염두하고 있는 만큼 전시 공간이 또렷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공간은 넉넉하고, 일반적으로 '카페'라고 하면 아늑한 우드톤의 느낌이 많은 것에 비해 [뉴앳던]의 모던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톤 앤 무드는 특정 연예인을 어필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섬세하게 담아내기에 충분할 것만 같았다. 감정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이 공간이 하나의 인물과 겹쳐졌을 때, 이곳은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더욱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이 공간을 어떠한 이벤트를 위한 '대여 공간'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또 하나가 더 있다. 이곳에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퀄리티 높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깨끗한 음질로 카페 내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명하고 단단한 음색이 공간의 결을 따라 퍼져나가는 것을 들으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소리, 혹은 그가 고른 노래들이 이곳을 감싼다면, 그 순간만큼은 이 카페가 아니라 오롯이 그 사람만을 위한 작은 극장이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자신의 선망의 대상이 떠오르는 음악을 들으며 이 공간에 있을 때, 분명 그 사람을 떠올리고 행복에 잠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말이다.
04. 날씨 좋은 날,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루프탑
“저는 저희 카페의 루프탑도 무척 좋아해요. 뷰가 좋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은 이 옥상 자체가 하나의 체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했거든요. 무대도 있고, 캠핑 체어도 있으니까요.”
그 말을 전할 때, 사장님의 눈빛은 유독 반짝였다. 그에게는 마치 어린 시절 자기가 손수 꾸민 비밀기지를 소개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옥상을 개방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발을 옮겼다.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단순히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겠지' 싶었던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곳에 들어선 순간 나는 ‘카페 루프탑’이 아니라, 작은 야외 캠핑장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 탁 트여 보이는 성수동의 풍경, 금속의 뼈대를 갖고 있는 우드톤의 테이블과 의자, 식물이 감싸져 있는 은은한 조명, 불을 피울 수 있도록 준비된 한 켠의 미니 모닥불까지, 그저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루프탑'의 모습은 생각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옥상 끄트머리에는 작지만 단단하게 마련된 무대가 있었다. 이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나 악기가 울려 퍼질 상상을 하니 가슴 한 켠이 몽글몽글해졌다. 누군가는 저 작은 무대 위에서 기타를 들고 마음껏 노래를 부를 것이다. 서로를 사랑해 마지 않는 커플도, 오랜 우정을 지켜온 친구들도 이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장면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지나갔고, 이 루프탑의 풍경이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05. 밤의 휴식처
성수동에는 카페가 무척이나 많지만, 그 중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곳은 많지 않다. 성수동은 젊음의 거리임에도 드물게 밤이 고요한 동네였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운영하는 카페 [뉴앳던]의 루프탑은 밤을 헤매는 이들에게 유독 반갑다. 대부분의 카페가 저녁이면 문을 닫는 반면, 이곳은 어둠이 깔린 뒤에도 여전히 따뜻한 조명을 유지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 덕분에 이 카페는 퇴근길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대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바쁜 하루가 끝난 후에도 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라는 점이 이곳을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 덕분에 이곳은 낮의 분주함 속에서 찾는 쉼터일 뿐 아니라, 하루의 끝자락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로도 기억된다. 도심의 밤은 종종 차갑고 빠르게 지나가지만, 이 루프탑에서는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른다. 불빛 아래 사람들은 조금 더 진솔해지고, 바람과 음악은 그 시간에 어울리는 배경이 된다. 그렇게 하루의 끝이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