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틔움’.
씨앗 속 생명이 움트듯, 마음속 무언가가 바깥으로 피어오르는 이 단어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내게 가장 큰 물음표를 남긴 단어이기도 했다.
아트인사이트 기획전 《틔움》은 작가들의 내면에서 움튼 감정과 생각이 예술이라는 형태로 밖으로 드러난 순간을 조명하는 전시였다. 감정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싹을 틔워, 글이나 그림이라는 모습으로 피어나기까지의 결과물을 만나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어떤 감정을 느껴도 곧장 언어나 행동으로 드러내기보단, ‘이건 왜 이렇게 느껴지는 걸까?’라고 생각해보는 쪽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직접 마주하고, 가감 없이 드러낸 작가들은 필자에게 있어 놀랍고도 신기한 존재였다.
감정을 틔우는 사람들
전시를 관람하던 날, 세 명의 작가를 직접 만나 각자의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대성 작가는 유머와 풍자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짚어낸다. 회화, 일러스트, 디지털 영상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겉보기엔 재치 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었다. 개인의 경험을 녹여낸 표현은 사회를 향한 정제된 분노를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로인해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있었다.
은유 작가는 어린 시절 겪은 혼란과 상처를 ‘사막’이라는 공간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듯, 마주하던 감정의 풍경을 그림으로 풀어냈고, 그 작업은 현재까지도 ‘별바라기’라는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물은 아픈 눈물을 이야기하며, 매마른 사막은 상처투성이 가시를 가지고 있어도 그림 속 풍경은 어딘가 단단한 서사를 품은 듯했다.
유사사 작가는 섬세한 펜화로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따라간다. 불안과 우울 같은 감정에서 시작된 작업은, 최근엔 자신이 좋아했던 순간들을 간직하려는 시도로 확장되었다. 트레이싱지 위에 정교하게 쌓아올린 감정의 물결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파동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세 작가가 감정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은,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꺼내어 보여주는 용기의 기록이었다.
감정이 소통을 이끌어내는 순간
내면을 드러내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슬픔, 기쁨, 분노, 불안 등 자신이 느낀 감정을 단어 하나로 담아내는 것 또한 쉽지 않기에 필자에게도 감정의 표출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전시는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들이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은 모두 달랐지만, 그 다양성은 결국 하나의 결로 이어졌다. 감정이 예술이라는 언어가 되는 순간, 그들은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었고, 관람객과도 자연스레 소통이 가능해졌다.
감정을 자유롭게
이 전시는 살펴보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은 단지 예술가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며,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감정들이 표현될 때, 그 감정은 단순한 기분을 넘어서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예술로 풀어내며 자신을 표현한 과정을 보며, 필자 또한 자신만이 가진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출하다보면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조금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틔워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