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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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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우리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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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대개 4, 5세부터 초등학생까지의 아이를 이른다. 이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하기에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때때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차별을 경험한다. 어린이가 겪는 소외는 어른이 겪는 소외와 다르다. 소외된 어린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해 줄 어른을 필요로 하고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즉, 소외 어린이는 바꿔 말해 자신을 보호해 줄 어른들의 부재나 불화에서 비롯된다.

 

어른의 시선으로 고립된 어린이를 바라보는 영화는 많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들의 고립과 차별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어른의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에서는 어린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어른에게 보호받고 관객에게 연민,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오늘날의 영화에서는 어른의 부재를 부각하면서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려 하거나 어른이 아닌 어린이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서사가 많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물론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린이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더불어 어린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조명하며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왜곡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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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주인공은 ‘하나’, ‘유미’, ‘유진’이 등장한다. ‘하나’는 이혼을 앞둔 부모님 밑에서 자라 가족 내에서 정서적 소외를 경험하는 아이고 ‘유미’와 ‘유진’은 일 때문에 출장이 잦아 집에 잘 찾아오지 못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자매다. 이 자매는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고 이사와 전학이 빈번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소외된 어린이들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하나’, ‘유미’, ‘유진’의 여름방학이기 때문에 이들의 친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하나’, ‘유미’, ‘유진’은 친구에게 하지 않았던 말을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특히 ‘하나’는 선행상을 받을 정도로 반에서 착한 아이로 여겨지지만, 자기 친구들에게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유미’, ‘유진’도 마찬가지로 전학이 빈번하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고 그들이 사귄 유일한 친구는 ‘하나’가 된다.

 

‘하나’는 ‘유미’와 ‘유진’에게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유미’와 ‘유진’은 ‘하나’에게 집을 자주 비우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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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화는 주인공들이 소망하는 ‘집’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우리집>에서 중요한 상징물은 ‘하나’, ‘유미’, ‘유진’이 만든 종이집이다. 이 집은 주인공들이 바라는 집을 의미한다. 다정한 부모님이 계신 집,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 집, 이사 가지 않는 집, 부모님이 바쁘지 않은 집. 각자 자신이 원하는 집과 그 집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는 결국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보듬어 주는 따뜻한 위로를 의미한다.


<우리집>은 주인공이 감추려 했던 자신의 치부를 직접 드러냄으로써 다른 어린이에게 상처받지 않고 위로받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하나’, ‘유미’, ‘유진’은 진정한 우리집을 찾기 위해 그들이 만든 종이집을 들고 바다로 떠난다. 바다로의 모험이 시작되면서 ‘하나’, ‘유미’는 부모님이 싸우던 것처럼 싸우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그들이 만든 종이집을 발로 부숴버린다. 그러나 첫 번째 종이집이 사라진 후 어린이들은 다시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재밌게 논다.


이들이 소망해 온 ‘종이집’은 부모님의 존재 아래 결속된 가정을 의미한다. 만약 이 종이집을 부수지 않았더라면 주인공들은 언제나 부모님의 불화를 걱정하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집이 주인공들에 의해 부서지면서 세 어린이는 새로운 가정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바로 ‘하나’, ‘유미’, ‘유진’의 ‘집’이다. 제목의 <우리집>은 ‘하나’, ‘유미’, ‘유진’이 함께하는 집을 뜻한다. ‘우리집’은 부모에게 상처받은 어린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집’인 셈이다. 세 명이 함께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집이 된다. 텐트가 집이 되기도 하고 바다가 집이 되기도 하고 옥상이 집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의 불화나 부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어린이들만의 집이 바로 ‘우리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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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하나’를 찾으러 돌아다녔던 부모님과 오빠도 집으로 돌아온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하나’는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불화로 ‘하나’는 매번 자신이 만든 저녁을 혼자 먹는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가족은 ‘하나’가 염원하던 저녁을 같이 먹는다. 그러나 이 결말은 ‘하나’의 해피엔딩을 상징하지 않는다. 한 번의 저녁으로, 부모님의 사이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하나’ 또한 알고 있다.


‘유미’와 ‘유진’ 또한 이사를 막지 못할 것이다. 자매는 매번 그랬듯 정든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와 전학을 반복할 것이고 부모님은 항상 출장에 가 집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과 끝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나’에게는 ‘유미’와 ‘유진’이라는 존재가, ‘유미’와 ‘유진’에게는 ‘하나 언니’라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새로운 집의 의미를 찾은 어린이들은 더 단단한 내면을 바탕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채 성장할 것이다.

 

<우리집>은 가족, 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그에 속해있는 어린이들의 시선에 집중한 영화였다. 동시에 어른들의 불화, 부재로 인한 정서적 소외에 처한 어린이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영화에서는 ‘우리집’이라는 단어 안에서 어른의 존재를 과감히 지우고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집의 형태를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린이들이 ‘집’의 의미를 결정하고 정의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거리가 많은 영화였기에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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