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때 밈처럼 퍼졌던 질문이다. 이 질문의 의도는 '재즈의 정의가 무엇인가'라기보다는, '우리가 재즈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더 가까운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봤지만, 답은 모호했다. 느낌은 알겠는데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묘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통해 그 모호했던 감정의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4월 11일 성수 아트홀에서 열린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 첫 내한 공연>에 다녀왔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름 재즈를 좋아했다. 공부할 때면 재즈 음악을 랜덤으로 재생하고, 여행을 가거나 친구와 놀러 나가면 근처 재즈바를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재즈 '공연'을 실제 공연장에서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무척 설레는 마음이었다.
트리오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마티스 피카드는 프랑스-마다가스카르 출신으로, 다양한 곳에서 살아가며 다국적 배경 속에서 음악을 배워왔다. 그의 재능은 어린 나이부터 인정받았고, 그의 작곡과 연주는 뉴욕 재즈 신(Scene)에서 촉망받는 인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 브루클린 출신의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와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의 드러머 조애 파스칼까지 세명의 조화로운 연주는 황홀함을 느끼게했다.
정통 재즈라기보다는 현대적이고 강렬한 인상의 연주였다.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에너지 넘치는 음악에 관객 모두가 박수를 치며 즐겼다.
클래식 공연 위주로, 소위 '시체관극'이라 불리는 공연장에 익숙했던 내게는 꽤 큰 문화 충격이었다. 모두 고개를 까딱이고 환호하며 음악을 함께 즐겼다. 여유롭고 낭만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재즈에 대한 내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트리오가 들려주는 재즈에는 특정한 순간에 느끼는 분위기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 곡을 시작하기 전에 “상상해보세요. 마치 우리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평온한 느낌을.” / “우리는 너무 고민이 많아요. 모든 걸 벗어나 명상하는 마음을 가져봐요.”라고 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을 떠올리게 해 음악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 마음대로 의역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서로 다른 관객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아, 재즈는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노래에 몰입하지만, 클래식 공연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음악에 결속되고 유대감을 느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만든다는 것, 재즈는 모두가 공통으로 지닌 감각을 꿰뚫는 음악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재즈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섞여 있는' 음악이었다. 유럽의 악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흑인의 감성이 가미되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으로 불린다. 이 트리오조차도 마다가스카르,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미국 등 다양한 문화권을 품은 아티스트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문화 세계, 초국가적인 세계라 불리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질을 담은 음악이 바로 재즈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해보며 재즈의 의의를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