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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전에 요양센터에서 봉사를 하며 여러 노인분을 돌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다들 연세가 지긋한 노인분들이었지만 그분들에게서 굉장히 아이 같은 순수한 면을 보았을 때, 사람은 어쩌면 태어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늙어갈 테지만, 결국은 다시금 아이로 회귀하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결국 아이가 다시 아이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 아닐까 하고.

 

목요일 저녁, 더줌아트센터에 방문해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를 보고 왔다. 학교에서 연극을 본 적은 있어도 외부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연극을 본 건 처음이었기에 설레는 감정을 품고 봤던 것 같다.

 

공연을 보기 전 유쾌한 제목에 웃음을 지었지만, 공연이 끝나고는 '춘자 씨'라는 이름을 들으면 괜스레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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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춘자 씨가 치매에 걸려 7살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것. 70에서 0 하나를 뺀 것이라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을 때도 둘 다 똑같이 초 7개만 꽂는다는 것.

 

이러한 설정들과 대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살아온 세월은 10배에 달하지만 마치 정말로 70살 노인이 7살 어린아이처럼 변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처음부터 바로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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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하는 대로 다 돼지.'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이 멘트가 뚜렷이 각인이 되어 자연스레 머릿속에 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 위에는 다양한 간판들이 다양하게 즐비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바로 앞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간판이 바로 이 '소원하는 대로 다 돼지'이다. 간판만 봐도 이 가게가 고깃집이라는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배우분들이 다 같이 안무까지 하며 이 간판 이름을 가사에 넣어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뭉클한 여운이 가신 뒤에는 이 노랫말을 자연스레 계속 흥얼거릴 정도로 중독성이 엄청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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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연출적 구성 또한 다양한데, 우선 초반부에 불이 난 것을 표현하기 위해 조명이 붉게 바뀐 뒤 배우들이 당황해 서둘러 이동하는 모습을 느린 동작으로 표현하고자 배우들이 직접 몸과 표정을 느리게 하며 마치 그 상황을 느린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굉장히 리얼해서 정말로 보는데 마치 영화로 슬로우모션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또한 마지막 춘자 씨 앞으로 수화기 하나가 천천히 마치 동아줄처럼 천천히 내려오고 그 수화기를 집자, 하늘에 있는 자신의 남편, 딸, 어머니와 소통하는 장면은 연출적으로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간 쌓아왔던 감정선이 가장 폭발했던 부분이었다.

 

지속적으로 공간과 상황이 변하는데도 배우들은 그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해서 관객들에게 뛰어난 연기를 선사해 주었다. 춘자 씨 이외의 몇몇 캐릭터들은 한 배우가 분장만 달리해서 맡는 경우도 있었는데 같은 배우인 걸 알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말 캐릭터가 바뀔 때마다 재치 있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배우분들의 연기를 보는 것 자체로 이 연극은 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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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치매'라는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냥 슬프지도, 그렇다고 계속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 주제는 계속 선명하게 부각하되, 중간중간 재치 있는 대사들과 익살스러운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극의 분위기를 계속해서 환기해 준다. 그렇게 웃기다가도 또 어느샌가 극에 몰입해서 배우들의 표정과 연기를 보며 감동을 받았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말 그대로 관객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며 마치 시종일관 관객과 정서적 소통을 유지해 나간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노인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마치 지금 젊음이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 젊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눈떠보니 거울 속 주름이 깊게 파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나에게도 올 것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던같은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서는 늙는다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이들이 곁에 있고,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의지만 있다면 노년의 삶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 삶 또한 충만한 삶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박하사탕'에 나오는 대사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를 나직이 외치며 그 공연의 감흥을 잔여로써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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