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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람마다 좋아하는 향이 다르다는 게 문득 신기하다. 살면서 기분 좋게 느끼는 향과 그렇지 않은 향이 사람마다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 어떻게 향에 대한 취향이 생기는 걸까? 그래서 나는 무슨 향을 특별히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니, 인센스 향이나 우디 계열의 향수를 좋아하는 것에는 비교적 명백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다. 불교 사찰에서의 기억들 덕분이다. 자연의 향과 어우러지면서도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 편안한 향을 한껏 들이마셔 머릿속 깊은 곳에 스미어 들었나보다.

 

나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절에 자주 갔다. 부처님오신날에는 매년 절에 가서 절밥을 먹었고 아빠 따라 등산을 하면 산등성 어딘가 항상 절이 있었다. 햇살이 만연하고 새들이 지저귄다. 불교의 사천왕을 우습게 구경하며 입구를 지난다. 기왓장에 소원을 적는 곳이나 기념품 염주를 파는 곳이 있다. 아기부처에게 바가지로 물을 떠서 부어주기도 한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특히 모래나 돌을 밟으며 지나가는 발소리가 반복된다.


그 안에 결계라도 쳐져있는 듯한 법당이 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레 들어간다. 향초의 연기로 가득 메워져 있다. 모든 게 가라앉는 듯 고요하다. 법당 밖의 소음이 아득한 외부음이 된다. 엄마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합장을 한 번, 절을 한 번, 다시 합장, 다시 절, 마지막 합장으로 삼배가 끝난다. 소원을 빌어야 했나, 죄를 고백해야 했나, 생각을 비워야 했나. 갸우뚱거리며 다시 조용히 법당을 나온다. 다시 마주한 바깥세상은 유난히 쾌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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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코엑스와 봉은사 일대에서 4월 3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2025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다녀왔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불교가 유행이라는데 왜인지 궁금했다. 사실 하나의 ‘종교’가 트렌드처럼 ‘소비’된다는 것이 그리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나와 나의 세대에게 다가오는 불교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불교박람회의 마지막 날이었던 코엑스 전시장에는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렸다. 긴 줄을 서서 들어간 박람회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로 붐볐다. 도자기 공예, 불교미술, 불교 서적, 각종 장신구와 먹거리, 상담이나 체험 부스 등 374개의 불교와 관련된 부스가 줄지었다. ‘불교’ 하면 떠올리는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북적임이었지만, 현재 불교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얼마나 뜨거운지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마주하는 템플스테이 부스에서 ‘무병장수’라는 나의 유구한 소원을 쓰고 박람회 탐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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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술은 매우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이루는 복잡다단한 요소들 사이를 지나가는 얇은 선을 찾아 균형을 맞추는 일 같았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묘한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내 관념 속 ‘불교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도자기 공예는 하나같이 아름다워서 구매욕을 몹시 불러일으켰다. 작고 예쁜 찻잔 하나만 사 가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기막힌 다도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사지 않았지만, 이런 물질적 욕구를 불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마치고 집에 와서 박람회 부스를 통해 알게 된 ‘대일여래 부처님 AI’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다. 그가 답하기를 찻잔을 통해 잠시 진실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롯이 찻잔 덕분만이 아니다. 불교의 ‘연기법’을 통해 생각해 보면 내가 찻잔을 보고 사고 싶었던 것과 이로써 얻는 만족감은 ‘찻잔’이라는 하나의 물질만으로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복잡한 원인이 맞아떨어진 일시적 현상이다. 따라서 물질 자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어리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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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장을 바쁘게 돌아다니다 특설무대에서 진행 중이었던 ‘담마토크’를 듣기 위해 잠깐 자리에 앉았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법인스님의 토크 시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극단의 세상에서 나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가르침이 주제였다. 유독 와닿았던 말씀은 “인과응보에는 시차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인과응보란 시차는 있을지 몰라도 오차는 없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그러나 스님은 시차 또한 없다고 강조하셨다. 내가 감사하면 감사하는 사람, 양보하면 양보하는 사람, 베풀면 베푸는 사람이 시차 없이 즉각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긴 나의 좌우명이 이와 일맥상통하는 ‘지금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였다. 장차 많은 계획과 노력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대신,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한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렇게 ‘지금’에 집중하는 힘을, ‘업보’와 ‘윤회’를 이야기하는 불교에서 오히려 중시한다는 점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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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교가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에 대해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먼저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뉴진스님’이나 재치있고 트렌디한 감성을 녹여내 큰 인기를 끌었던 굿즈들을 보면, 변화에 수용적인 불교라는 종교 자체의 포용력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시대 적응력이 좋은 문화에 호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더욱 근본적으로, 무교인이 인구의 절반을 넘는 한국에서 ‘왜 종교가 빛을 받는가?’에 대한 답으로 노래 한 곡을 꺼내고 싶다.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체하기엔

이 세상 젊은 한숨이 너무나 깊어


한바탕 눈물로

잊어버리기엔

이 세상 젊은 상처가 너무나 커

 

<이선희, 한바탕 웃음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 젊은이들이 많다. 한바탕 웃음과 한바탕 눈물로는 사라지지 않는 깊게 베인 번뇌를 가지고 살아간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데, 고작 한바탕의 봄 꿈 속에서 우리를 이토록 옭아매는 것은 무엇일까?


이선희의 ‘한바탕 웃음으로’가 발매된 지도 벌써 2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부처를 따르는 것이 이토록 오래된 젊은 한숨을 마법처럼 없애줄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각자의 작은 법당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모든 것을 잠시 정지하고 마음을 쉬어갈,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시 신발을 신고 세상을 맞이할 용기를 주는 그런 곳.

 

마지막으로 법인 스님이 읊어주신 원효대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중생이여 참으로 오묘하다 유혹하지 않는 지옥에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가는가

중생이여 참으로 오묘하다 막지 않는 극락에 왜 이리 적은 사람들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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