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개의 카페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大) 카페 시대'
그 중 오직 단 하나의 카페만이 선사할 수 있는 순간은 분명 있다고 믿는 청년의
진솔한 카페 관찰 일지
01. '굳이'의 힘을 믿던
당신과 나는 부러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찾아다니던 사람이었죠. 버스를 타는 대신 걸음을 옮기고, 5분 후의 지하철이 오는 곳 대신 30분 후의 지하철이 오는 곳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왜'라고 우리를 의아하게 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굳이'가 갖고 있는 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와도 같은 꿈을 안고 살았던 당신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다양한 해외의 뮤지션들을 이야기하며 신나게 떠드는 당신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죠. 당신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어느 날은 피아노곡을 들려주며 나와 함께 감상에 젖고 싶어 할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시끌벅적한 밴드 음악을 들으며 해당 밴드가 해외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해하지 못할 표정으로 멀뚱히 있었어요. 그 당시의 나는 당신의 눈에 박힌 보석이 가진 값어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이 억지로 앉혀서 노래를 들려줄 때면 지루함에 몸부림을 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음악을 들을 때가 있었어요. 당신과 나 사이에 '전화'라는 매개체가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벨 소리를 듣고 싶어 일부러 당신에게 전화를 걸 때가 있었고, 당신은 신기할 정도로 그 마음을 잘 눈치채어 종종 나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다가 벨 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저에게 다시 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연결되고 나서는 굳이 전화기 너머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들려주며 함께 감상할 때도 있었죠. 저는 음악이 가진 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음악의 힘을 쉽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만, 그럼에도 제가 '음악을 감상한다'는 행위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순간들이 있었던 덕분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음악이 너무 쉽게 닿는 시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손끝으로 모든 노래를 불러올 수 있고, 사람들은 ‘듣는’ 대신 ‘틀어두는’ 방식으로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감상은 줄어들고 청취만 늘어나는 지금 음악의 값은 더 이상 비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요. 편리함은 언제나 그 본질이 가진 힘을 조금씩 퇴색시키곤 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나는 문득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당신과 턴테이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으나 나는 턴테이블이, 그리고 레코드판이 가진 힘을 당신은 분명 사랑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바늘을 올리고, 숨을 고르고, 한 곡의 음악과 함께 고요히 의자에 앉아 머무는 그 순간을 사랑했을 것임을 말입니다.
02. 음악의 시간이 흐르는 [와니타 음악감상실]
최근 한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서울, 성수동의 한 오래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다 보면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이 갖고 있는 특유의 시원함을 느끼다 보면 오랜 주택의 현관문과도 같은 하얀색의 문이 저의 앞에 나타났어요. 문 위에는 [Wanita]라는 영어가 적혀있었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늑한 조명들과 우드톤의 가구들, 그리고 식물들이었습니다. 왼편에는 스티커가 가득 붙은 회색 냉장고와 병에 담긴 다양한 음료들이 정갈히 정리된 카운터가 보였어요. 우리가 어느 날 함께 방문했던 작은 호주의 펍이 떠오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 앞에는 반짝이는 알전구 아래로 큼직한 테이블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저마다 다른 모양을 가진 테이블들이 서로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는 거리로 놓여 있었죠. 그리고 그 모든 테이블 위에는 작은 턴테이블이 한 대씩 놓여 있었습니다.
햇빛의 방문이 한정되어 있었던 그곳은 서울의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의 속도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흐르는 것은 오직 시간도, 사람의 말소리도 아닌 음악뿐이었습니다. 굳이 턴테이블 앞에 앉아 레코드판 위로 바늘을 올리는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고, 오로지 음악의 흐름을 즐기는 곳이었으니까요. 그곳의 속도는 세상이 아닌 음악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찍이 와서 음악을 즐기던 두 손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중년의 여성과 한 청년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하나의 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헤드폰으로 함께 음악을 듣던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다른 카페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눈을 감고 함께 음악을 감상했죠. 그 두 사람의 사이는 고요했지만 그들이 같은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카페의 이름은 [와니타 음악감상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굳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감상’하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말이에요.
03. 알딸딸 라떼가 갖고 있는 음악의 결
저는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알딸딸 라떼'를 주문했습니다. 메뉴판을 바라보는데, 다른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알딸딸'이라는 귀여운 단어가 있다는 것이 저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오렌지 향의 라떼라고 하기에 호기심이 동했고, 사실, 이름이 '알딸딸'인 만큼, 애주가인 저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당신은 술을 한 잔도 못 마시기 때문에, 만약 당신과 함께 왔다면 당신에게는 이곳의 시그니처인 버터크림라떼를 추천해 주었을 것 같아요. 저는 카운터 앞에서 저의 주문을 가만히 기다리던 직원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알딸딸 라떼 아이스로 부탁드릴게요."
직원은 저의 주문에 오히려 역으로 저에게 제안했어요.
"따뜻한 것으로 드리는 것은 어떠세요?"
"아, 알딸딸 라떼는 아이스가 불가능한 걸까요?"
"아뇨, 가능해요. 하지만 따뜻하게 마셨을 때 맛이 더 좋아서, 괜찮으시다면 따뜻한 것으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직원의 다정하고 섬세한 말에 저는 느리게 고개를 주억였습니다. 평소 카페에 가서 따뜻한 음료는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알딸딸 라떼'에 대하여 미지의 상태에서 직원이 건네주는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직원이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알딸딸 라떼를 내려놓았습니다. 설명 그대로, 잔 안에는 은은한 오렌지빛이 감도는 라떼가 담겨 있었죠. 조금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을 때 먼저 입안에 퍼진 건 부드러운 라떼의 질감이었습니다. 그 이후 곧이어 오렌지의 상큼한 향이 입안에 퍼졌어요. 그리고 그 모든 감각 위로, 아주 은근하게 알코올의 따뜻한 기운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신기하죠. 그 라떼가 갖고 있었던 온기는 제 몸의 모든 긴장을 녹이고 여유를 주는 힘을 갖고 있었어요. 향긋하면서도 강렬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온몸을 녹일 정도의 풍부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그것을 느끼며, 라떼에서 음악과도 같은 힘이 품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04. 당신의 주말이었을지도 모르는 레코드판
그곳에 있던 턴테이블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턴테이블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구조였죠. 직원의 섬세한 안내를 들은 뒤 손수 적은 [LP 사용 백서]를 읽어보며 더듬더듬 기계를 조작해 보니 금세 턴테이블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턴테이블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라떼를 몇 모금 마신 뒤, 저는 천천히 카페를 둘러보았습니다. 벽면에는 레코드판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지만, 음악에 대해 무지한 제가 반가움을 느낄 만한 순간은 찾지 못했습니다.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미지의 대상들을 앞에 두고 무엇을 듣는 것이 좋을지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닿은 곳엔, ‘와니타 가족’들이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성스레 적어둔 추천 문구들이 있었습니다. ‘재즈의 황제’, ‘불멸의 피아노’, 혹은 ‘와니타 가족 최애 레코드’ 같은 문구들이요. 그 문장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되었거나, 아니면 누구든 음악에 조금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와 음악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귀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던 중, 제 눈을 붙든 한 장의 레코드판이 있었습니다.
#주말, 고속도로
우리는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음악 앞에서는 그 숫자의 힘이 자주 무력해진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그 레코드판을 홀린 듯 들어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요즘 음악 플랫폼의 재생목록 제목이 ‘몇 번이나 재생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감정을 건드리는지’로 채워져 있는 이유와 닿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감성만으로 음악을 설명한다는 것은, 숫자로 음악을 설명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니까요.
그 레코드판에는 레코드판 특유의 '튀기는' 소리와 함께, 예상과 달리 경쾌한 리듬의 올드 팝송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말의 고속도로에서 잔잔한 음악에 몸을 기대는 나의 상상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 그 음악 속엔 담겨 있었지요. 하지만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설령 이 음악이 내가 그리던 ‘주말의 고속도로’와는 다를지라도, 누군가는 이 노래를 들으며 자신만의 풍경을 떠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취향의 세계는 한결 넓어졌다는 것을요.
어쩌면 언젠가, 이 음악을 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누군가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면, 그건 아마 이 해시태그가 가진 힘 덕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그날의 내가 당신을 떠올렸던 것처럼요. 이 음악이 담고 있는 주말은 비록 내 것이 아니지만, 분명 당신의 주말일 수 있겠다고, 왠지 당신이라면 이 노래를 참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05. 감상의 방
턴테이블을 한참 들여다보다 문득 시선이 머문 곳은 한쪽 벽면에 따로 분리되어 있는 작은방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단단히 닫힌 문 틈새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에는 '청음실'이라는 글자가 적힌 메모가 붙어있더군요. 이미 턴테이블로도 음악을 충분히 감상하고 있었지만, 그 방 안에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소리를 듣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저는 조심스럽게 턴테이블을 정돈한 뒤,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귀를 감싼 것은 심장을 두드릴 만큼 선명하게 울리는 음악이었고, 눈에 들어온 것은 탁 트인 공간과 창문을 일부러 커튼으로 가려 햇빛을 등지게 한 뒤 놓인 커다란 스피커, 그리고 그 앞으로 줄지어 놓인 목제 의자들이었습니다.
‘막귀’라는 이름 아래 음질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저도, 음악을 ‘감상하는 법’에 아직은 서툰 저도, 그 청음실에 들어선 순간만큼은 어느새 차분해져서 음악을 듣게 되었습니다.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의자에 앉아 그저 멍하니 음악에 몸을 맡겼어요.
앞서 턴테이블 앞에서 음악을 듣던 제가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아날로그가 가진 따스함과 낯섦 덕분이었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청음실에 들어서고 나니, 어쩌면 저는 단지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을 아직 잘 몰랐던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턴테이블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가진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저에게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 방 안에는 오직 음악만이 존재했고, 저도 그 속에 조용히 잠겨 있었어요.
06. 음악은 때로는 새로운 만남입니다
그곳은 음악과 술, 그리고 커피가 한자리에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하나도 중심이 되려 하지 않고, 조용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마음을 다그치지 않아도 되는 곳, 감정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그 조화 안에 담겨 있었죠. 마치 영화를 본 것만 같은 여운을 카페에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카페를 나서며 꿈에서 깬 것만 같은 기분은 느낀 뒤, 저는 다시 당신 생각을 했어요. 당신은 분명 이 공간을 사랑했겠죠. 신나서 저에게 레코드판을 설명해 주고, 청음실에서 스피커의 음질에 대해 기뻐하고, 그 시간을 저와 나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을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순간이라면 언제나 그랬듯 당신은 반짝이는 눈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설레했을 것이고, 저와 함께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겠지요. 그러다 음악이 어느 순간 너무 좋아서, 우리 둘 다 말을 멈추고 조용히 귀 기울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 건물 밖으로 나오며 저의 손을 꼭 잡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그날 밤 저는 무의식적으로 꿈을 바랐습니다. 당신과 함께 [와니타 음악 감상실]에 가는 꿈을 꾸었으면 했습니다. 물론 당신은 꿈에 나오지 않았고, 아직까지 와니타 음악 감상실은 우리의 것이 아닌 저만의 것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당신이 언젠가 꿈에 나올 의향이 있다면 함께 그곳에 저와 찾아가 주었으면 해요.
카페 문 앞에 적혀있었던 글귀가 문득 떠오릅니다. [음악은 때로는 새로운 만남입니다]라는 글을 읽으며, 나는 카페에서 느꼈던 수많은 새로운 만남을 되새겼습니다. 턴테이블과의 만남, 레코드판과의 만남,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주말 고속도로와의 만남, 청음실과의 만남, 그리고 당신과 하지 못했던, 존재하지 않는 추억과의 만남. 와니타 음악 감상실의 말이 맞았습니다. 음악은, 때로, 그리고 어쩌면 자주 새로운 만남일 것입니다. 음악을 값싸게 듣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순간들 속에서, 음악의 힘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만남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