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의 청소년기는 철학적인 질문과 함께였으나, 성인이 된 후로 철학은 나와 거리가 먼 존재가 되었다. 관심이 사라졌다기보단 몇몇 입문 서적조차 나에겐 다소 어려웠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에게 이 책을 추천받게 되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수업”이라는 카피를 보며 어렸을 때 궁금해했던 많은 질문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학문으로써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가볍게 접근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거나 논쟁을 불러일으킨 글들을 각색하여 여러 관점에서 문제를 조명한다. 동물권 운동가들의 ‘과격한’ 시위를 중심으로 의도가 좋으면 폭력이 허용되는지,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에서 생태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칙’을, 놀이공원 패스트트랙 정책을 통해 아마르티아 센의 공적 추론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철학이 주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한 문제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시각을 제시해 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철학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파트는 “시험에 지각하면 시험을 칠 자격을 잃어도 될까?”였다. 다른 장에서 동물권, 노키즈존, 장애인 등에 대해 다루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 이야기는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시험에 늦어서 시험을 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우리에게 그다지 논쟁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규칙에도 문제를 제기할 부분들이 여럿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저자는 ‘시험 시간에 지각하면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규칙에 대해 교수가 일방적으로 정한 ‘합의되지 않은 규칙도 지켜야 하느냐’라는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동시에 “하지만 아무리 규칙을 정할 교권이 있고 규칙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생각해 볼 여지는 아직도 남습니다. (...) 학생들이 대체로 교수와의 관계에서 약자이며, 규칙이 갖는 세세한 의미를 잘 따져 보지 못했을 수가 있다는 점을 볼 때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만으로는 도를 넘는 규칙에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인다.
시험에 관련한 규칙이 도를 넘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견해마다 다를 테지만,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어가며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책에는 해당 논쟁에 대한 인터넷 댓글 반응도 같이 실려있다. 저자의 중립적이고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댓글을 읽고 있자면 그 날카로운 반응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일상에서 듣게 되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논쟁들 속에서 나는 과연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면밀히 살펴보았을까, 다수의 목소리에 휩쓸리진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글을 읽다 보면 일견 답답하기도 하다. 논쟁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러 의견 모두에 타당한 지점이 있다고 말하며 명확한 결론 없이 어중간하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도덕”이라면 아마 그 이상의 것은 우리 스스로 쌓으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당연해 보이는 것이라도 결국 여러 문제에 답을 내리는 것은 스스로만 할 수 있는 일이리라.
저자는 “사이버공간을 떠다니는 수많은 글 사이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 의젓하게 살아가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철학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다정한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