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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 『춘향전』. 그중에서도 완판 84장 본은 춘향의 어머니, 월매의 역할을 독특하게 조명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특히 월매가 꾸는 두 번의 중요한 꿈은 단순한 삽화를 넘어, 주인공인 춘향의 성장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몽룡과의 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장치로 작동한다. 유교적 가치관이 중심이 되는 서사 속에서 신비로운 도교적 요소가 어떻게 조화롭게 스며들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지, 월매의 꿈을 통해 살펴본다.

 

 

 

신성한 예지몽, 춘향의 근본과 운명적 만남을 암시하다


 

완판 84장 본 『춘향전』¹ 에서는 월매는 두 번의 중요한 꿈을 꾸는데, 춘향을 잉태할 때와 춘향과 몽룡이 결연할 때이다. 우선 춘향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꾼 꿈은, 오월 오일 지리산 반야봉에서 정성껏 치성을 드린 뒤 선녀가 내려오는 꿈을 꾸고 춘향을 낳는 화소이며,² 춘향과 몽룡이 결연할 때 꾼 꿈은 "난데 없이 연못에 잠긴 청룡 하나 보이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夢) 자 용 룡(龍) 자' 신통하게 맞추었다."³라는 내용이다. 월매의 꿈 내용처럼 춘향의 전생이 옥황상제의 선녀였다는 태몽은 춘향이 기생 출신의 어미에게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귀한 사람임을 암시한다. 또한 춘향이 몽룡을 만나기 전 꾼 월매의 '청룡 꿈'은 신분을 뛰어넘은 그 둘의 만남을 합리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월매의 꿈은 『춘향전』과 같이 유교 윤리에 따라 열(烈)을 표면적이자 대표적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에서, 비유교적이며 도교적인 요소를 통해 유교적 윤리를 자연스럽게 합리화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인상을 준다.

 

¹ 송성욱 옮김, 『춘향전』, 민음사, 2004.

² 위의 책, 10-13쪽.

³ 위의 책,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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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도교의 경계에서: 월매, 새로운 어머니상을 그리다


 

기존 기생계 춘향 서사(『남원고사』)에서 월매는 현실적 이익 추구를 우선하며 딸의 '열(烈)'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인다.¹ 반면 완판 84장 본에서는 월매가 춘향을 '나는 기생일지라도 너는 기생이 아니'라고 하며, 딸을 '양반의 서녀(庶女)'로 규정한다. 때문에 춘향은 일곱, 여덟 살 무렵부터 서책을 읽어 수신제가(修身齊家) 교육을 받거나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학습하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춘향의 이러한 '유교화' 학습 과정이 단지 유교적 교육에만 기인하여 단선적이거나 진부하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월매가 신묘한 꿈을 꾸거나 봉사를 통해 점을 치는 등 비합리적이고 초월적인 영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월매가 지닌 미래를 예견하는 꿈의 능력은 딸인 춘향에게까지 전해져, 춘향 또한 몽룡이 어사로 오기 전에 '황릉묘'에 오르는 예지적 꿈을 꾸게 된다.²

 

¹ 김지윤, 「춘향서사에서 월매 역할의 변이」, 고전문학연구, 56, 2019, 130쪽.

² 송성욱, 앞의 책, 128-139쪽.

 

 

 

비합리성의 역설: 꿈이 부여하는 서사의 신뢰와 깊이


 

월매를 통해 나타나는 도교적이며 비합리적인 서술은 역설적으로 사건의 전개에 신뢰감을 주며 완판 84장 본 『춘향전』을 단순히 유교적 열녀 서사로만 보지 않도록 만든다. 즉, 몽룡이 정식 혼례를 치르기도 전부터 첩을 들이는 행위가 당대의 유교적 가치관과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월매는 꿈에서 본 상서로운 징조를 통해 이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옥에 갇힌 춘향을 위해 봉사를 불러 꿈 해몽을 부탁해 몽룡의 귀환을 기대하는 모든 행위가 옳고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든다. 이는 월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 속에서 엄격한 신분제가 흔들리고 도교적 신앙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반영한 혼종적 문화 양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월매는 옥황상제나 청룡 같은 도교의 초월적 존재가 등장하는 꿈을 꾼다. 도교적 꿈의 강조는 유교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이지도 않고 제도적으로 엄격함을 지킨 것도 아니기에 다소 이질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옥황상제나 청룡 같은 상징들이 조선 사회에서 오랜 기간 문화적으로 전승되어 온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월매의 꿈은 당대 사회가 추구했던 공적 윤리(열녀 담론)와 개인적 차원의 사적 신앙(도교, 무속)이 함께 공존하며 서사의 흥미를 더하고 현실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그래서 완판 84장 본 『춘향전』은 유교적 열녀 서사를 표방하면서도, 그 구현 과정에서 유교적 규범에만 얽매이지 않고 꿈이나 산신, 무속 신앙 같은 화려하고 비합리적인 수사까지 가능한 한 모두 동원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춘향전이 오랜 세월 널리 향유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유교 질서를 구현하면서도 도교적이고 무속적인 상상력을 중층적으로 결합한 데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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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거울, 혼종적 문화 지형도를 담다


 

완판 84장 본의 월매는 『남원고사』에서의 월매와 달리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처럼 일부종사(一夫從事)하기를 바라며, 수절하는 춘향을 안타깝게 여기고 늦게 돌아오는 몽룡을 원망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월매는 유교적 혼인 담론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월매는 동시에 도교적, 무속적 사고방식을 구사하여 서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존재이다. 당대 판소리계 소설이 월매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은, 소설이 유교적 질서와 덕목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세속적이고 신비롭고 비합리적이지만 친숙하고 신뢰받는 도교적, 무속적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합을 통해 판소리계 소설이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고 또한 근대 이전의 다양한 사회계층의 욕망과 가치관이 혼합된 당대 사회상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사례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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