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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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 글은 만화 「인터넷 러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연을 만들고 가족을 형성한 우리의 부모 세대와 달리 사랑의 현주소에서 SNS는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의 안부를 확인하고, 영상통화로 얼굴을 마주하며 심지어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직접 연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의 폭이 비약하게 확대되어 과거라면 마주치지 못했을 이들과 자연스럽게 “친구 맺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대가 인터넷에 업로드만 한다면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있는지를 포함한 모든 상황의 전후 사정에 대해 알 수 있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공유하며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오늘날 청춘들의 만남에 대해 색다르게 표현한 만화, 「인터넷 러브!」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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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러브!」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일본인과 한국인의 글로벌 퀴어 로맨스에 대해 다룬 만화이다. 작가 “우리노 키코”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BL 장르로 일본 현지에서는 발매 전부터 중쇄를 결정지으며 화제가 되었다. 이후 번역본이 전자책 매체에 발매되며 데뷔 15년 차 중견임에도 한국에서 신성처럼 등장한다. 본 작품에 대한 감상평에서 기존에 알려진 BL 물보다는 퀴어물에 가까우며, MZ보다도 젠지 세대의 감성에 가깝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유행에 민감한 10·20대를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젊은 세대 역시 한국 문화에 주목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 3자의 눈을 통한 한국인이 과연 작품에서 어떻게 그려질 지도 눈여겨볼 점이다.

 

이야기는 일본 도쿄에서 네일아티스트로 근무하는 “텐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텐마의 모닝 루틴은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한 남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직 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한국인 “은호”가 밤새 올린 스토리를 정주행한 다음에야 여자 친구에게 아침 인사를 보낸다. 이 일상을 5년 동안 지속해 온 텐마는 마치 연예인의 일상을 구독하듯이 멀리서 은호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는데, 어느 날 그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게 된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던 그에게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며 둘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던 경계가 희미해져 버린다.


 

 

우리노 키코가 그리는 흑백 만화의 묘미 속으로


 

흑백 만화에서 그림체는 작가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색을 담아낼 수 없는 흑백 만화에서는 선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 같은 공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고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런 점에서 작품을 보았을 때 맨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인물에 대한 묘사이다. 작가는 성별에 따른 신체적인 특징에 분명한 차별점을 두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주인공 텐마나 은호를 포함한 남성에서는 굵직한 선을 비롯한 직선적인 미가 도드라지며 신체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과 같이 역동적인 동작에서도 근육의 움직임이 드러나며 활기가 느껴진다. 반면, 여성의 경우 속눈썹이나 머릿결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곡선적인 유연함을 강조한다. 텐마의 직장인 네일샵이 이야기의 주축이 되기에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패턴의 의상을 보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의 성격을 대변하는 외양 또한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네일아티스트인 텐마는 이리저리 뻗쳐있는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 개성있는 옷차림을 고수한다. 치마처럼 보이는 통 넓은 오버핏 반바지를 입고, 꽃 모양 가방이나 독특한 형태의 비니를 쓰기도 한다. 반면 한국인인 은호는 스탠다드 핏의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르며 비교적 우리에게 익숙한 옷차림이다. 텐마와 정 반대의 성향을 띄는 그는 무채색의 대비 감이 느껴지는 옷들을 주로 입으며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캐릭터들은 국적에 따른 외형적인 차이를 보이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정되어 있다. 작가의 관찰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물들은 만화의 바깥세상에서 보았을 법한 기시감을 자아내며 스토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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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을 맞이하는 방법


 

작중 텐마는 인스타그램의 위치 설정 기능을 통해 은호를 알게 된다. 같은 숙소를 묵고 있던 은호에게 팔로우 신청을 한 이후, 이 둘은 5년 동안 맞팔로우 상태를 유지한 채 서로의 근황을 지켜본다. 마치 연예인과 팬의 관계처럼 암묵적인 선이 존재하던 이 만남에서 은호의 메세지(디엠)은 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답장에서부터 대화가 이어지고,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처럼 SNS를 통해 인연을 만들기란 젊은 층 사이에서 떠오르는 교제 방법이 되었다. 상대가 올린 사진으로 언제든지 얼굴을 확인할 수 있고, 게시물을 통해 상대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으며 클릭 몇 번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직접 대화를 해보지 않았더라도, 언어와 문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근황을 24시간 지켜볼 수 있다. 이 관계를 완전한 남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과연 유대감이 없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이렇듯 작품은 인터넷으로 이루어진 만남의 모호성과 관계의 진전에 대해 다루며 새로운 친구 맺기에 주목한다.

 

인터넷을 이용한 만남 못지않게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 바로 성적 지향성이다. 바이섹슈얼인 텐마는 은호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기 전까지 여자 친구와 교제한다. 매일 아침을 은호의 얼굴로 시작하긴 했지만, 현실적인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생각 하나로 여자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단골 손님과의 스몰 토크 중 자신이 바이섹슈얼이라 게이에게는 인기가 없다는 고충을 장난스레 털어놓는다. 또한 남자를 사귀고 싶으면 앱에서 만나라는 직장 상사의 말에 자신은 퀴어 중에서도 없는 존재라며 우울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작품은 텐마가 가지는 성적 지향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동성애를 다룬 대다수의 여성향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가지는 바이섹슈얼 성향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경우는 드물다. 즐거움을 얻기 위한 감상에서 돌연 끼어드는 현실 세계의 반영은 껄끄러움과 당혹감을 느끼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빠른 전개와 성적인 장면을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기에 「인터넷 러브!」는 개인의 성장과 성숙을 목표로 하는 퀴어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결말만큼은 어느 정도 낭만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아들의 성적 지향을 마주한 부모님의 반응은 상당히 인상깊다.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깜짝 방문한 부모님은 조심스럽게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묻는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 없다는 텐마의 대답에 엄마는 삶의 보람이 제일 중요하다며 더는 캐묻지 않는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부모님이 연상되는 이 이상적인 가정에서도 과거는 존재한다. 텐마의 부주의로 우연히 아들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하게 된 부모님은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도 이들은 편견 대신 존중을 위해 노력한다. 서로를 향한 배려의 결과물은 무지개색 머플러를 통해 상징된다.

 

텐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마중 나가자, 부모님은 마지막 인사에서 직접 뜬 머플러를 선물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맞잡고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놀랍도록 짧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기 마련이야. 청춘을 만끽하렴. 네 덕분에 우리도 이 나이에 공부할 수 있어서 재미있단다.” 두 손을 부여잡은 아버지의 손톱에는 아들이 직접 칠해준 매니큐어가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를 뿐 틀린 게 아닌 아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부모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에 대한 격려를 보낸다. 이들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아들 덕분에 공부할 수 있어 재미있다’라는 대사이다. 가벼움으로 위장했지만 존중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 말은 중년의 나이에 아들을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로 공부해 나가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누구보다 든든한 나의 편이 되어준 부모님 덕분에 텐마는 은호에게 연락해 볼 용기를 얻는다. 인생은 짧으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은 향후 전개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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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흐름을 이끌어가는 텐마의 입장에서는 수년간 좋아해 왔던 타인과 SNS를 통한 만남이 성사되는 극적인 러브스토리가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은호가 자신을 지켜봐 왔던 누군가에 의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은호는 일상 하나하나를 모두 인스타그램에 개시하기 좋아하는 SNS 중독이다. 파티를 열고, 명품을 사고, 놀러 가는 모든 행위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여주며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얻고자 한다. 외부의 반응으로부터 본인의 존재를 확신하는 은호는 타국에 있는 텐마와의 만남으로부터 자신을 쭉 지켜봐 주었던 인물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안심한다. 본연의 모습에 관심을 가져준 텐마를 만나면서 고독을 인식하고, 비로소 내면의 결핍을 자각한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자신을 올리며 만족감을 얻는 심리는 젊은 층 사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요즈음의 유대 관계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공동의 관심사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것 자체가 SNS를 통해 이루어진다. 작품은 가상의 공간에 자신을 표출하는 행위에 대해 마냥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이끌어 간다.

 

텐마는 은호의 SNS에 대한 집착이 분명 안 좋은 부분도 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순수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하루 종일 업로드를 하다 보면 단점이 드러날 법도 한데, 자신이 봐온 은호는 좋은 면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된 은호는 텐마라는 사람에 대해 더더욱 알고 싶어 한다. 비록 비행기를 타야만 서로를 볼 수 있고, 언어가 다르기에 대화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말이다. 시시각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SNS의 편리성 덕분에 두 사람은 인터넷 친구라는 장벽을 넘어 진지한 만남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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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발전한 오늘날 친구 맺기는 쉽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은 허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인 세상에서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모두 자신의 단점은 숨기고, 가장 빛나는 부분만을 도려내어 과장한다. 만남이 쉬운 만큼 헤어짐도 간편하다. 관계의 형성이 레토르트 식품처럼 단순화되어 가는 시대에 은호는 나만을 바라봐 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자신의 24시간을 내걸며 완전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럼없이 다가올 사람을 기다린다. 이러한 그를 5년 동안 지켜본 텐마는 어떻게 은호와 마주하게 될까?

 

로맨스의 끝에 행복이라는 유구한 결말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연애 서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의 과정이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동일한 방식의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정해진 답 또한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청춘들이 보고 싶어진다면, 이번 봄이 가기 전 「인터넷 러브!」를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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