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사람이 나갈 수 있었던 때는 언제일까?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저 먼 우주로 쏘아 보낼 수 있게 되었을까?
1961년 발사된 인류의 최초 유인 우주선 이전, 다른 ‘존재’가 먼저 우주를 겪어봐야만 했다. 인간의 목숨은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골라진 말 잘 듣는 떠돌이 개 ‘쿠드리야브카’는 우주개 ‘라이카’가 되어 인간을 대신해 1957년, 먼저 우주로 향했다.
우주개 라이카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라이카]는 실화를 철저히 고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프닝과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선 지구가 자주 등장하지도 않는 판타지에 가깝다. 극은 라이카의 입을 빌려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윤리적 논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주개 라이카
라이카의 여정은 오프닝넘버인 ‘오, 라이카’ 속 우주선에서 시작한다.
“우리를 대신해, 우리를 구원해, 우리를 용서해.”
소련의 붉은 깃발을 흔들며 노래하는 인간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라이카는 우주개가 되어 저 먼 우주로의 모험을 떠난다. 기자회견장에서 ‘동물 학대’를 묻는 기자의 말을 묵살하고, 폭력과 선전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당대 소련의 모습에서 언뜻, 극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의 정치적 상황이 보인다.
라이카는 ‘기다려’를 되뇌며 삑 거리는 이상한 소리도, 흔들리는 바닥도, 점점 뜨거워지는 공기도 참아낸다. 역사 속 라이카는 몇 시간 만에 우주선 안의 비정상적인 열에 의해 사망하고, 이는 극 속에서도 드러나지만, 뮤지컬은 공간의 분리를 통해 이 극이 ‘판타지’임을 어필한다. 뮤지컬 속 라이카는 잠깐의 기절 끝에 어린 왕자의 초대로 낯선 곳에 도착한다.
들어본 적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B612 행성. 알록달록한 코트를 걸친 ‘왕자’와 화려한 꾸밈새의 ‘장미’, 몰려다니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바오밥’들이 “안녕, 안녕!” 노래하며 라이카를 반긴다. 그러나 라이카에게 이들의 환영보다 더 앞선 것은 따로 있었다. ‘인간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개가 아닌 ‘존재’가 된 라이카는 인간같이 말하고, 걷고, 생각할 수 있음에 뛸 듯이 기뻐하며 넘버 ‘인간처럼’을 부른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존재’라니까?”라고 불퉁거리는 왕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라이카의 가슴은 자신과 함께했던 훈련사 및 보조 관리자 캐롤라인을 떠올리며 한껏 부풀어 오른다. 캐롤라인과 대화할 수 있어! 기뻐해 주겠지?
왕자와 라이카
그러나 왕자는 알고 있다. 라이카는 버려졌고, 그가 타고 온 우주선에 귀환 장치는 없었다는 것을. 애초에 인간을 혐오하는 왕자는 자신과 함께 지구를 부술 라이카가 필요해 초대했는데, ‘인간처럼’이라니? 당연히 라이카가 자신을 괴롭힌 인간들을 미워할 줄 알았던 왕자로서는 영 잘못된 존재가 도착한 셈이다.
두 존재의 차이는 상실에서 비롯된다. 왕자는 생텍쥐페리를 다시 만나기 위한 여정에서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접한다. 자신에게 친절했던 조종사 리페르트가 친구 생텍쥐페리를 죽이다니. 어린 왕자는 그 이후로도 지구를 지켜보며 인류의 수많은 잘못을 목격한다. 상실과 실망, 반복되는 실수로의 분노가 어린 왕자를 왕자로 만들었다.
친구를 잃고 피폐해진 왕자의 눈에 지구로 돌아가려 노력하는 라이카가 안쓰럽기만 했을까? 왕자는 ‘캐롤라인’을 찾는 라이카에게 곧바로 ‘인간들은 너를 버린 거야!’라고 말하고자 한다. 아무리 장미가 라이카의 적응이 끝날 때까지는 비밀로 하자며 말렸지만, 왕자의 마음속에서는 ‘어리석은’ 라이카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은 일종의 계몽 욕구가 샘솟았을 것이다.
왕자는 끝내 1막이 끝날 무렵, 장미와의 계획을 손수 망친다. 라이카를 자신에게 더 ‘길들이’고 싶었던 왕자는 결국 사실을 토로하고, ‘인간처럼’ 되었다며 좋아하던 라이카는 ‘인간처럼’ 복수하겠다며 지구의 파괴를 다짐한다.
장미와 라이카
장미는 주연 셋 중 유일하게 인간과의 직접적 접촉이 없던 존재다. 인간을 극도로 미워하는 왕자에게도, 인간이 너무 좋아 지구로 돌아가려는 라이카에게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장미는 객관적이다. 너, 사실은 같이 인간을 미워해 줄 존재를 찾고 있던 거잖아. 왕자의 마음을 꿰뚫어 본 장미가 직언한다.
사실, 완벽해 보이는 장미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어린 왕자]의 이야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게 혼란스럽고 두렵던 시절의 장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린 왕자가 참 밉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장미는 이러한 상실의 기억을 자기애로 극복한다. 장미의 넘버 ‘아름다워’를 통해 그는 계속해서 “타인은 지옥, 존재는 혼자”라며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타인에게로의 모든 기대를 끊어내며, ‘아름다움’이 스스로 택한 자신의 본질이라 말한다.
그저 세상사에 무심하고 또 그래서 멋져 보이던 장미의 자기애는 사실 일종의 자기방어다.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장미로부터 현대 사회를 연상한다. Love yourself라는 문구가 유행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온갖 제품을 소비하고, 남들과의 소통에 거짓된 자세로 임하거나 때때로 일부러 무례하게 대하는 우리의 문화를 생각한다. [라이카]가 말한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상실과 라이카의 선택
[라이카]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지만, 핵심은 ‘상실’의 이후다. 무언갈 잃은 이후 우리는 분노하거나, 일부러 무심해지기도 하지만 그 근본은 상실의 슬픔이다. 슬픔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까? 왕자는 지구를 부수고 싶다며 라이카에게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슬픔의 분노에 휩싸인 라이카는 수락하지만, 곧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품게 된다. 지구를 부수게 된다면 다른 존재들은 어떡하지? 함께 훈련받던 개들도, 푸르든 들판도, 맑은 하늘도 전부 사라지는 거잖아!
극 중 라이카의 의문을 통해 [라이카]는 ‘존재를 함부로 할 자격’를 논한다. 이는 사실 우주개 라이카를 강제로 동원한 인간들을 향한 비판이자, 인간적인 시선에서 라이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한계의 자각이다. 극은 ‘인간에게 감히 다른 존재를 희생시킬 자격은 없다’라는 사실을 ‘다른 존재들을 희생시키고, 내가 좋아하는 캐롤라인마저 죽는 선택은 할 수 없다’ 이야기하는 라이카의 입을 빌려 전한다.
끝내 라이카는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하고 싶냐는 질문의 답은 아직 없다. 인간들이 두고두고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라이카의 답은 인상적이지만, 구체적이지는 않다. 이 극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야에서 쓰였고, 라이카의 해답은 인간의 해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만의 다른 선택을 찾을 것, [라이카]가 던지는 또 다른 생각거리다.
우리는 모두의 거울
왕자도, 장미도 결국 라이카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라이카에게서 공감을 받고 싶고, 막 버려진 라이카가 안쓰럽다. 그들이 택한 것은 라이카를 자신들처럼 ‘길들이는’ 것.
소련인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라이카에게 투영한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대신하고 또 그런 ‘우리’를 용서하길 바란다. 그들의 방법은 라이카를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었으나, 라이카에게 자신을 투영한 캐롤라인은 라이카와 함께 도망가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서 자신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씩 상냥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을 투영한다는 것이 완전히 건강한 사고는 아니겠지만, 자신과 비슷한 점을 찾는 것이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은 아닐까? 매일매일 춥고 삭막해지는 시대, 더 따듯해지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세트와 귀에 딱 들어앉게 중독적인 노래, 환상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합해진 멋진 공연이었다. 뮤지컬 [라이카]는 무대 및 공연 기획자들이 꾹꾹 눌러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흘러넘치는, 멋진 이야기였다. 우리가 더 깊이 생각하고 또 조금씩 더 상냥해지기를 바라며, 바오밥(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