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질문 하나
최근 미디어에서 무용 관련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방영되면서 대중들에게 더 많은 움직임의 다양성이 전달되고 있다. 필자 또한 무용 콘텐츠를 찾아 소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콘텐츠를 향유하고 해석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와 동시에 문득 '더 많은 사람들이 각 무용장르에 대한 역사와 특성을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다면 새롭게 보이는 것에서 찾아오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들어왔고, 이 칼럼은 그 작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번 칼럼을 통해 소개하는 발레와 현대무용은 무용이라는 큰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동일하지만 각 장르 그리고 무용수가 추구하는 움직임 철학이 다르게 나타난다. 분명 같은 무용인데 왜 그렇게 상반된 움직임 특성을 가진 채 지속되었을까.
사회•문화, 역사적 맥락에 따라 예술의 미에 대한 개념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더 깊게 들어가본다면 고대 플라톤의 형이상학 : 이데아론을 통해 이데아의 모방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개념과 가치가 대두됐다. 이후 이데아의 모방 행위로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을 벗어나 예술만의 고유 목적인 ‘미’를 추구하는 순수예술이 등장했으며, 합리성, 이성, 객관에서 벗어나 주관적,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표현론에 입각한 예술이 여럿 등장했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역사적 흐름 안에서 무용 작품 또한 모방론과 표현론 중 어떠한 개념을 근거로 창작되었는가에 따라 각기 다른 움직임 특성 및 양상이 나타났다. 규칙과 체계를 기반으로 정형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고전발레와 무용의 본질을 탐구하며 비정형성, 우연성을 강조하는 현대무용의 움직임 철학을 탐구해 봄으로써 동시대 무용에서는 어떤 영향을 받아 해석되고 있는지 사유해 보고자 한다.
고전발레의 등장
17세기~18세기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의 지역에서 과거 그리스 로마의 균형, 비례, 대칭, 조화 등의 정형화된 형식미와 이성과 합리주의를 추구하며 고전주의 사조가 등장했다. 이후 프랑스 루이 14세 집권 시기, 왕립 아카데미를 설립해 그리스 로마의 균형, 조화 등의 형식미를 모델화 한 질서가 제시되었다. 피에르 보샹의 발레의 5가지 기본자세 당스데꼴, 연극에서는 삼일치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고전주의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질서의 모방으로 귀결되었고, 가장 본질적인 미의 조건으로 전체적인 구조의 통일성과 구성적 모순이 존재하지 않을 때 예술의 미가 탄생한다고 판단했다. 즉, 모방론과 표현론 중 모방론에 근거한 예술 사조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발레는 고전주의 이후 낭만주의가 형성된 예술 사조의 흐름과 달리 낭만발레 이후 고전발레가 발전하는 상반된 흐름을 보여주는데, 이는 루이 14세 집권 시기 아카데미 발레의 발전을 이룬 이후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낭만주의가 태동하면서 서유럽 국가에서는 규칙과 형식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며, 작가의 개성 및 주제와 감정에 집중했기에 낭만발레가 앞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 중심 무용을 강조한 낭만발레는 극단적 기교 편중과 무용수 개인에게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무용수들이 마지막 왕정국가로 예술에 대한 지원이 가능했던 러시아로 이주해 고전발레를 형성하는 요인이 되었다.
마리우스 프티파를 중심으로 발전한 고전발레는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확립된 발레 테크닉을 기반으로 발레 양식과 움직임을 수립했다. ‘고전발레’는 명료성, 조화, 대칭 및 질서와 같은 형식적 가치에 주안점을 두는 안무 개념을 지칭하는 말로써 춤의 구조와 스타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발레에서 ‘고전적’이라는 단어는 무용의 스타일과 형식을 의미하며, 시기와는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적용될 때, 이는 한 예술 사조를 규정짓는 여러 특성들 중 각기 다른 측면에서 그렇게 불리어지게 된 것이다. 어느 예술 경향을 하나의 이즘으로 지칭하는데 포함되는 것은 시대와 양식 그리고 사상과 기법 등의 내용과 구조에 관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이 중 발레에서 낭만주의는 그러한 경향이 나타난 시대와 내용에 의해 낭만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고전주의는 그러한 경향의 발레들의 양식과 기법상의 성격과 구조 대문에 고전적이라 불려졌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정형성
고전발레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의 주요 작품으로는 차이콥스키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공주> 3개의 작품과 <돈키호테>를 꼽을 수 있다. 그의 대표작에서 나타나는 무용의 구성적 측면을 먼저 살펴보자면, 프랑스의 발레 스타일과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스타일을 결합해 발레의 스펙터클 요소 강조 그리고 3, 4막 분량의 전막 발레로 분량을 확대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발레를 위해 차이콥스키와 협업해 무용조곡을 작곡했는데, 기존 작곡가가 완성한 무용조곡에 맞춰 안무 및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식과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구체적 동작과 작품의 흐름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무용음악 작곡을 요청해 작품의 분위기와 동작, 음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구조적 측면으로는 속도가 느린 춤으로 품위와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게시 아다지오'와 남녀 주인공의 기교와 발레 테크닉을 선보이는 솔로 파트로 구성된 '대 2인 무', 공연 이야기와 무관한 러시아의 민속춤을 삽입함으로써 러시아 무용수에게 고난도 기교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디베르스티망'으로 구성하여 진행된다.
이처럼 마리우스 프티파의 고전발레는 토슈즈의 발전으로 기교와 테크닉을 과시하는 특징이 주요하게 나타났다. 당시 작품 내 다리를 사용하는 기교를 보여주기 위해 낭만발레 시기의 로맨틱 튜튜에서 짧은 기장의 클래식 튜튜 (Classic tutu)로의 의상 변화가 나타났으며, 이러한 구성•구조적 측면을 제외하고 마리우스 프티파가 움직임에 적용한 균형, 조화, 질서, 명료함 등의 고전주의적 요소는 왕립 아카데미에서 구체화된 법칙, 다리의 턴 아웃과 당스데꼴의 5가지 기본 포지션 등 형식적 규칙과 체계를 고수하며 테크닉 상의 완벽함을 추구했다.
* 고전발레의 움직임 특성
1) 움직임의 분명한 선과 방향감을 통해 명료한 표현
2) 무용수 등•퇴장 시 일렬로 질서 있게 이동
3) 군무 배치나 움직임의 대칭과 질서
4) 움직임의 전체적인 통일과 조화
5)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통일된 움직임으로 완벽한 조화
6) 중심을 향한 안정적인 배경
마리우스 프티파가 이후 무용사에 미친 영향
시간의 흐르며 마리우스 프티파의 엄격한 체계와 형식은 점점 단순하고 진부한 예술로 인식되면서 대중들의 관심 또한 멀어져 가게 되었다. 더불어 기존 발레의 체계와 정형성을 거부한 모던댄스가 태동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레 안무가이자 기획자 디아길레프는 발레의 전통이나 관습으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로 ‘발레룃스’를 탄생시켰으며, 조지 발란신은 마리우스 프티파가 창조한 고전발레의 특성을 그의 작품에 일부 적용시켰다. 그는 고전발레의 개념과 원리 내에서 줄거리와 제스처로부터의 탈피, 무대장치와 의상의 축소, 인간의 순수한, 추상적 움직임을 강조, 음악을 통해 춤의 동기를 발생시킴으로써 발레가 음악의 형식에 귀속되어 무용수들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표현되도록 했다.
이처럼 마리우스 프티파의 고전발레는 이후 세대 예술가들이 형식주의적 특성으로부터의 탈피와 변형을 이루거나 그의 개념을 적용하되 일부 변형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발레 형식의 탄생으로 나아가게 했다. 특히 그가 추구한 발레의 정형성은 신-고전주의 발레와 모던 발레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전발레 형식을 파괴하는 시도와 표현성을 강조하는 특성으로 나타나 새로운 형식의 정착과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움직임의 체계와 형식을 부여해 움직임의 정형성을 철학으로 추구했던 마리우스 프티파와 달리 즉흥과 우연을 강조하며 무용의 본질을 탐구한 현대무용 안무가는 누구일까?
다음 이 시간에... To be continue.
참고문헌
1) 심정민, 「발레에서 낭만주의 이후 고전주의가 등장한 이유에 대한 고찰」, 『영남춤학회誌』 5권 1호, 2017, 105-128쪽.
2) 신효영, 「고전발레(Classic Ballet)에서 신-고전발레(Neo-Classic Ballet)로의 이행」, 『대한무용학회논문집』 78권 4호, 2020, 6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