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포위전
지난주 일요일, 엄마 아빠와 함께 제주4‧3평화기념관 국제교류전 기획전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1,425일 동안 지속된 사라예보 포위전을 경험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전시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하나의 덩어리로 다루기보다 전쟁터에서 일상을 지속해야 했던 어린이들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기억에 초점을 둔 기획전이다.
포위 공격을 겪는 동안 학교, 병원, 도서관, 박물관, 종교 등의 건물 파괴되었고, 사라예보 전쟁 동안 수많은 어린이를 포함해 11,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죽음은 너무나도 명백히 일상의 한 부분이었으나, 끝이 없는 폭격 속에서 콘서트, 연극, 전시는 계획되고 어둠 속에선 책이 쓰여졌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유년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현재의 삶을 어떻게 지속하고 있는지에 주목한다.
전쟁 중에도 어린 시절은 계속된다
전시 도입부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에 찬찬히 답하고 나면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된다.
어릴 적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기증한 유물과 함께 물건에 얽힌 37가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발레 1994. (멜라, 1984년생)
"발레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당연히 발끝으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처음으로 토슈즈를 신게 된 열 살 때까지 어떻게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발레반의 다른 발레리나처럼 나도 공연장에서 토슈즈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를 빼고 발레반 친구들이 모두 '진짜' 분홍색 토슈즈를 받았습니다. 나만 흰색 토슈즈를 받아서 슬프고 질투가 났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흰색 토슈즈가 어떤 것인지 내게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도시에서 생산되었던 사라예보 토슈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흰색 토슈즈를 신고 연습한 발레리나 지망생들은 사라예보 국립극장의 프리마돈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흰색 토슈즈는 그 뒤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사라예보 국립극장의 프리마돈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발레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사라예보 토슈즈는 특별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나의 첫 작품 (에디나, 1984년생)
"우리는 이 공책들을 인도주의적 지원품으로 받았습니다. 공책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엄마는 내가 학교 공부 이외의 용도로 공책을 사용하면 화를 내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 권을 꽁꽁 숨겨두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 내가 그리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모든 것들을 그렸습니다. 특히 책을 읽고 나서 상상한 드레스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략) 나는 훗날 상품 디자인을 전공하고 오늘날까지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11개월 만에 처음 맛본 오렌지" (메디나, 1977년생)
"친구가 오렌지 몇 개를 얻어와 나누어주었습니다. 우리는 각각 오렌지 한 개씩을 받았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 5명과 나누어 먹으려고 오렌지를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11개월 만에 보는 오렌지였기 때문에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맛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 오렌지 한 알은 나에게 너무 소중해서 일기장에 오렌지 조각을 붙이고 대문자로 "11개월 만에 처음 맛본 오렌지"라고 적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맛을 기억합니다."
저항의 드레스 (에미나, 1976년생)
"1993년 사라예보의 버려진 아파트에서 이 드레스를 발견했습니다.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밝은 색깔은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덕에 숨은 저격수들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 희미한 파스텔 톤의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었지만 나는 이 밝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이는 나의 저항이자 살고자 하는 의지의 표시였습니다."
행복한 가족 사진 (에르미나, 1993년생)
"스레브레니차를 탈출해 자유 지역에 도착한 우리는 한동안 학교 건물에서 생활하다가 틴자라는 마을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아버지가 없었기에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가 고향과 작별하고 떠날 때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내 여동생은 아빠를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나만 찍은 것이었는데, 가족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유일하게 남은 아버지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했습니다. 2010년에 아버지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매년 나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서 기도를 올립니다."
삶은 경험보다 오래 지속된다
사라예보의 흰색 토슈즈를 추억하며 여전히 발레 사랑하는 멜라, 인도주의적 지원품으로 받은 공책에 드레스를 그리다가 현재 드레스 디자이너가 된 에디나, 친구가 준 오렌지의 맛을 지금까지 잊지 못한 메디나, 저항의 상징으로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던 마음을 기억하는 에미나, 아버지의 사진을 가족사진에 합성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에르미나.
이들의 유년 시절은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그리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슬픔, 평범한 일상을 위협받던 순간의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과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 중에도 이들의 어린 시절은 계속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무한히 흔들리며 움직이며 그네처럼. 삶은 경험보다 오래 지속된다.
제주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5월 6일까지 진행된다.
제주에 살고 있거나 제주에 갈 기회가 있는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