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고 일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에 대하여
현대 사회에서 기술 혁신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여겨진다. 스마트폰, AI, 자동화 시스템 등의 기술은 우리의 일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실생활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적 고통, 사회적 고립, 정체성의 혼란 등 정신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우리는 기술 덕분에 더 넓은 세상과 쉽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고립과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단지 미래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일까?
기술과 고립의 사이
작품은 2060년 기술 발전과 기후 변화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진 미래를 배경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병이 관리 질환처럼 다뤄지는 사회를 그린다. 로봇이 보편화되고 인구가 감소한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과 싸우고 있다.
인물들은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 애쓰지만 점차 혼란과 비극에 빠져든다. 103세의 최미연은 살아갈 이유를 잃고, ADHD를 앓고 있는 민도윤은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응웬 하니는 사회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들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된다.
김민준 박사는 '워크맨 운동'을 창시하여 해결책을 찾고자 하지만, 정작 그의 딸 김시트왓 설린은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연극은 '워크맨 운동'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깊은 내면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술이나 외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8명의 인물들이 겪는 고립과 소외와 정신적 문제는 단순히 미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연극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내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듯했다.
미래의 부름, 현재의 질문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변해도 인간은 여전히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찾고자 한다. 기술과 기후 변화가 인간의 외적인 환경을 변화시킬지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고립감을 극복하려 애쓴다. 연극을 보며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을 관람하는 동안 등장인물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면의 고통과 고립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삶이 단지 외부 세계의 일부가 아닌 깊은 외로움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변인>이라는 노래가 흐를 때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더욱 강하게 와닿았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갑작스레 등장한 그 단어는 단순히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형성되는 얕고 형식적인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소외와 고립을 떠올리게 했다.
연극 속 다양한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상징으로 그들의 고통은 결국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말해준다. 이 노래는 결국 우리가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깊이 연결되는 관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워크맨’은 단지 미래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묻고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질문을 제시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