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회화는 전쟁터에 나가는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조제프 브누아 쉬베, <부타데스 또는 그림의 기원>, 1791년, 캔버스에 오일, 267*131.5cm, 그로닝에 미술관 소장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는 일은 아무런 쓰임이 없지만, 왠지 저 그림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추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 글을 쓰는 이의 일은 그런 추동하는 정서를 유심히 관찰하는 일이다. 그 모양과 쓰임을 관찰하고, 언어로 가려내어 보는 것. 그렇게 조감한 정서는 일종의 에너지로 관측된다.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운동량을 지닌 추동성은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때로는 글자들 사이에, 때로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제 할 일을 다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어떤 결과나 사건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정서의 발단은 설레고, 정서의 진행은 흥미진진하며, 정서의 마지막은 씁쓸하다. 감정이 한 바퀴 몰아치고 난 자리에는 손끝에 순간의 감각이 남는다.
어떤 정서는 거대한 사회적 개념이 되고, 어떤 정서는 그저 혼자 삭혀내는 데에 족하기도 하다.
가장 작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정서를 일부러 관찰하는 일. 그러다가 이내 그 쓰임을 다하고 스러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일. 오늘 나의 글에서 관찰할 정서는 그렇게 스러져가는 작은 이야기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한 연인을 담는다. 대학생 츠네오는 우연히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를 만나 그녀를 돌보게 된다. 처음에는 거칠고 냉소적인 조제였지만, 츠네오와 함께하며 점차 세상을 향한 마음을 열고 사랑을 배워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꾸며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의 남겨진 연인들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시들어가는 인연을 마주하기 힘들다. 따뜻했던 인연의 여름을 기억하기에, 인연의 겨울이 시리고 외롭다. 그 외로움 안에 존속하기에는 그들의 관성이 너무 크기에, 뼈대만 남아 앙상해져가는 인연에 무수한 가정법을 붙인다.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가 주는 아련함은 이내 그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허상이 된다.
무수한 가정법을 붙여 안고 있지 않으면 인연이 곧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그들이 공유하는 두려움은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쥐고 있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영원한 진리를 마주한 개인의 부박함이다. 그리고 그들을 부박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남겨진 추억의 소중함이다.
두려움이 마중물이 되어 그들은 가정법을 붙인다. 마음속 관성은 그렇게 가속되고 가중된다. 조제와 츠네오는, 가정법의 문법으로 스러지는 인연을 지탱한다.
카메라는 이들을 줄곧 따라다닌다. penning의 기법을 사용하는 카메라는 이들의 속도보다 늘 한 발짝 앞서있다. 이들이 인연에 끌려다님을 의미한다. 흘러가는 삶, 흘러가는 에너지. 카메라가 줄곧 한 발치 앞서서 담아내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것을 채우려 하는 이들 마음속의 추동성이다.
가라앉는 관계 앞에서 순간을 보듬는 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가정법의 추동성이 힘을 다한 뒤 남겨진 한 소년의 표상을 담는다. 그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인연의 끝은 인연의 사라짐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그들이 순간을 붙잡으려 세월을 만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인연의 마지막을 비로소 살아갈 수 있다. 인연은 원래 무상한 것이었다. 관계의 여름이 따듯한 것처럼, 관계의 겨울이 추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름이 아름답듯, 겨울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결국 회상되는 것은 세월이 아니다. 회상되는 것은 순간이다. 인연이 남긴 순간은 지속되는 세월로는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는 일은 그런 순간의 소중함을 보듬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림 속 그녀의 마음속에는 지나가는 세월에 대한 원망이 아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두 연인이 있었을 것이다.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붓질은 시간의 불가역성을 마주한 연인의 가장 절절한 사랑표현이다. 세월의 유량에 저항하는 순간의 사랑 표현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세월을 극복한다.
순간은 세월앞에 늘 무릎을 꿇지만, 가장 결정적인 지점에서 되살아나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
연인의 그림자를 회상하는 여인의 추억 속에 연인은 끊임없이 살아있을 것이다.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흘러가는 인생이 흘러가는 마음과 동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끔 길을 잃어버리는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저 꾹 참고 지나갈 수도 있다. 마음을 부풀리고 표현하면서 해소할 수도 있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릴지도 모른다.
필자는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마음속 작은 변화에 주목해 보자. 마음속 작은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감정의 결을 만지는 손길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부드럽게 우리를 지지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언어로 형용되지 않는 그 애매한 감정을 먼저 감정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자. 가려내어 조감한 그 시선에 사랑이 실린다면. 그렇게 감정이 이리저리 동요하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면. 그 파고를 재지 않고, 그저 파도가 만든 포말에, 그 물결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사랑이다(살아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