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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홍콩영화에 처음 입문한 것은 공교롭게도 2019년이었다. 특히 장국영이라는 배우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지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종횡사해> 같은 가벼운 영화부터 <아비정전>,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같은 무게감 있는 영화들까지 가리지 않고 보며 빠져들었다. 배우뿐 아니라 가수로서 그가 남긴 노래들도 즐겨 듣곤 했다.

 

그리고 그즈음은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부끄럽게도 민주화 운동 자체보다는, 시위가 어서 잘 마무리된 뒤 안전하게 홍콩 여행을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크던 때였다.

 

실제로 2024년에 여행도 다녀왔고, 홍콩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그러던 중 홍콩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한 연극이 새로운 시즌으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4월 6일까지 공연 예정인 연극 <굿모닝 홍콩>을 관람하게 되었다.

 

 

 

과거의 홍콩


 

이 연극은 2019년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장국영의 추모 영상을 찍으러 홍콩에 방문했다가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장국영의 노래들이 공연 시작 전부터 극장에 울려 퍼지고, 공연 중간에도 계속해서 활용되며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또, 장사모 회원들이 대표작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을 패러디한 영상을 촬영하는 대목이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명대사들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다소 판타지스러운 줄거리를 연극 무대에서 재치 있게 구현해 내어 큰 웃음을 유발했다.

 

그 외에도 장국영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나, 다른 홍콩영화와 스타들의 이름도 자주 언급되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기억하는 8~90년대 홍콩을 여실히 담아낸,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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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홍콩


 

하지만 그런 찬란한 추억만이 전부는 아니다. 영상 촬영이 하이라이트에 이를 때마다, 날카로운 현실이 산통을 깨고 밀려오기 때문이다. 엉망이 된 몸으로 처절하게 광둥어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의 등장에, 장사모 회원들은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 연극은 2019년 홍콩 시위를 무대 위에서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해 냈다. 경찰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여러 차례 이어지고,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릴 때마다 실제 극장 내부에도 매캐한 연기가 깔리기도 했다. 폭력을 묘사하는 글이나 영상물도 충격을 주지만, 눈앞에서 보게 되니 그 끔찍함이 더 생생히 와닿았다.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연극적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상징적인 장치는 ‘기찬’이 경매에서 산 – 무려 마이클 조던이 착용하고 장국영이 소장한 - 1300만 원짜리 신발이다. 시위에 휩쓸려 한 짝을 잃어버린 뒤 기찬은 신발 찾기에 열중이고, 다른 회원들은 시위를 피해 영상을 찍는 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이후 신발을 되찾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인물들을 변화시키고,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깨끗하고 찬란해 보이는 영광의 이면에는 늘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가 묻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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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를 이어주는, 장국영


 

이러한 간극에 자칫 거리감과 충격만이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은 장국영을 다시 한번 끌어와 성공적으로 그 사이를 이어낸다.

 

후반부에서 시위대와 장사모가 (심지어는 관객들까지) 한마음이 되어 ‘월량대표아적심’을 열창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서로에 대한 실망도, 두려움도 다 뒤로하고 그들은 함께 섞여 노래를 부르며 연대하게 된다.

 

그 중심에 있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홍콩의 보물이라 불리는 장국영이다. 경찰이 그의 사진을 찢어도 굴하지 않고 힘을 합쳐 맞선다. 결국 과거든 현재든,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 같은 것임을 보여주며 그들은 힘 있게 나아간다.


*


2019년으로부터 6년이 더 흐른 지금, 홍콩이 과거의 모습과는 달라지고 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 연극처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한 홍콩은 우리의 곁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홍콩영화에 인생의 한 시절을 빼앗겨본 사람이라면 <굿모닝 홍콩> 관람을 추천한다. 직접 그때를 겪어본 4~50대는 물론이고, 최근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젊은 세대에서도 널리 퍼지고 있는 만큼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작품이 될 것이다.

 

굿바이가 아닌 굿모닝. 오늘도 홍콩의 새로운 아침은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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