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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최종] 0413 더벨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_edit.jpg

 

 

다가오는 4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OST부터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별 스타일로 재해석된 버전까지 만날 수 있는 <지브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는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협연자이자 해설자로 참여해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 11일,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공연의 지휘를 맡은 안두현 지휘자를 만났다. 지휘자 하면 떠오르는 엄숙하고 과묵한 이미지 대신 유쾌한 에너지로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에서 이번 <지브리 페스티벌>의 따뜻한 분위기를 미리 상상해볼 수 있었다. 히사이시 조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부터 클래식 저변 확대에 관한 생각까지, 안두현 지휘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안두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 음악원 오페라-오케스트라 지휘과 학, 석사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챔버 오케스트라 지휘자,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오케스트라 견습지휘자,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오늘날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젊은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월간 ‘객석’ 2019년 차세대 지휘자에 선정되고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와 더 솔로이스츠 음악감독이자 과천시립교향악단와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클래식 편곡과 함께하는 <지브리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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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님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가 지휘자님이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아르츠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는 ‘음악감독’으로 계세요.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기존의 상임지휘자 업무와 함께 행정적인 업무를 병행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각 공연에 맞게 최상의 팀을 꾸릴 수 있도록 조정하고, 연습 스케줄도 관리하죠. 공연이 기획되고 편곡 악보가 나오면 그걸 살펴보고, 수정하거나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회사와 의논하는 것 역시 제 일이에요.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 있으면서 제가 지휘자로 서지 않는 공연도 꼼꼼하게 살핍니다.

 

 

다시 돌아온 <지브리 페스티벌>에 임하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처음이 아니라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연을 반복할수록 지휘자인 저도, 연주자들도 부담이 줄어들긴 해요. 덕분에 유연한 태도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여지가 더 많이 생깁니다. 저는 그걸 ‘반짝이는 순간’이라 부르는데, 연주하다 보면 즉흥적으로 느껴져요. 물론 관객이 알아채기는 어려운 작은 부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끼리는 실감해요. 저번 연주 때보다 이번에 특정한 감정을 훨씬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구나 하고요. 원곡 중심인 2부보다 클래식 편곡이 들어간 1부를 할 때 그런 걸 더 많이 느낍니다.

 

 

말씀대로 1부에서 클래식 편곡이 들어가는 게 <지브리 페스티벌>의 큰 특징 중 하나인데, 상당히 독특한 구성입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게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는데, 편곡된 걸 들어보니 기발하더라고요. 클래식과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절묘하게 겹치는 지점을 잘 잡아내 새로운 느낌의 지브리가 탄생했어요. 편곡 방식은 다양해요. 시작은 클래식 음악이었는데 어느 순간 지브리 음악이 펼쳐지기도 하고, 클래식 곡과 지브리 음악이 동시에 연주되는 파트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곡이 이어지고, 섞이고 확장되며 한 곡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어요. 세계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형태의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선한 만큼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협연자이자 해설자로 활약합니다.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 어떤 클래식 곡이 편곡에 활용되었는지 연주해 주고, 이어서 지브리 음악도 들려주면서 이 두 곡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설명을 해주세요. 해설을 듣고 나면 해당 곡을 더 깊게 음미할 수 있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과도 더 가까워질 거예요. 이런 해설은 자칫 잘못하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송영민 씨가 워낙 다양한 매체에서 대중을 상대로 클래식 이야기를 많이 해 오신 분이라 쉽고 재미있게 잘 말씀해주세요. 이런 분야에서 독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여러 차례 거듭하며 지휘자님도 히사이시 조와 심리적으로 많이 가까워졌을 듯한데, 어떠세요?


그럼요. 제가 히사이시 조 음악으로 스톰프에서 처음 공연을 했던 게 2014년이에요. <하루키,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1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클래식 곡을, 2부에서는 지브리 스튜디오 음악을 연주하는 구성이었죠. 고등학생 때부터 히사이시 조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그 음악으로 꼭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기에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나요. 특히 그때는 제가 2부에서 해설도 맡아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가 쓴 책을 읽으며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히사이시 조의 음악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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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부터 히사이시 조를 좋아하셨다니 공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전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지브리 OST로서의 히사이시 조 음악이 아니라 클래식음악가이자 현대음악가인 히사이시 조의 음악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임했어요. 많은 사람이 히사이시 조를 영화/애니메이션 음악 작곡가로만 생각하지만, 알면 알수록 자기 음악 세계가 확실한 분이거든요.


물론 제가 히사이시 조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서긴 해요. 그렇지만 정말 큰 울림을 느끼고 푹 빠져들었던 건 솔로 앨범 [My Lost City]를 들었을 때예요. 최근에도 빈 심포니와 함께 ‘교향곡 2번’과 ‘비올라 사가’를 발표할 정도로 개인 작업을 활발히 하시죠. <지브리 페스티벌>에서 그런 음악까지 다루는 건 아니지만, 저는 이 공연을 통해 많은 분이 히사이시 조의 음악세계에 집중해보시면 좋겠어요.

 

 

해설을 위해 공부하면서 히사이시 조에 관해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히사이시 조가 자신의 저서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했던 말을 소개했던 게 기억나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1층으로 들어온 사람이 2층으로 나가는 듯한 느낌이 좋다고요. 그러니까, 어렵지 않게 시작하지만 마칠 때면 무언가 하나라도 마음에 남아 있는 작품이 좋다는 의미죠. 히사이시 조도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고 하는데, 저도 그랬어요. 조용히 시작해 웅장하게 마무리되는 히사이시 조의 몇몇 음악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작업기도 재미있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극중 소피가 할머니와 소녀를 오가며 느끼는 감정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도록 일관된 테마가 있는 음악을 써달라고 했다는데,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라 스트레스가 컸대요. (웃음) 그렇게 탄생한 곡이 ‘인생의 회전목마’예요. 아름답고 화려한 곡이지만 단조로 진행되어 어딘가 슬픈 구석이 있죠.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든 사람은 계속 나이 들고 결국에는 죽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화려함 뒤에는 필연적으로 은은한 슬픔과 쓸쓸함이 깔려 있음을 표현한 곡으로 느껴져요.

 

 

말씀을 듣다 보니 곡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지휘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지휘자님은 정통 클래식, 게임음악, 영화음악, 애니메이션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해오셨는데 장르에 따라 지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클래식의 경우 상당히 분석적으로 접근해요. 학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일단 길이부터가 30분 넘는 곡이 많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 있게 끌고 가려면 음 하나에도 이 소리를 어떤 식으로 연출하고 표현할 것인가 꼼꼼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반면 길이가 5분 안팎인 게임음악이나 애니메이션/영화음악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흐르는 선율에 순간적으로 몰입해 좀 더 감각적으로 임하는 편이에요. 그 순간의 표현이나 감정을 효율적으로 끌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지휘자가 가진 감수성이 공연을 좌우하죠. 클래식 지휘를 할 때처럼 학문적이고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면 재미가 없어질 거예요. 약간은 본능적인 게 더 필요한 분야가 이쪽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심포니 오브 메이플스토리> 같은 게임음악 콘서트에서는 유난히 큰 지휘 동작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 동작은 계획된 건지 즉흥적으로 나오는 건지도 궁금했어요.


당연히 어느 정도 계획하고 공연에 임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겠다고 본능적으로 감이 와요. 그럴 때면 더 크게 지휘를 하는 편이에요. 좋은 지휘자는 말이 아니라 지휘로 공연에서 필요한 것을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숙련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말보다 지휘를 더 선호하고요. 그래서 서로가 공연에 완전히 집중하는 현장이라면 말없이 지휘만으로 더 몰입감 있게 곡을 끌고 가는 게 가능해요.

 

 

 

클래식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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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터뷰에서 지휘자의 일에 대한 질문에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고 답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지휘자님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음악은 어떤 모습인가요?


기술적으로 완벽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고요. 그 외로는 우리 단원들과 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관객이 빠져들고 행복해하는 공연을 하는 것이에요. 제겐 관객이 정말 중요해요. 늘 관객 만족도가 높은 공연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인터뷰에서도 느꼈지만 지휘자님은 관객에게 늘 친근하게 다가가려 하시는 듯해요. 클래식의 대중화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요.


사실 클래식 대중화에 관해선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대중화는 어렵다는 쪽으로. (웃음) 욕심을 버렸달까요. 특정 클래식 곡이나 그 곡의 특정한 대목 또는 유명한 사람이 대중화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클래식이 정말 대중화되려면 유명하지 않은 음악가의 공연도 많이 열리고, 그걸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고 봐요. 또 개인적으로 클래식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교향곡도 많은 사람이 즐겨 듣고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게 가능할까 회의적이에요. 지금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일컫는 곡들이 처음 나왔을 때는 일상에서 음악을 듣는 일 자체가 드물었어요. 그런 시대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다면 엄청난 전율과 환희를 느꼈을 거예요. 반면 지금은 음악 듣는 게 너무 쉽고,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를 원해요. 이런 시대에 살며 클래식에 빠져드는 건 쉽지 않죠.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클래식에 미치다’를 운영하시기도 했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와닿습니다.


사실 거기서도 클래식 전체를 소개했다기보다 클래식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2, 3분을 딱 골라서 큐레이팅하듯 올린 거거든요. 지금의 쇼츠와 비슷한 방식이죠. 그런 것조차 사람들은 금방 식상하게 여겨요. 당시 페이지를 운영하며 클래식에 관한 관심을 이어나가도록 하는 게 어렵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요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하며 추구하는 것은 ‘클래식의 대중화’보다는 ‘클래식의 저변 확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클래식 저변 확대를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요즘 저는 예술이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20세기 들어서는 새로운 시도나 접근법이 등장하면 그걸 새로운 양식의 예술로 쳐 줬어요. 그런데 오늘날 클래식계에 계신 분들, 그중에서도 보수적인 일부는 대중음악계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는 음악가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무언가를 배척하는 건 그것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은 듯해요. 막상 그런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다른 장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다는 걸 실감할 때가 많거든요. 클래식에는 클래식에만 있는 깊이가 있듯, 다른 장르의 음악도 깊이 들어가면 그 장르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데 말이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오랫동안 예술의 중요한 측면으로 여겨져 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본질을 잃지 않는 것만이 예술로 여겨진다는 걸 클래식계에서 종종 느껴요. 이 모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깊이 있는 대화 즐거웠습니다. <지브리 페스티벌>도 말씀하신 클래식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공연이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관객분들이 오셔서 음악을 들으며 작품 속 장면들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감동을 느끼셨으면 해요. 장면에 집중해서 흘려보냈던 음악에 좀 더 집중해보고, 애니메이션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매력과 재미를 느끼는 공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공연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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