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기쁨을 발견하기
지난해 연말, 사 년 동안 살던 오 평 남짓의 원룸에서 십 평 대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쉬운 점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싱크대가 조금 더 넓으면 좋을 텐데. 방이 하나만 더 있으면 딱일 텐데.’ 자꾸만 못마땅한 점을 떠올리는 나 자신이 탐욕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놀라웠다. 새로운 환경에 이토록 금방 적응해버렸다는 사실이. 하루하루 감사함을 느끼기보다 단점을 찾는 일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때마다 온전한 만족감보다 공허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현재 내게 주어진 것을 충분히 음미할 여유 없이 바로 다음 단계의 결실을 추구하는 모습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건 과연 아무런 탈이 없는 성장일까? 단지 지금 상태보다 더 나은 것,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무언가를 쟁취하는 일이 아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보듬는 일에 정성을 쏟으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매일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가?
그 순간 떠오른 것이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 씨였다. 매일 아침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고, 운전석에 앉아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공중화장실을 구석구석 청소하는 사람. 점심시간엔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끼니를 해결하고, 필름 카메라로 햇살을 찍고, 퇴근 후에는 단골 음식점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기운이 히라야마 씨의 얼굴에 깃들어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의 입꼬리, 사소한 루틴의 힘을 아는 자의 부지런한 몸짓, 자기다운 하루를 꾸리기 위해 근육을 다져 온 사람의 강한 눈빛까지도.
그의 얼굴에 스민 복잡미묘한 표정에서 힌트를 찾았다. 매일 번거로운 일들을 기꺼이 하기. 그 안에서 구체적인 기쁨을 발견하기. 그 과정을 반복하기. 중요한 건 삶을 뒤바꿔 줄 대단한 한 방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 매일 되풀이되는 하루 속에서 충만해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내 일상을 가다듬기 위해 올해 초부터 실천해 온 몇 가지 루틴이 있다. 지속하다 보니 효능이 좋은 세 가지 루틴을 소개해 보겠다.
삶에 적용한 루틴과 꾸준히 지속하고 싶은 행위들
1. 공복 레몬수 한 잔 마시기
레몬수가 피부와 디톡스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루틴으로 시작한 공복 레몬수 한 잔 마시기. 레몬수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1) 베이킹소다로 레몬의 표면을 문지르며 흐르는 물에 씻는다. 2) 레몬을 반으로 가르고 스퀴저로 과즙을 짠다. 3) 남은 껍질들을 썰어 유리병에 즙과 함께 담는다. 4) 미온수 1L를 붓고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실온 보관한다.
보통 전날 저녁에 만들어 둔 것을 다음날 출근할 때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여러 번 만들다 보니 섭취의 효능뿐만 아니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다. 깨끗한 도마 위에 잘 씻은 레몬을 올리고 반으로 가를 때 공기 중에 퍼지는 향긋한 향. 한참 작업하던 일이 막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어 레몬수를 만들다 보면 마음이 금세 이완되고 평온해지는 게 느껴진다.
2. 식재료 골라 요리하기
매년 새해마다 다짐하는 배달 음식 줄이기. 몇 번의 휴대폰 화면 터치로 따뜻한 음식이 신속하게 문 앞에 도착하는 편리함과 타협하기 쉽지만, 올해는 PT 수업을 받기 시작하며 식단 관리를 위해 본격적으로 장을 보고 요리하기 시작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만들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 플라스틱 쓰레기가 줄어든 점이 장점이다.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손질하는 즐거움도 크다. 대파나 쪽파처럼 자주 쓰이는 재료는 한껏 썰어 놓고 냉동 보관했다가 한 주먹씩 꺼내어 쓴다. 온갖 신선한 재료들이 내는 맛의 신비에 감탄하며 요리하다 보면 낱낱의 재료가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현혹되었던 배달 음식과 간편식들이 정말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돌이켜보면 한편으론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나의 시간을 아껴 주었지만, 몸과 마음을 더부룩하게 만들었으니까.
3. 설거지 후 식기류 물기 바로 닦기
이사한 집 주방엔 식기 건조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물기가 덜 마른 식기류를 한곳에 쌓아 두면 너저분해 보이는 것이 싫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 대신에 소창 행주를 들였다. 설거지 직후 식기류의 물기를 순면 행주로 잘 닦아서 바로 상부 장에 보관하고 있다. 꽤 성가신 일이지만 반복하다 보니 오히려 편리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서로 모양이 다른 식기류들을 가만 닦고 있다 보면 마음을 수련하는 느낌마저 든다. 무엇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을 볼 때, 가지런히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소창 행주들을 볼 때 기분이 아주 산뜻하다.
적당한 수고로움은 삶을 단정하게 만들어 준다
세 가지 루틴을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하고 싶다. 모두 조금은 번거로우며,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나의 생활을 돌보기 위한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나를 지치게 만드는 종류의 움직임이 아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활동들이다. 직접 겪어 본 뒤에 알게 되었다. 적당한 수고로움은 삶을 단정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내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종류의 수고로움이 삶에서 차지하는 영역을 조금씩 늘려 나갈 것이다. 나를 더 긍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습관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더 분주해졌지만 삶은 한결 환해졌다. 언제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만이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 비효율적이고 번거로운 일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보람도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당장 성과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매일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사람의 꾸준함을 닮고 싶다. 한 사람의 결은 단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찬찬히 쌓아 올린 습관들로부터 형성되니까. 매일 되풀이되는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자.